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위기②불황 탈출 몸부림

정부·기업·국민 삼위일체 ‘돌격 앞으로’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디플레이션 공포가 국내에 엄습하면서 정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정부는 “섣부른 진단”이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물밑에선 장기 불황의 불씨를 끄기 위한 진화 작업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의 싹을 완전히 자르겠다는 복안. 정부의 자구책에 기업도 장단을 맞추고 있다. 디플레이션 가정시 직격탄이 예상되는 만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들도 자발적으로 나라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는 형국이다.

디플레이션은 경기침체에 물가하락을 동반한다. 즉 소비가 급감한다는 얘기다. 기업으로선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고용, 투자 등의 경제 전반이 위축되고 다시 소비가 급감하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야기되는 대목이다.
재계의 불황 탈출 자구책은 ‘공격 경영’으로 압축된다. 대내외 환경이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지만 투자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 이들 기업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전을 노리고 있다. IMF 외환위기 때와 달리 자신감도 넘친다.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경제 위축 악순환 위기
“경기부양 조치 절실”

한화그룹은 ‘위기는 곧 기회’라며 공격 경영으로 과감한 베팅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1백% 늘어난 2조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올해 핵심 경영과제로 공격 경영을 화두로 던진 한화그룹은 투자와 채용 확대, 대우조선 인수 등 공격 경영의 강도를 높여나간다는 방침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최근 그룹 창립 56주년을 맞아 공격 경영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창립 기념사에서 “어둠이 걷히기만 기다리지 말고 어둠 속에 길을 떠나 새벽녘 기회의 강을 건너자”며 “바람이 불면 바람을 업고 더 빨리 달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돌격 앞으로’를 선언했다. 그동안 고집해온 ‘구두쇠경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해외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하반기에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외자유치를 통해 국내 최고층의 잠실 제2롯데월드와 국내외 호텔과 리조트사업도 확대할 예정이다.

최근엔 환율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2천5백여 중소 협력업체와 공정거래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이 자리에서 1천억원대의 자금지원과 납품대금 1백% 현금성 결재를 약속했다.
김상후 롯데제과 대표는 “협력회사와의 지속적인 상생협력 없이는 어려운 경제 여건을 극복할 수 없다”며 “이번 공정거래협약 체결로 롯데그룹과 협력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재계는 지난 9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민관합동회의에서 약속한 1백조원의 투자와 지난해보다 10% 정도 늘린 8만여명의 신규 고용을 차질 없이 진행 중이다. 이 대통령은 “기업들이 어려울 때 투자를 늘리는 공격적 경영에 나서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22조4천억원)보다 25% 정도 늘어난 27조8천억원 투자 계획을 예정대로 하반기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올해 대졸사원 7천5백여명을 포함해 총 2만5백여명을 채용할 고용 부문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그룹 전체 투자규모를 11조원으로 확정한 현대·기아차그룹도 기존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한다. 지난 8월까지 이미 5조3천억원을 투자했다. 4천3백여명의 채용 목표를 세운 현대·기아차그룹은 상반기에 2천여명을 뽑았고, 하반기에 나머지 2천3백여명의 신입사원을 뽑기로 했다.
LG그룹의 올해 투자 계획은 사상 최대 규모인 11조3천억원. 역시 국내외 투자 목표를 수정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5천5백명의 고용을 내세운 LG그룹은 상반기 2천6백명에 이어 하반기에 2천9백명을 채울 생각이다. SK그룹과 포스코, CJ그룹 등 30대 그룹도 당초 투자 계획을 예정대로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처럼 기업의 투자와 고용 의지가 꺾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올 상반기 기업의 시설투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17%나 늘었다.
전경련이 지난 8월 6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상반기 시설투자 실적 및 하반기 계획’을 조사한 결과 시설투자는 45조8백74억원으로 지난해 38조5천9백7억원에 비해 16.8% 증가했다. 30대 그룹의 경우 20.4% 증가한 29조1천2백48억원에 이르렀다.

전경련 측은 “기업환경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업들의 시설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하반기에 투자가 계획대로 이뤄지면 6백대 기업의 연간 총 시설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26% 증가한 1백조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상반기에 45조1천억원이 이미 쓰였고 하반기에 55조1천억원의 시설투자를 예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경련은 올해 신규 채용도 전년 대비 12.1% 늘어나고, 총취업자수가 4.0%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상반기에만 지난해 동기 대비 15.4% 늘어난 2만3천5백91명에 달했다는 설명이다. 전경련은 하반기엔 8.1% 늘어난 1만7천8백13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가 디플레이션 위기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금리를 인하해 경기를 부양하는 조치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통상 시중에 돈이 풀리면 금리는 낮아진다.
정부는 이에 따라 기업과 은행들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자금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6월 10조원대 ‘서민생활안정대책’을 내놓은 정부는 지난 19일 외화 및 원화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은행 대외 차입 지급 보증 ▲3백억 달러 추가 공급 ▲장기 보유 주식과 적립식 펀드 세제 지원 ▲중소기업 지원 등으로 구분된다.

“돈·사람 고이면 썩는다”
재계, 투자·채용 확대

 
정부는 논란이 돼 왔던 은행의 대외 채무에 대해 총 1천억 달러까지 지급 보증을 해 주기로 결정했다. 또 외화시장 안정 대책으로 3백억 달러 추가 공급에 나서기로 했다. 주식시장 안정 대책으론 펀드자산의 60% 이상을 국내주식에 투자하는 주식형펀드를 3년 이상 불입(연간 1천2백만원 한도)할 경우 일정비율 소득공제하고, 배당소득에 대해서도 비과세하기로 했다. 정부는 펀드 세제 혜택으로 증권·채권 시장에 약 10조원 정도의 자금 유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어 실물경제를 위한 각종 대책도 내놨다. 지난 21일 발표된 ‘건설지원대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위기에 빠진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해 최대 9조2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의 미분양 주택과 보유토지를 공공기관에서 매입하는 등의 방식이다. 구체적인 지원 부문은 건설사 미분양주택 환매조건부 매입 2조원, 공동택지 계약해제 허용 2조원, 건설사 보유토지 매입 3조원 등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대출 규제 완화와 수도권 전역의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도 해제키로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건설사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초래 지적에 대해 “그동안 건설회사가 너무 많이 생겼는데 이번 기회에 구조조정을 병행해 방만한 경영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기 전이 막는다”
잇달아 ‘안정대책’발표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대책도 나왔다. 각 은행들은 ‘중소기업 유동성 위기 종합대책반’을 구성, 금융 지원 등 종합적인 중소기업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 여력 확충을 위해 기업은행에 1조원 규모의 현물출자를 단행한다. 이 경우 중소기업의 대출여력이 약 12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특히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실물경제 전이를 차단하기 위해 물가도 집중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 ‘제12차 물가 및 민생안정 차관회의’에서 환율에 민감한 ‘특별점검 대상품목’을 선정하기로 했다. 대상품목은 휘발유, 밀가루, 설탕, 소고기 등 환율 변동에 따른 가격효과가 큰 30개 내외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품목별 소관부처와 재정부, 국세청 등이 참여하는 ‘정부합동 현장점검단’을 운영해 가격동향, 환율전가, 유통구조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환율상승 효과를 반영한 가격인상에 대해서는 앞으로 환율이 하락하면 이를 반영해 가격인하를 하는지 여부를 소비자단체 등과 함께 감시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전이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물가 안정”이라며 “가격인상 요인이 없는데도 환율상승을 빌미로 편승 인상하는 경우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눈에 띄는 점은 IMF 당시처럼 나라살리기에 국민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1997년 ‘금모으기 운동’과 비슷한 ‘달러모으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

부산은행은 부산시민들을 상대로 ‘외화통장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시작한 지 불과 5일 만인 지난 17일까지 4천2백만 달러가 모였다. 부산은행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도가 높아 지금 추세라면 1억불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국에서 달러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농협은 지난 6일부터 일주일 만에 8억달러에 이르는 외화를 확보했다. 지난 8일부터 ‘범국민 외화모으기 운동’을 시작한 기업은행도 지난 15일 현재 3천만 달러가 모였다. 하나은행과 대구은행도 각각 1억달러, 6백만달러를 유치했다.
이 대통령은 “금융위기 때문에 달러를 사재기하는 기업이나 국민이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달러를 갖고 있으면 환율이 올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기업과 사람이 있는데 국가가 어려울 때 개인의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 공포에 ‘아직’이란 단어를 붙인다. 현재 국내 경제 상황이 디플레이션과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면서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경고를 빼놓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들의 완전한 삼위일체만이 경제 환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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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