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4당 원내대표에 길을 묻다 ②새누리당 정우택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1.26 10:01:00
  • 호수 1099호
  • 댓글 0개

“민주당 대세론요? 허망하게 무너질 것”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는 점에서 올 한 해는 대한민국 정치사의 변곡점으로 작용할 예정이다. 그 역사적 순간의 중심에 4명의 정당 원내대표가 서 있다.

공정한 경선관리의 책임이 있는 원내대표들이 어떤 역량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성공적인 대선을 치르게 될지, 아니면 경선 후유증으로 당이 흔들릴지 결정된다. <일요시사>는 조기 대선 정국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4당 원내대표와의 릴레이 인터뷰를 준비했다. 그 두 번째로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났다.

새누리당에게 지난 2016년은 상실의 해였다. 4·13총선 참패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원내1당 자리를 내줬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촉발된 계파 갈등은 극에 달했고, 결국 분열됐다. 유승민·김무성·남경필·오세훈 등 당에서 어렵게 키워낸 대선주자들 대부분은 바른정당으로 옮겨갔다. 30%를 웃돌던 정당 지지율도 반 토막 났다.

반전의 모멘텀이 절실한 새누리당은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당명·로고는 물론 당색까지 싹 바꿀 계획이다. 또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이른바 ‘3정 쇄신’에 들어갔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모멘텀은 결국 대선 승리뿐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때문에 경선 관리를 맡고 있는 정우택 원내대표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꿈이 있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는 좌우명처럼 그는 굴곡진 정치 인생 속에서도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한국의 케네디’를 꿈꾸며 39세에 공직서 나와 정치권에 뛰어들었고 이후 정·관가를 넘나들며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점이 그를 당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중진 중 한 명으로 올려놓았다. 이러한 그의 확고한 당내 입지는 향후 당 대선주자들을 관리하는 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정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 대선 준비에 임하는 각오를 말씀해주신다면?
▲이번 대선은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일자리, 북핵, 통일 문제 등 대한민국을 둘러싼 경제·안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될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그런 후보를 선출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며 집권여당으로서 총체적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 경선 흥행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평이 있는데, 어떻게 헤쳐 나갈 생각이신가요?
▲아직 우리 당이 ‘경선 흥행’을 말씀드릴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인적 쇄신과 정치·정당·정책 쇄신 등 ‘3정 쇄신’을 보다 더 강력하게 추진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설 명절 이후 당명 개정을 완료하고 비대위서 본격적인 경선 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입니다.

- 황교안 권한대행이 보수 지지층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실제 출마로 이어질 가능성을 진단해 주신다면?
▲황 권한대행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국내외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정을 안정화하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은 오직 그 생각뿐”이라고 밝혔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새누리당은 책임 있는 집권여당으로서 황 권한대행이 국정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당 대선주자가 부족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당 인재양성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당에서 여러 쇄신이 한창 진행 중이라 아직 당내 대선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출마선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 명절 이후 당명 개정, 경선 룰 논의 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 당내의 대선주자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인제 전 최고위원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새누리당에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 전 총장 영입 시도는 계속되는 건가요?
▲반 전 총장은 그동안의 경력 등을 감안하면 진보 성향이라기보다 중도·보수 성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사드 배치 등 안보문제는 보수 성향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의 핵심적 보수 가치에 동의하는 ‘중도·보수 후보’에게는 원칙적으로 문호가 열려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만, 국민과 당원들의 혹독한 검증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 대선주자로서 반 전 총장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나요?
▲한국인으로서 유엔사무총장을 10년 동안 역임했던 반 전 총장은 대한민국의 ‘국가적·국제적 자산’이고 이는 본인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반 전 총장이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에 뛰어든다면 총체적 국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경선 질문에 “신뢰 되찾는 게 우선”
충청권 탈당 초읽기? “보고 받았다”

- 일각에선 반 전 총장을 따라 당 충청권 인사들이 탈당할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나요?
▲언론 보도를 통해 보았고,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 최근 인적 쇄신 문제로 당이 내홍을 겪었습니다. 결국 몇몇 의원에게 징계가 내려졌는데요. 수위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윤리위원회의 결정이 적절했다고 보시나요?
▲윤리위는 당 대표에게도 독립돼있는 기구입니다. 당내 인사보다는 사회 명망가, 전문가 등 외부 인사 중심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인적 쇄신 문제는 윤리위서 독자적으로 검토해 판단했던 문제라 제가 말씀드리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당원권 정지 3년은 우리 당 당헌·당규 상 강력한 중징계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 당 내부 관계자 중 일부는 인명진 비대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비대위원장이 되기 전까지 당을 위해 한 일이 없음에도, 당 쇄신을 외치는 게 맞지 않다는 지적인데요.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 소속 국회의원, 원외당협위원장, 사무처 당직자, 청년위원회, 기초의회 의장단 등 대부분의 당내 구성원들이 인 위원장의 쇄신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인 위원장께서 반성·화합·다짐 대토론회, 의원총회 등을 거쳐 쇄신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당명과 로고, 당색을 모두 교체한다는 결정이 있었습니다.
▲현재 당 홍보본부에서 당명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를 받았습니다. 전문가 검토, 국민 공모 등을 거쳐, 설 명절 직후에는 당명, 로고, 당색 등이 개정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합산 지지율이 50% 내외인 상황입니다. ‘민주당 대세론’을 만들겠다는 게 민주당 측 입장인데요.
▲역대 모든 대선에서 ‘대세론’은 허망하게 무너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세론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만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저는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 최근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선출직 공직자 65세 정년도입을 주장했습니다. 적절한 주장이라고 판단하시나요?
▲정상적인 국회의원이 말했다고 믿기지 않는 ‘반(反) 헌법적’ 주장입니다. 표 의원의 말대로라면 74세에 집권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격이 없었던 것 아닙니까? 불과 2년 후 65세가 되는 문 전 대표는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는 것입니까? 표 의원은 문 전 대표의 ‘인재 영입 1호’인데 문 전 대표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반기문 영입 “혹독한 검증 먼저”
대구 서문시장 방문해 복구 약속

- 최근 “대선 전에 개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그렇다면 권력구조에 집중한 ‘원포인트 조기개헌’을 의미하는 건가요?
▲개헌은 대한민국의 백년대계를 위해 국가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작업으로 반드시 ‘대선 전’에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권력구조가 핵심이 되겠지만 협치와 분권, 통일시대 준비, 국민 기본권 강화 등도 개헌의 중요한 아젠다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검토를 거쳐 국회 개헌특위서 속도감 있는 논의를 통해 ‘대선 전 개헌’을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개헌을 매개로 한 반문연대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현실화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진단하시나요?
▲“어떤 후보를 반대하기 때문에 뭉친다”는 아젠다로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대선에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개헌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들이 대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피해 상인을 만나셨습니다. 현장 민심은 새누리당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던가요?
▲일단 대통령 탄핵 등 국정 혼란에 대해 대구 시민들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피해를 입으신 시장 상인들께서 ‘집권여당이 다녀갔다는 보람을 느끼실 정도’로 적극적인 복구작업도 지원할 것입니다. 대구가 보수 정치의 본산인 만큼 새누리당이 정통 유일의 보수정당으로서 더욱 노력하라는 격려의 말씀도 듣고 아픈 회초리도 맞았습니다.


- 설 연휴를 앞둔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국민 여러분, 정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집권여당으로서 대통령 탄핵 등 국정 혼란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새누리당은 책임 있는 정통 유일 보수정당으로서 경제·안보 등 총체적 국가 위기 극복에 모든 것을 걸고 나서겠습니다.

현재 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쇄신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보수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감사드립니다.


<chm@ilyosisa.co.kr>


[정우택은?]

▲부산 출생
▲하와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제7대 해양수산부 장관
▲제32대 충북도지사
▲15·16·19·20대 국회의원
▲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