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없는’ 최순실 사단 내분 막전막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1.16 11:27:11
  • 호수 10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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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려고…배신이 시작됐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진흙탕 싸움이 시작됐다. 최근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특검에 수사 협조를 하면서 최씨가 수세에 몰렸다. 그 동안 검찰·특검 수사를 받은 ‘최순실 사단’ 관계자 대부분은 범죄 혐의를 최씨에게 떠넘기는 형국이었다. “나부터 먼저 살고 보자”는 최순실 사단의 배신전이 시작됐다.

‘최순실 사단’ 핵심 인물들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장시호씨를 시작으로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번 국정 농단의 책임을 최순실씨에게 덮어씌우는 분위기다. 그 동안 최씨를 배신했던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박근혜]
“측근 비리일 뿐”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나자 ‘40년 지기’ 최순실에 대해 “최악의 배신을 당했다”며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총격으로 부모를 잃은 박 대통령은 ‘배신의 트라우마’가 있어 왔는데 ‘최순실 게이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최씨의 행각을 보고 뒤집어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특검 수사가 청와대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최씨의 범죄 혐의가 박 대통령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도 보는 시각이 다분하다.

현재 국면에선 박 대통령과 최씨의 동지적 관계는 사실상 깨졌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대부분의 혐의를 측근 비리 등 최씨에게 덮어씌우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헌재서도 변호사 등을 통해 모든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최씨와 국정 농단 사태를 공모했다는 정황과 진술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결백을 주장해온 박 대통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혐의를 최씨에게 덮어씌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섣불리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현재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모든 권한이 정지된 상태다.
 

하지만 최씨는 현재 자신이 구속된 상황에 대해서 박 대통령을 향해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왜 자신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놨느냐는 것.’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최순실씨의 각자도생 폭로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장시호]
이모 태블릿 제출

제2의 태블릿PC가 등장했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씨의 조카 장시호가 특검에 제출했다. 장씨는 특검 조사에 적극 협조하며 진술하고 있다. 특검팀은 지난 10일, 장씨로부터 태블릿PC를 제출받았다고 밝혔다.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태블릿PC에 대해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특검보에 의하면 태블릿PC에는 최씨의 이메일과 함께 코레스포츠 설립 과정 및 삼성의 특혜지원을 입증할 문건들이 담겨있다. 또 박 대통령이 2015년 10월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 자료도 들어 있다.

‘물고 물리고’ 그들만의 카르텔 무너져
특검 빅딜 먹히나…결정적 폭로전 예고


장씨는 해당 태블릿PC를 지난해 10월, 최씨의 부탁으로 짐을 정리하는 과정서 입수했다. 장씨는 영재스포츠센터 직원 2명과 함께 최씨 집에 들어가 짐을 가지고 나왔다. 특검은 이 장면이 찍힌 CCTV를 입수해 어떤 물건들인지를 추궁했다.

장씨는 지난 4일, 특검 조사를 받던 중 또 다른 태블릿PC가 있다고 말했고 장씨의 아버지가 변호사를 통해 이튿날 오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은 최씨의 일을 도운 독일교포 데이비드 윤의 이메일을 태블릿PC서 발견하고 최씨 소유임을 확인했다.
 

장씨의 특검 수사 협조에는 심경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장씨 측 변호인은 “장씨가 세 번째 특검 조사를 받을 때부터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씨가 구속된 뒤 아들을 보지 못해 조사 중 아들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대가로 정상 참작되길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구치소에 수감 중인 최씨는 장씨가 ‘자발적으로’ 특검에 본인의 태블릿PC를 임의제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 접견 과정서 최씨는 “이게 또 어디서 이런 걸 만들어 와서 나한테 덤터기를 씌우려 하나”며 “뒤에서 온갖 짓을 다 한다”고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호성]
“보고는 했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최씨의 국정농단에 대해 사실상 ‘시인’하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요한 보고서들이 최씨에게 확인을 받고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비서관은 특검 조사에서 ‘최씨가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보다 위에 있는 국정의 한 축 아니냐’고 묻자 “제 잘못”이라고 대답했다. 중요한 문서들이 최씨의 ‘컨펌’을 받고 보고됐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답변했다.

또한 이 자리서 정 전 비서관은 자신의 휴대폰에 녹음된 최씨와의 통화내용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최씨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했기 때문에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야했다”면서 그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안에 대해 최씨와 나눈 의견을 다시 박 대통령에게 ‘선생님과 상의했다’면서 보고하는 식이었다고도 진술했다.

정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공무상 비밀문건 47건을 포함해 국정문건 180건을 최씨에게 넘긴 혐의로 구속기소 된 상태다. 특검팀은 이외에 추가로 문건을 유출한 사실이 있는지 등 추가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10여년 동안 활동한 만큼 최씨와 박 대통령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김종]
정유라 특혜 시인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에도 깊숙이 개입했다고 시인했다. 특검팀은 김 전 차관이 ‘정유라 학생은 최순실의 딸이니까 잘 챙겨야 한다’고 이화여대 최고위층에 직접 요구했다는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김 전 차관은 정씨의 이대 입학 개입 사실을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단계서 시인했다가 특검 조사에선 이를 번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차관 부탁을 받은 김경숙 전 체육대학장은 남궁곤 전 입학처장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남궁 전 처장은 2015학년도 체육특기자 선발 때 정씨에게 특혜를 줘 합격시킨 것으로 특검팀은 보고 있다.

“최순실·박근혜가 시켰다”
‘각자도생’ 윗선 진술 봇물

이대 비리가 김 전 차관의 ‘부탁’→김경숙 전 학장의 ‘기획’→최경희 전 총장의 ‘승인’→남궁 전 차장·류철균 교수 등의 ‘실행’ 구도로 이뤄진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특검팀은 또 청와대 등의 ‘윗선’이 최씨의 부탁을 받고 김 전 차관에게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체육계 대통령’으로 불리며 최씨의 국정 농단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이미 검찰 특검 수사에서 그는 최씨 일가와 연관된 사업에 삼성전자가 각종 특혜성 지원을 하도록 관여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기소됐다.

[이성한]
육성파일 공개?

지난달 14일 국회서 진행된 '최순실 국조특위' 3차 청문회에서 최씨가 위증을 지시하는 육성파일이 공개됐다. 당시 독일에 머물던 최씨가 한국에 오기 전 지인에게 지침을 내렸다는 것. 이 육성파일에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등장한다.


이 육성파일은 최씨가 “이성한 전 사무총장이 배신했으니깐, 이 전 사무총장이 계획적으로 우리(최순실쪽)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라”라며 위증 지시를 했다는 게 핵심이다.

이 전 사무총장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가 만들어질 당시 대기업 기금이 모금된 것은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고, 그 뒤에 비선실세 최순실이 있다고 가장 먼저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다.

이 전 사무총장은 미르재단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가 사실상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사무총장은 최씨와 친분이 있는 차은택 감독의 추천으로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맡아 설립 자금 모금을 주도했으나, 차 감독과 사이가 틀어져 지난해 9월 결국 해임됐다.이와 더불어 이 전 사무총장이 재벌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모금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유라, 장시호…최순실 심경 변화?

최순실씨가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통한 강제모금 혐의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지난 11일,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국정 농단’ 관련자에 대한 2차 공판을 시작했다.

재판부는 지난 5일, 1차 공판에 이어 증거조사에 착수했다. 증거조사는 검찰이 제출한 서류 가운데 피고인이 증거로 동의한 것을 채택하는 절차를 말한다.

최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자금은 청와대서 알아서 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재단이 잘 되는지 보라고 해 도왔을 뿐이지 재단 설립과 기금 모금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혐의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최씨의 진술조서는 조사검사와 부장검사가 피의자 면담형식으로 질책성 훈계를 한 뒤 자백을 강요해 이뤄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작성된 조서는 피의자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안 전 수석의 변호인도 검찰이 제출한 업무수첩 사본의 증거채택에 동의하지 않았다. 검찰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확보한 증거라는 이유에서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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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