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명당’ 연초엔 풍수바람

최근 저금리 등으로 분양시장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에‘풍수’바람이 전방위적으로 불고 있다. 풍수마케팅은 인테리어, 행정관청 이전에서부터 최첨단 아파트 입지 선정에 이르기까지 끼지 않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풍수지리만큼 우리 생활에서 자주 회자되는 관심사도 드물다. 묏자리를 정할 때, 이사할 때, 심지어 사무실 책상 위치를 정할 때조차 ‘향’이 어느 쪽인지부터 꼭 따진다. 미신이라 치부하면서도 안 따지면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제 풍수지리는 더 이상 근거 없는 ‘설’이 아니다.

풍수가 세계적 웰빙코드로 떠오르면서 기(氣) 흐름을 고려한 주택이나 사무실 가구 배치와 실내장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풍수지리를 과학적·논리적으로 검증하려는 학계 움직임도 활발하다. 풍수가 부동산 투자자들과 주거용 주택이나, 사무실 입주자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받다 보니 이를 부동산시장에 접목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시행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주거용 건축을 신축할 때 건설사에서는 풍수지리 전문가를 고용해 건축 터를 잡는다. 이후 문의 방향이나, 화장실, 거실, 안방, 부엌 위치, 심지어 가구 배치까지 풍수지리 인테리어를 활용한다.

풍수지리가 명당 아파트라는 콘셉트로 마케팅에 활용되면서 부동산시장에 ‘풍수지리 마케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왕이면 기후, 풍향, 물길 등을 파악해 좀 더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터를 찾기 위해서다. 대기업 오너 중에도 주택 입지는 물론 사옥, 사업장 터, 집무실의 물건 위치까지 컨설팅 받는 사람이 많다.

가격 천차만별
주택

주택 분양시장에 웰빙이나 힐링열풍이 불면서 입지나 풍수지리 인테리어, 이에 따른 가구배치법 등에 관심을 갖는 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집을 선택할 때 풍수지리를 중시하는 이유는 쾌적한 주거환경뿐 아니라 매매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시세 요소 때문이다. 실제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형 단지들은 주택시장의 인기상품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분양업체들은 풍수지리를 적극 활용, 분양 마케팅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가회동과 한남동 일대의 고급 빌라나 대기업 본사와 같은 업무시설의 입지 선정 과정에 주로 쓰이던 풍수지리 마케팅이 아파트 등 주택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풍수지리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택지로 여기는 배산임수 지형은 분양 마케팅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아파트 뒤편에 산과 언덕이 있고 앞쪽에는 강이 흘러 전망이 좋아서다. 게다가 등산과 운동 등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길 수도 있다.

이왕이면 명당으로 알려진 입지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늘면서 풍수지리학적으로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형이 선호되고 있다. 물과 산을 함께 갖춰 주거환경이 쾌적한 데다 부동산에 최고의 가치를 자랑하는 조망권을 확보, 일반적인 아파트보다 인기가 높은 편이어서 분양업체에서도 이에 맞춘 단지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단지들의 청약성적도 좋았다. 지난해 9월 경남 양산신도시 물금택지지구 15블록에 선보인 ‘남양산역 반도유보라 6차’는 817가구 모집에 총 2082 명이 몰리며 평균 2.5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단지는 양산의 대표 산인 오봉산이 근처에 있고 양산천도 위치해 배산임수 입지로 평가받았다.

이사할 때, 장사할 때 “꼭 따진다”
가구 위치 정할 때도 ‘향’따져

서울에서도 배산임수 입지로 눈길을 끈 단지가 있다. 지난해 11월, 서초구 서초꽃마을 5구역을 재개발해 분양한 ‘힐스테이트 서리풀’은 평균 24대 1의 청약 경쟁률을 보였다. 이 단지는 한강과 우면산, 서초 올레길을 이용할 수 있다. 배산임수 입지는 집값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KB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매봉산을 뒤로 하고 한강을 앞에 둔 ‘래미안 옥수 리버젠’전용면적 113㎡는 분양 당시 기준층 기준 8억4700만원대였지만 현재 10억2500만원대에서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풍수는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풍수에서 ‘길상’으로 보는 위치와 조건에 일치하는 가격이 더 나가고, ‘흉상’으로 보는 것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연유로 거래될 때 강이나, 들, 바닷가가 보이는 조망권과 기가 흐르는 도로에 접하면 주변의 유사 부동산보다 30%정도는 비싸다.

조망권의 중요성은 단순히 주거용에 국한되지 않고 있고 업무용 빌딩이나 상업용 빌딩에서도 매한가지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서울의 보라매타운 내에 있는 고층 빌딩들도 단지 외곽에 있는 빌딩의 임대료가 단지 내의 임대료보다도 임대료가 비싸다. 시야가 탁 트이고 햇빛을 바로 맞이할 수 있을 때 사원들의 능률과 업무 효율이 올라가고 기업의 생산성은 배가되기 때문이다.


홍콩은 풍수상 흉지에 건물이 지어질 경우 아무리 시설을 첨단으로 준비했다고 해도 건물 임대료가 주변보다는 50% 싸게 형성되고 그나마 임대율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망권이 풍수와 관계있는 것은 바람의 흐름과 채광을 가로막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음양의 조화를 중시하는 풍수에서 양의 흐름을 막고 있거나 기의 흐름을 끊겨진 곳에 위치한 건축물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생리학적으로 나쁘기 십상이다. 막다른 골목에는 집이 부동산 가에서 헐값에 거래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요즘 서울 시내에서 인기 높은 전용 주거지를 보면 서울 시내가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평창동, 성북동 쪽의 전경이 좋은 주택 가격이 아래 쪽의 교통이 편리한 주택 가격보다 더 나가는 이유도 맥을 같이 한다. 결국 부동산 가격이 전망이나 도로 여건과 같은 풍수상으로 길·흉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도심뿐만 아니라 전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원주택이나 골프장 등도 전망이 좋은 곳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젠 세계적 웰빙코드
‘기’흐름 고려해 배치

인간은 생활의 3대 요소인 의 ·식·주가 만족한 상태라야 비로소 쾌적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특히 주거 형태가 불안정하면 건강상 문제도 생기지만 정신적인 안정을 얻을 수가 없다. 비록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길흉을 꼼꼼히 따져 가며 부동산을 마련할 수는 없지만 주택을 구할 때 피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은 유념해야 한다. 물론 건축법에서 일조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오늘날 다가구 다세대 주택들이 밀집해 있기에 충분한 조망권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앞의 건축물에 가려져서 건축물이 어둡고 그늘지면 생활환경면이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망권과 함께 부동산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도로다. 주택의 위치가 도로보다 낮으면 집모양이 흉하기도 하지만 풍수에서 도로는 물과 같이 보기에 도로보다 주택이 낮다면 물이 집안에 차는 것이며 도로를 타고 이동하는 자연의 기운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없다. 건축물은 인간 활동의 근원지이며, 성장의 요람이기에 그 건축물에서 생활하는 인간에게 정신적인 안정과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어 건전한 사고를 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유익한 부동산이 가격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풍수와 부동산의 가격이 밀접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손님을 끌어라
상가

상가도 풍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출입문 위치만 바꿔도 매출이 달라지는데 출입문 면이 짧고 안쪽으로 길면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이다. 같은 지역에서 똑같은 업종의 가게가 있어도 어느 집은 손님들로 붐비고 어느 집은 파리만 날리고 있는 것을 쉽게 목격하게 된다. 물론 뭔가 다른 독특한 서비스가 있겠지만 생기(生氣)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생기가 뭉치는 곳에 모여들게 되어 있다.

가게 터가 좋다할지라도 손님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를 끌어들일 수 있는 상가 배치가 되어야 한다. 장사가 안 되는 가게에서 출입문을 바꾸자 손님이 늘어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상가는 한 면 이상이 도로에 접해 있는 것이 좋은데 도로에 접한 부분에 출입문을 낸다. 출입문은 사람이 많이 왕래하고 머무는 쪽에 내야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가게의 공간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많은 창문은 양 기운의 과다한 유입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깨뜨린다. 실내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창문을 크게 해도 무방하지만 작은 공간에서 2개면 이상을 전면 창으로 한다면 기운이 안정되게 모이지 않는다. 1개면 이상 전면 창으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천장이 지나치게 높거나 방이 크고 화려하면 손님을 위압하여 안 좋다. 가게 중심점에서 출입문 방위를 기두로 삼고, 같은 사택 방위에 주요 물품을 전시한다.

양택풍수에서 제일 꺼리는 귀문방(鬼門方)은 가능한대로 피해야 한다. 음양이 바뀌는 방위인 간방(艮方, 북동쪽)과 곤방(坤方, 남서쪽)은 환절기와 같이 매우 예민한 방위다. 출입문이나 화장실, 쓰레기 보관 장소, 주방, 보일러실, 하수구 등이 귀문방에 있지 않도록 한다. 악취와 세균번식이 어느 곳보다 성하고 도둑이 잘 들어 손재수(損財數)가 있다. 팔괘의 속성이나 오행의 상생상극에 의한 상가(점포)나 사무실의 위치를 결정할 수도 있고 자신의 직업에 따라 이로운 방위를 추정할 수도 있다.

직원에게 좋게~
사무실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 사이에서도 풍수가 각광받고 있다. 풍수에 맞춰 사무실 내부 인테리어를 바꾼 뒤 매출이 신장하면 ‘풍수에 맞게 사무실을 꾸며 놨다(I had my office fengshuied)’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장의 집무책상 위치는 사장실을 회사 안 어느 곳에 두느냐보다 사운(社運)에 더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氣)가 우수한 곳에 책상을 두면 사장의 건강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정신이 늘 맑고 총명해 경영상 필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판단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임직원에게 좋은 풍수적 사무환경도 알아둘 만하다. 일단 책상을 길한 위치에 두는 것은 상식이다. 건물이 들어선 땅의 지형은 지대가 높은 곳(산)이 뒤쪽이고 지대가 낮은 곳(물)이 앞쪽에 해당한다. 책상은 지대가 높은 곳을 등지고 낮은 곳을 향하는 배산임수로 배치한다. 불가피하게 지대가 높은 곳을 거꾸로 바라보면 책상 뒤쪽에 산 그림을 걸어 인위적으로 배산의 형식을 취하면 문제가 없다. 창을 등지면 뒤쪽이 항상 불안하고 생기와 재물운이 창문을 통해 빠져나갈 염려가 크다.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을 등진 것보다 뒤가 든든한 벽을 등진 책상 배치가 보다 유리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응급조치로 창문에 가리개를 설치하면 기의 흐름이 바뀌면서 뜻밖의 효험을 볼 수 있다.

잎이 넓은 관엽식물을 사무실 구석진 귀퉁이나 예리한 모서리에 배치하면 좋다. 흉기를 중화시켜 안정된 기가 흐르고 임직원의 창의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녹색이 주는 편안함이 생각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들어 준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마음이 답답하면 책상 위에 작은 화분을 놓아둬도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조명은 직원들의 기분, 건강, 일의 능률에 영향을 미쳐 중요하다. 사무실이 어둡고 으스스하면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지 못한다. 불빛은 생기를 증진시켜 안정과 풍요를 가져다줘 밝을수록 좋다. 사무실 내 전구 중 깜박이는 것이 있거나 수명이 다해 점멸한 것은 즉시 교체해야 한다. 불 꺼진 전구처럼 회사의 사업운이 어두워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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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