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박근혜 출구전략 넷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2.05 10:43:12
  • 호수 10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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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국에 노후까지 대비?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불통은 계속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지만, 여전히 국민 정서와 괴리를 보였다. 하야·탄핵 등 자신의 거취 문제보다 최순실 사태와 선을 긋는 데 방점을 둔 인상이 강했다. 오히려 공을 국회로 넘겨 일련의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박 대통령의 출구전략이 드디어 발동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정치권에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담화의 핵심은 ▲자신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모두 국가를 위해서 한 일이라는 것 ▲대통령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 이 두 가지다. 사실상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야는 없을 것이란 대부분의 시민들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직접 자신의 거취 문제를 매듭짓지 않는 대통령의 모습에 시민들은 실망감을 표출했다.

담화 발표가 있은 지 하루가 지난 11월30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실시한 정기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내용이 ‘퇴진 요구에 충실이 화답한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18.7%에 불과했다. 반면 ‘특검과 탄핵을 피하려는 정치적 꼼수’라고 답한 사람은 74.2%로 약 4배가량 많았다.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해도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담화 발표 후 하야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창원시청 광장에 모인 5000여명의 지역 시민들은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쳤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거리로 나와 “즉각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경북서도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은 담화 직후 긴급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의 담화는 국민의 즉각 퇴진 요구와 특검, 국정조사, 탄핵 등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해당 단체는 박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한 이유가 시간 끌기를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출구전략1]
개헌 물타기

담화 내용을 보면 표면적으로 정치권 안팎서 불거진 ‘질서 있는 퇴진’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정치권에 공을 넘기면서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청와대는 그간 하야가 위헌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해왔다. 즉 국민과 야당이 촉구하는 조기 퇴진을 위해서라도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국회가 나서서 해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정치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박 대통령의 담화도 개헌을 담보로 한 결정으로 읽힌다. 개헌이란 단어를 직접 꺼내진 않았지만, 대통령이 언급한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를 위해서는 개헌이 유일한 방법이다. 사실상 국회가 개헌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 셈이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직전, 국회 시정연설서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던 것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앞서 박 대통령은 개헌을 두고 ‘블랙홀’이라고 정의내린 바 있어 정치권은 그 진정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상황이다. 개헌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시각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개헌 얘기가 정치권서 흘러나올 때마다 박 대통령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며 ‘개헌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를 전후로 박 대통령은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비난의 화살을 자신들에게 돌리기 위해서라고 진단하고 있다.


두 번째 개헌 카드로 정치권 싸움 부추겨
인력·시한 등 검찰보다 못한 특검 선택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정치권은 박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의 접점을 찾기 힘든 구조다. 차기 정권 창출을 두고 정면대결을 펼치는 여야이기에 지루한 합의 과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 개헌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당내 대선주자들의 유불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야 간 갈등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대표와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최근 비공개 회동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추 대표는 내년 1월까지 즉각적인 퇴진을 주장한 반면, 김 전 대표는 내년 4월 말까지 퇴진하면 된다고 맞섰다.

야권은 여야 협상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이후 더민주 추미애, 국민의당 박지원,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국회서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이 요구한 ‘임기단축을 위한 여야 간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불확실한 여야 협상에 맡겨 갈팡질팡하는 것보다 국회 절차에 맞춰 탄핵하는 게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당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는 최근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야3당에 대해 “참으로 오만한 태도”라며 “야당은 국회가 할 일, 정당이 할 일을 내팽개쳤다”고 비난했다. 여야 간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시민들의 화살은 정치권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다.

[출구전략2]
특검 선택

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박영수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하며 “본격적인 특검의 수사가 시작되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특검의 직접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수사에 대해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형사상 피의자로 규정한 검찰을 버리고 사실상 특검을 선택한 것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검찰이 제시한 대면조사 일정을 세 차례 어긴 바 있다. 지난달 29일 마지노선도 결국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검찰은 안 되고 특검은 된다는 것일까.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검찰수사를 ‘사상누각’이라고 혹평했다. 대통령 영향권 안에 있는 행정부 소속 검찰조직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특검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국면전환을 위한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특검수사팀은 특검 임명 후 20일간 준비기간을 거쳐 구성된다. 이후 70일 동안 1차 수사, 미진할 시 30일 추가 수사가 가능하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장 120일이 소요되는 것이다.

더민주 금태섭 의원은 “검찰수사는 당장 받아야 하지만 특검으로 가면 3개월 이상 시간을 벌게 된다. 그 사이 총리 문제 등으로 여야 진흙탕 싸움을 만들고 촛불집회가 시들해질 때를 노려 다른 방법으로 살길을 찾으려는 게 아닌가”라며 국면전환 의혹을 제기했다.


또 다른 이유로 특검이 검찰에 비해 화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인력, 조직력 등 수사의 힘을 결정짓는 사항 중 검찰에 비해 특검이 우위에 있다고 볼 만한 점은 없다.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인력 지원, 시간 제한 등에 자유롭다. 또한 국세청, 금감원, 공정위 등 유관기관의 측면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특검은 이러한 부분들에서 한계가 있다.

특검 키포인트는 당연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이다. 이는 탄핵과도 직결되는 혐의다. 그러나 특검이 이를 밝혀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관측이 법조계서 흘러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검찰은 대기업에 대한 압박 수사가 가능하지만, 특검은 한시적 조직이기 때문에 대기업을 압박하기 힘들다.
 

또한 역대 특검이 새로운 혐의를 입증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로 꼽힌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의 경우 경호실 관계자를 기소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전 대통령을 기소하는 데는 실패했다. BBK특검 또한 이 전 대통령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삼성 특검 역시 검찰수사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한 채 종결됐다.

[출구전략3]
동정심 유발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 해왔다.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나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담화 초반부터 지난 18년간의 정치인생을 언급하며 “가슴이 더 무너져 내린다”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등 감성적 발언을 쏟아냈다.

이를 두고 촛불로 들끓는 민심에 호소하며 지지층 결집을 모색한 발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등 자신의 결백을 강조한 부분은 일련의 의혹에 대한 모든 책임이 최순실씨에게 있다고 방점을 찍은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이어지는 담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동정심 유발해 보수 재집결 의도
‘탄핵 불필요’ 기류 비박계 감지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나의 큰 잘못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내에 소상히 말씀 드리겠다. 그동안 나는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해왔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호소에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던 당청 지지율이 드디어 멈췄다. 특히 새누리당은 국민의당에 내줬던 2위 자리를 다시 되찾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일 ‘레이더P’ 의뢰로 실시·발표한 ‘11월 5주차 주중집계(11월28∼30일, 1518명, 응답률 11.2%,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0.1%포인트 오른 9.8%로 조사됐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 역시 0.4%포인트 내린 86.0%로 회복세를 보였다.

새누리당도 최순실 사태로 지난 8주 동안 하락하던 지지율이 16.3%서 멈췄다. 국민의당이 15.3%로 하락함에 따라 새누리당은 2위 자리를 회복했다.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소수의 보수성향 지지층이 결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출구전략4]
탄핵 결사 저지

결국 탄핵을 막기 위한 담화 발표였다는 의혹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줄곧 탄핵보다 퇴진에 무게를 둬왔다. 이정현 대표는 지난달 30일 “야당이 12월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러한 기류는 비박계 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시점은 담화 발표 이후다. “탄핵에 앞장서겠다”던 김무성 전 대표 또한 “4월 퇴진이 적당하다”며 돌연 입장을 선회했다.

하야와 탄핵은 주체가 누구냐의 차이다.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야라면 탄핵은 국민의 손에 끌려 내려오는 것이다.

헌법 제65조는 탄핵에 대해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새누리당서 얘기하는 퇴진은 시한을 정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란 의미에서 하야와 별반 차이가 없다.

담화 발표 후 당청이 힘을 합치는 모습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탄핵과 하야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대한 법률적 지원 부분이 현격히 차이나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상실할 경우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을 수 없다. 경호동 마련과 경호 경비 예우 등을 제외한 연금과 각종 지원이 모두 사라진다.

반면 하야 시에는 임기를 마친 대통령과 동등한 지원을 받는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4조2항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은 임기 후 월급의 70%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 또한 경호 지원, 비서관 3명, 운전기사 1명, 사무실, 통신, 본인 및 가족의 치료 지원, 기타 필요한 예우 등을 모두 국민 혈세로 지원받게 된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절대 놓칠 수 없는 혜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흔들리는 탄핵 대오
9일도 장담 못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2일 국회 본회의 표결이 무산됐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1일 탄핵안 발의-2일 본회의 표결’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박 위원장은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 대오에서 이탈할 것을 우려해 2일 표결을 반대했다.

박 위원장은 회동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탄핵은 발의가 목적이아니라 가결이 목적”이라며 “비박계가 탄핵에 동참하도록 개별적으로 말했지만 불행히도 비박계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오는 7일까지 퇴진 약속을 하지 않으면 탄핵에 동참하겠다고 해 내일 탄핵 (의결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더민주는 탄핵소추안 2일 표결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의지를 보였으나, 국민의당의 거부로 사실상 무산됐다. 이에 비박계 측이 말한 것처럼 7일까지 박 대통령의 퇴진 약속이 없을 시 오는 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표결에 붙여질 예정이다. 그러나 비박계와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단일대오가 흔들리고 있어 9일 표결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지 않고 탄핵 절차에 들어갈 경우 국회 탄핵안 통과 뒤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180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헌재가 탄핵을 확정하면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일정을 감안하면 최소 8개월의 시간이 필요, 빨라도 내년 8월 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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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