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바라는 박근혜 구속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1.29 08:37:36
  • 호수 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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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맘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가능”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구속’이 광화문 광장서 울려 퍼졌다. 지난 다섯 차례 촛불집회 현장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백만명이 운집, 박 대통령에 대한 철저 수사를 촉구했다. 4%대로 추락한 국정운영 지지율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을 한 몸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수치다. 성난 민심은 진실규명에 있어 성역은 있을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박근혜 구속’은 점점 현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검찰 앞에 서는 상황은 부담스러웠나 보다. 지난 4일, 2차 대국민 사과를 통해 “검찰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이하 특검)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박 대통령은, 그러나 ‘진박’ 유영하 변호사를 선임한 후 돌연 태도를 바꿨다.

최근 유 변호사는 검찰 대면 조사 시점을 연기(지난 15일)하는가 하면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상태다.

피의자 박근혜
역대급 태세전환

이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이하 특수본)서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 표시였다. 앞서 특수본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안종범·정호성 간에 공모관계가 인정된다며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했다. 발표를 접한 유 변호사와 청와대는 ‘논리 비약’ ‘사상누각’이라는 단어를 쓰며 격분했다.

반면 검찰 측은 박 대통령 혐의 입증을 확신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최씨를 다방면으로 챙겨주려 측근들에게 지시한 내용들이 안종범의 수첩, 정호성의 휴대전화 녹취파일에 빼곡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녹취파일을 10초만 공개해도 촛불이 횃불이 될 것”이라고 밝힌 검찰 측 입장은 그들의 자신감을 잘 보여준다.

때문에 칼자루는 검찰 및 특수본이 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수본은 유 변호사를 통해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오는 29일까지 진행해야 한다고 요청한 상태다.

법조계에선 이번에도 대면조사에 불응할 시 검찰이 소위 ‘창고 대방출’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한다. 특검으로 넘어가기 전 검찰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고, 시간 끌기로 애먹였던 유 변호사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카드로 읽힌다.
 

정치권은 검찰로부터 공이 넘어올 시점을 한껏 벼르며, 일명 ‘쓰리 트랙’ 전략을 준비 중이다. ‘탄핵’ ‘특검’ ‘국정조사(이하 국조)’ 등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한 탄핵, 퇴진 후 사후처리까지 고려한 특검·국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매머드급 진상조사팀이 박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앞서 유 변호사는 특검을 ‘중립적’이라 표현했다(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유 변호사의 발언에 대해 “언제부터 야당을 중립적이라고 믿었느냐”며 일침을 가했다). 그 ‘중립적 특검’은 곧 실체를 드러낼 예정이다.

지난 17일, 진통 끝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 임명법’(이하 특검법)은 곧바로 국회 본회의로 넘겨져 가결됐다(재석의원 220명 중 찬성 196명, 반대 10명, 기권 14명).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은 지난 18일 정부로 이송됐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주재한 국무회의서 통과됐다.

이에 과연 누구를 특검으로 앉힐지 여부만 남았다. 특검법에는 더불어민주당 및 국민의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자 2명 중 1명을 박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보다 입맛에 맞는 특검을 결정하기 위해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통과되기 전인 11월 내 후보자 임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수사 몸통
퇴진에 조준

국조의 경우 과연 누가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할지가 관심사다. 최근 국조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서 여야는 증인 조율에 성공했다.

국조 증인에는 최씨와 차은택, 고영태 등 측근을 비롯해 김기춘(전 비서실장)·우병우(전 민정수석)·안종범(전 정책조정수석)·조원동(전 경제수석)·정호성(전 부속비서관)·이재만(전 총무비서관)·안봉근(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가 포함됐다.

또 이성한(전 미르재단 사무총장)·허창수(전경련 회장)·이승철(전경련 상근 부회장) 등 관련자, 박 대통령과 면담한 국내 대기업 총수 9명, 최씨의 딸 정유라와 조카 장시호, 언니 최순득까지 줄줄이 소환이 확정됐다.

다만 최대 관심사인 박 대통령 증인 채택은 물 건너갈 공산이 커졌다. 야당 의원들은 “성역은 있을 수 없다”며 박 대통령 증인 채택을 요구했지만, 여당 의원들의 극렬한 반대에 무산될 위기다. 대통령 증인 채택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는 게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대면조사’ ‘국조 증인’ 등이 사실상 무산되자 체포, 구속 등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대통령이라는 신분상 특수성을 이용,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습에 국민들이 다시 한 번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치권 ‘쓰리트랙’ 전략으로 옥죈다
검찰조사 거부…특검 바라는 의도는?

그렇다면 실제 체포나 구속이 이뤄질 가능성은 어떨까. 이 또한 정치권처럼 학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을 체포, 구속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측은 불소추 특권을 근거로 제시한다. 형사법을 연구하는 하태인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사라는 게 결국은 기소를 목적으로 한다. 대통령은 헌법상 보장하는 불소추 특권이 있기 때문에 기소를 못한다. 학계서도 기소가 불가능한 수사는 할 수 없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때문에 퇴임 후를 대비해 수사는 가능하다 할지라도 구속 수사까지는 어려울 것이다.”

“구속은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 가능하다. 검찰서 인멸을 우려하는 증거는 박 대통령 본인이 가지고 있다기보다 최씨 등 주변인들에게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도주 우려 또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구속 사유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구속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다만, 박 대통령이 출석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심문을 위한 체포는 가능할 수 있다. 구속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는 특수본 측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수본 관계자는 최근 복수의 언론을 통해 “체포 영장은 구속 기소를 전제로 청구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 헌법에 명시돼있는데, 헌법을 초월해 적용될 수는 없다”고 체포 등을 전제로 한 강제수사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퇴임 후 구속
실현 가능성은?


반면 체포, 구속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증거인멸’에 방점을 둔다. 류석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법률대응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헌법상 대통령에 대한 불소추 특권이 있지만,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대통령을 체포, 구속할 수 있다. 불소추 특권은 검사가 기소를 못한다는 뜻이지 수사를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체포, 구속은 수사 절차다. 때문에 검사가 의지만 있다면 체포, 구속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구속 요건으로 봐도 난 대통령의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금 청와대서 뭐 하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수사는 초동 수사가 매우 중요하다. 증거인멸이 끝난 후 수사를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때문에 기소는 못하더라도 증거인멸을 못하게 구속은 할 수 있다.”

법조계 내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 필요성이 확산되는 추세다.

인천지검 강력부 이환우(사법연수원 39기) 검사는 지난 23일, 검찰 내부 게시판 ‘이프로스’에 올린 글 ‘검찰은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를 통해 “범죄 혐의에 대한 99%의 소명이 있고, 이제 더 이상 참고인 신분이 아닌 피의자가 수차례에 걸친 출석 요구에도 불구하고 출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면, 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체포영장을 청구해 강제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우리의 법과 원칙”이라고 류 팀장과 같은 해석을 내놨다.
 

종합해 보면,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는 법리해석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체포는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구속과 달리 체포는 기소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또한 최근 “검찰은 출석 요구서를 발송하고, 불응 시 체포영장 신청도 고려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구속 요건 두고 학계선 이견
열쇠는 탄핵…내년 6월 결정

한편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 도주 가능성을 제기해 눈길을 끈다.

제57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는 광주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박 대통령은 사퇴 순간 구속이 될 것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자진사퇴는 없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본인으로서는 망명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 것이다. 일본계 페루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부패 스캔들이 일자 일본으로 도피해 팩스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탄핵이 박 대통령 구속 여부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를 통과한 탄핵 소추안이 헌재서 합헌으로 판결날 경우 박 대통령은 즉시 직위를 상실한다.

구속 영장 청구는 피의자의 직위, 직무와 관련 없지만 대통령이라는 가림막이 벗겨지는 순간 검찰이 특단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금처럼 민심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또한 특검에서 제3자 뇌물수수 혐의까지 추가한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체포, 구속 여론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핵심은 특권
탄핵되면 사라져

탄핵안은 빠르면 다음달 2일, 국회 본회의에 부쳐진다. 바야흐로 탄핵 정국이 목전까지 가까워진 셈이다. 최근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여당 비주류까지 탄핵 여론에 동참하면서 탄핵안은 어렵지 않게 통과될 것으로 정치권은 예상 중이다. 그러나 실제 탄핵까지 갈 길은 아직 먼 상황이다.

익명의 한 야권 관계자는 탄핵안 판결은 빠르면 오는 6월경 결정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국민과 함께 하는 탄핵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서 “뇌물죄 기소를 못하고 직권남용·알선수재·강요 등으로만 기소된다면 헌재에서 (탄핵안이) 기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총장 압박’ 박지원의 경고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서 박 위원장은 “김수남 검찰총장이 나가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뜻이라면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또 하나 추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데 따른 것이다. 같은 당 장병완 의원은 “김 장관과 최 수석의 사의는 정부와 청와대의 분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두 사람의 사의 표명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경고·압박용이라는 주장이다. 만약 김 총장까지 사의를 표한다면, 청와대가 검찰 조직에 보복한 것이라는 의혹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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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