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손학규

‘이랬다 저랬다’ 몸값만 떨어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손사래치던’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드디어 돌아왔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간 지 꼬박 2년 만이다.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선언에 대선판이 어떤 방향으로 요동 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손 전 고문의 그간 행보와 정계 은퇴 번복 과정, 향후 반향에 대해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이제 7공화국을 열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모든 것을 내려놓아 텅 빈 제 등에 짐을 얹어주십시오.”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하 손 전 고문)이 지난 20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서 정계 복귀를 공식선언하고 다시 정치권으로 뛰어들었다.

손 전 고문의 복귀 선언에 1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구도에 또 하나의 변수가 더해졌다. 그는 “정치와 경제의 새판짜기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 국회의원·장관·도지사·당 대표를 하면서 얻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겠다. 당적도 버리겠다”며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탈당도 선언했다. 그의 더민주 탈당으로 제3지대 정계개편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새판짜기
안철수와 연대

손 전 고문은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서 경기 수원병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에게 패했다. 그는 다음날인 7월31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 칩거에 들어갔다.

당시 손 전 고문은 은퇴 기자회견서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저의 생활 철학”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하는데 재보선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도 했다.


당시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그의 정계 은퇴 선언이 영구적이진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허다했다. 실제 손 전 고문은 야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강진 칩거 2년2개월 동안 정치권 인사들과 언론은 그의 행보에 수많은 억측을 내놨다. 그 사이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론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흘러 나왔다.

손 전 고문이 칩거생활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와 맞물려 당대표 후보군들이 손 전 고문을 연일 찾아간 것이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내부 계파끼리의 경쟁이 첨예한 상황이었다.

그 과정서 친노 진영과 대척점에 있던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 박지원 원내대표, 더민주 박영선 의원 등은 손 전 고문을 찾아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 측은 정계 복귀 가능성에 대해 일축했다.

지난해 5월에는 손 전 고문이 서울 구기동으로 거처를 옮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한번 정계 복귀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경조사 참석 차 두 차례 상경하는 등 취재진 앞에 몇 번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평창·구기동 일대는 정치계 인사들이 많이 살고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구기동은 당시 문재인 전 대표가 이사해 살고 있는 곳인 만큼 그의 거처 이전은 묘한 해석을 낳았다.

위치뿐만 아니라 시기도 미묘했다. 손 전 고문이 이사한 시기는 새정치연합이 4·29재보궐선거서 새누리당에 참패한 직후였다. 새정치연합은 야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던 서울 관악을 의석을 빼앗긴 것은 물론 광주 서구을에서 천정배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지는 등 완패했다.
 

새정치연합의 재보궐선거 패배는 당대표였던 문 전 대표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겼다. 선거 패배로 문 전 대표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손학규 대안론’이 급부상한 시기이기도 했다.


2년 만에 정계 복귀…은퇴 또 번복
더민주 탈당 선언 당적도 오락가락

또한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호남발 신당 바람도 불고 있던 때였다. 손 전 고문의 측근은 “분당 아파트 전세를 더 이어갈 이유도 없고, 마침 손 전 고문의 딸이 구기동 인근에 거주해 딸 가족과의 접근성을 고려해 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 측은 복귀 가능성에 대해 부인했지만 일각에선 정계 복귀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여기저기서 울리는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초심 그대로, 조용히 있겠다”며 복귀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지난해 8월에는 박영선 의원이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서 정계 복귀를 촉구한 적도 있다. 박 의원은 “그 분(손 전 고문)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 등을 봤을 때 커다란 역할이 부여돼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손학규 역할론을 내세웠다.

손 전 고문이 한나라당을 탈당할 당시 내세웠던 메시지를 언급하며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국민들이 바라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야당 지도자를 찾고 있는데, 손 전 고문도 분명히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당 창당설로 세간에 오르내리던 천정배 의원 역시 “한국 정치 상황이 워낙 어렵고 특히 야권이 지리멸렬해 있기 때문에 (손 전 고문이) 큰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게 제 솔직한 바람”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행보…
찻잔 속 태풍?

그 와중에 손 전 고문이 음악회 참석으로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손 전 고문의 등장에 야권은 들썩이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당시 그의 주가는 천정부지에 달해 있었다.

야권 재편 논의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손 전 고문을 구심점으로 판을 바꿔보려는 인사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4월 총선서 ‘새정치연합 80석 예상’ 등 참패론이 나오고 있던 시기라 손 전 고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는 정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본격적으로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11월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계 은퇴 선언 후 카자흐스탄서 첫 해외강연 후 뒤 귀국 현장에서 그는 취재진과 만나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거나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국민을 통합하는 일을 해야 한다”며 묘한 뉘앙스로 발언했다.

박근혜정부의 현안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르게 신랄하게 비판했다.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 “우리 학생들은 편향되지 않은 역사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기성세대는 학생들에게 편향되지 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담보해줘야 한다”면서 “역사 교과서는 학계 최고 권위자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집필할 수 있도록 맡겨줘야 하고, 국가는 그런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2년 넘는 칩거기간 동안 정치권과는 거리를 둔 손 전 고문은 이후 11월22일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때 모습을 보였다. 그는 매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켰고, 정치권에선 이를 계기로 그가 정계 복귀에 시동을 걸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조문 정치, 빈소 정치로 불린 손 전 고문의 행보는 그가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 후 강진 토굴로 되돌아가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의 이름은 야권 분열, 신당 창당, 제3지대론 등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됐다. 지난해 12월, 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도 손 전 고문은 ‘대안, 역할, 구심점’ 등 정치권 지각변동의 변수로 언급됐다.

그쯤에는 손 전 고문도 칩거 초반보다 훨씬 더 열린 태도로 정계 복귀에 대해 논했다. 손 전 고문은 “강진의 산이 나보고 ‘아우 더 이상 너는 이제 아주 지겨워서 못 있겠다, 나가 버려라’ 그러면 뭐 그때는…”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는 만나지 않겠다’ ‘돌아갈 가능성 없다’ 등 단호하게 복귀를 부인했던 때와는 달라진 분위기였다.

야권 유세 거절
복귀 시점 놓쳐

안 전 대표가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새로운 세력을 규합하고 있을 무렵 손 전 고문에 대한 러브콜이 사방팔방에서 이어졌다. 하지만 총선 시기와 맞물려 정동영 의원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던 것과는 달리 손 전 고문은 상황을 관망하는 쪽에 가까웠다.

특히 더민주 내 손학규계로 분류됐던 의원들이 야권 재편에 따라 탈당과 잔류 등으로 엇갈린 행보를 보이면서 손 전 고문의 향방을 예측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정치권의 러브콜에도 묵묵부답을 유지하던 손 전 고문은 올해 1월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초청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뒤 귀국한 자리에서 “새판을 짜서 새로운 희망을 주고 우물에 빠진 정치에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새판짜기’는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를 전격 선언한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된 단어다.


‘정치권 복귀 의사는 없다’면서도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던 손 전 고문은 총선이 다가오자 자신의 측근들을 측면 지원하기 시작했다. 손 전 고문은 더민주 이찬열, 우원식, 이언주 의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격려 메시지를 보냈고, 국민의당 최원식·김성식 의원의 개소식 때도 격려사를 전했다.

손 전 고문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찬열 의원은 그가 정계 복귀를 선언한 후 탈당을 발표할 정도로 사이가 가깝다.
 

4월이 되면서 손 전 고문에 대한 SOS는 간절한 수준으로 변했다.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는 총선을 일주일가량 남긴 시점에서 “손 전 고문께 남은 선거기간 동안 유세를 간곡히 요청할 예정”이며 “공식적으로 더민주를 도와달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민주 당적을 유지하고 있던 손 전 고문은 소속 정당 대표의 공식 요청에도 유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정계 은퇴 약속과 원칙을 지킬 것”이라며 결국 다시 토굴로 돌아갔다.

일각에선 손 전 고문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후 야권이 총선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두면서 이 분석은 힘을 얻었다.

슬슬 간보다 이미지만 나빠졌다
기회 많았지만 결국 최악 타이밍

총선 이후 손 전 고문은 4·19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등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빈도수를 높였다. 또한 총선 당선자들과의 오찬 자리서 “20대 국회에서 근본적인 제도 개선과 제도 혁명을 위한 새판짜기에 나설 수 있도록 모두 마음을 단단히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새판짜기로 대변되는 손 전 고문의 정치적 발언은 무수한 해석을 낳았지만 그는 “(4·19 묘지 참배가) 정치적 의미를 둘 만한 일은 아니다”라며 또 한 번 복귀설에 대해 일축했다.

지난해 11월이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가시화한 시점이라면 올해 5월은 구체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7월 복귀설, 8월 복귀설, 9월 복귀설 등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시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총선 때 국민의당의 약진으로 야권 개편이 이뤄진 상황에서 더민주 김 전 대표가 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손 전 고문은 그 대항마로 정계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사이 손 전 고문은 5·18 시기에 야권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에 방문했다. 당시 손 전 고문은 “국민이 새 판을 시작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광주의 5월은 그 시작”이라며 또 다시 새판에 대해 언급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강연에선 “대선주자들이 개헌에 대한 각자의 안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다음 대통령이 취임해 개헌을 추진하는 게 효과적 방법”이라며 개헌론을 제기했다. 부쩍 잦아진 손 전 고문의 공개 행보와 발언에 그의 정계 복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할 때마다 정치적 발언으로 주목받았던 손 전 고문은 일본 방문 뒤에도 “국민적 요구를 담아낼 그릇인 정치에 금이 갔기 때문에 새 그릇이 필요하다”며 새판에 이어 새그릇론을 내놨다. 새판, 새그릇 등은 손 전 고문이 정계 복귀를 위해 쌓는 명분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사실 그의 정계 은퇴 번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손 전 고문은 2008년 통합민주당 대표로 있을 무렵 18대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2년여간 강원도 춘천에 칩거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손 전 고문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졌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 “필요할 때 역할을 할 것” 등의 말로 복귀설을 부인했다. 이에 손 전 고문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2010 6·2 지방선거서 야권연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그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출마 희망자들의 지원 요청이 쇄도했고, 결국 수원 선대위원장을 맡아 이찬열 의원의 당선을 견인하는 등 손 전 고문의 영향력이 확인됐기 때문에 ‘부드럽게’ 정치 복귀가 가능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는 그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4월 총선 당시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러브콜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국민 무관심
지지율 3%

게다가 총선이 야권의 승리로 마무리 되면서 손 전 고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새누리당은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며 “큰 폭발력은 없을 것”이라는 구두 논평을 내놨다. 더민주서도 이찬열 의원 외에 추가 탈당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제3의 길은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등 대형 이슈가 언론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서 복귀 선언이라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9월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손 전 고문의 지지율은 3%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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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