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스포츠 대통령’ 이기흥 초대 통합 대한체육회장

600만 체육인 대표 ‘자격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 이래 초대 회장을 뽑는 선거가 열렸다. 이번 선거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2020도쿄올림픽 등 큰 대회를 지휘할 수장을 뽑는다는 점에서 안팎으로 큰 관심이 쏠렸다. 다섯 명의 후보가 나선 선거 결과는 이기흥 전 대한수영연맹 회장의 승리. 이 신임 회장은 오는 20212월까지 통합 대한체육회를 이끌게 됐다. 당선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산적해 있는 다양한 문제를 맞닥뜨린 이 회장의 상황을 살펴봤다.

 

통합 대한체육회는 지난 5일 초대 회장 선거를 진행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서 열린 이번 선거에는 장정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 이기흥 전 대한수영연맹 회장, 장호성 단국대 총장, 전병관 경희대 교수(기호순) 등 다섯 명의 후보가 나섰다.

30% 지지 당선
분산표 덕 봤다

이기흥 신임 회장은 이날 투표에 참여한 선거인단 892명 가운데 294표를 획득, 장정수(25), 이에리사(171), 장호성(213), 전병관(189)을 제치고 통합 대한체육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 회장은 당선 직후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다며 당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통합 대한체육회의 재정 자립과 선수들의 일자리 창출 등을 역점으로 두고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선거는 대의원 투표로 치러졌던 과거와 달리 체육단체 임원과 선수·지도자·동호인 등 체육인 및 관계자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통합 대한체육회장은 연간 4000억원에 달하는 예산과 엘리트 및 생활체육을 포함, 600만명의 체육인들을 관리해야 한다.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임과 동시에 스포츠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파워가 있는 자리다.


하지만 이 회장은 당선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단체 통합 과정서 불거진 정부와의 갈등, 과거 6년간 이끌었던 수영연맹 비리 책임론 등 널려 있는 암초를 헤쳐 나가야 한다.

체육계 예산 지원·재정 확보 관건
문체부 반대파…향후 정부와 관계는?

통합 대한체육회가 출범하기까지 ()대한체육회(이하 체육회)()국민생활체육회(이하 국체회)의 통합 과정은 수많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33일 체육회와 국체회를 통합체육회로 합치는 내용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전문 체육을 담당하는 체육회와 생활체육을 담당하는 국체회를 하나의 단체로 통합해 효율성을 추구하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체육회와 국체회 통합 문제는 체육계의 오랜 현안이기도 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6월 두 단체의 통합을 위한 통합준비위원회를 출범하면서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따라 올해 327일까지 통합이 완료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통합에 적극적인 입장이었던 문체부는 체육회와 갈등을 빚었다. 체육회는 규모나 예산 등에서 국체회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 통합 후 두 단체에 똑같은 권리를 주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문체부와 체육회의 갈등은 지난 2월, 통합 대한체육회 발기인 총회가 체육회의 반발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무산됐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체육회는 통합 대한체육회 정관 등을 문제삼아 불참을 선언했다. 문체부는 체육회의 불참에도 1차 발기인 대회를 강행했다. 당시 발기인 대회는 통합준비위원 11명 중 6명만 참석한 반쪽짜리로 진행됐다.


발기인 대회 파행을 두고 문체부와 체육부는 서로 책임론을 주장하며 맞붙었다. 이 과정서 당시 체육회 통합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던 이 회장이 문체부와 각을 세웠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체육회 정기 대의원총회서 문체부가 지금껏 해왔던 방식처럼 강압적, 일방적으로 대한체육회 입지를 축소하고 왜소하게 만드는 불합리한 의사결정을 한다면 위원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문체부의 행보를 꼬집은 바 있다.

 

정관 문제로 진통을 겪던 통합 과정은 지난 37일 발기인 대회에 11명의 위원이 전원 참석해 새 정관 채택, 체육회 김정행 회장과 국체회 강영중 회장을 공동 회장으로 하는 이사 선임안 등을 의결하면서 간신히 봉합됐다.

우여곡절 끝에 체육회와 국체회는 지난 321일 법적 절차를 완료하고 통합됐다. 두 단체의 통합으로 1991년 국체회 창립 이후 분리됐던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25년 만에 다시 한지붕 아래 놓이게 됐다. 통합 대한체육회는 지난 48일 출범식을 진행하면서 대통합을 이뤘지만 물밑에선 체육회와 국체회의 내분이 상당했다. 또 지난 5일 있었던 선거 때문에 8월에 열렸던 리우올림픽을 등한시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 여자배구대표팀이 네덜란드에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한 후 배구협회의 지원이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문제는 더욱 불거졌다. 당시 배구협회는 올림픽 기간 중 협회장 선거를 치르면서 대표팀에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아 큰 비판을 받았다. 배구협회는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일정에 따라 812일까지 협회장 선거를 마쳐야 했다고 해명했다.

이 회장은 이 같은 곡절을 넘어 통합 대한체육회 수장 자리에 오른 상황이다. 당장 통합 과정서 생긴 두 단체의 내분과 문체부와의 갈등 해소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 회장은 출마했을 때부터 반문체부 인사로 꼽혔던 인물이다. 문체부로서는 통합 과정서 사사건건 체육회의 입장을 대변해왔던 이 회장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통합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 출마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통합 대한체육회 이사회는 관리단체로 지정된 종목 회장의 자격 상실 여부 조항을 개정해 한 달간 소급이라는 항목을 넣었다. 이 회장의 경우 지난 319일 수영연맹 회장직서 사퇴했지만 연맹의 관리단체 지정일은 325일로 소급적용 되는 한 달 이내에 있기 때문에 후보 자격이 없다는 게 쟁점이었다.

이변, 차악…
반응 속출

이 회장은 통합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후보자 지위 인정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이미 발생한 후보자 사임 효력을 소급적으로 제한하고 그 결과 후보자 자격까지 소급적으로 박탈하는 규정은 회장 피선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문체부가 회장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국정감사서 터져나왔다. 지난 4일 교문위 국감서 국민의당 유성엽 위원장은 문체부서 내일(5) 있을 체육회장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있다며 관건선거 의혹을 꺼냈다.

문제는 이를 해명해야 하는 문체부 심동섭 체육국장이 병가를 받아 국감에 배석하지 않은 점이다. 이를 두고 여야 의원들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문체부서 이 후보만 (회장이) 안 되면 된다는 말이 돈다는 의혹이 있을 정도였다.

이 회장은 문체부와 갈등에 대해 “(문체부와) 총론에선 같은 의견인데 각론에서 이견이 있었다이견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 부족한 부분을 갖추면서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겠다고 했다.


수영연맹 비리
리더십? 글쎄∼

20101월부터 6년간 수장으로 있었던 수영연맹이 비리로 얼룩져 관리단체로 지정된 것도 이 회장에게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수영연맹 내부 비리 등 각종 구설수로 불명예 퇴진했다.

당시 수영연맹은 전무이사를 비롯한 임원, 시도연맹 지도자들이 횡령 및 금품 상납, 선수 선발 비리 등의 의혹으로 비리 종합세트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수영연맹 비리 사태는 이 회장이 선거에 출마한 이후 내내 발목을 잡았고 당선 이후에도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지난 2월 수영연맹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일각에선 문체부에 반기를 든 이 회장을 찍어내기 위한 표적수사라는 말이 나왔지만 조사 결과 드러난 수영연맹의 비리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지난달 26일, 문체부는 산하단체인 스포츠 비리 신고센터에 신고된 스포츠 비리 사례를 분석해 <스포츠 비리 사례집>을 발간했다. 사례집에 따르면 20143월부터 지난 6월까지 센터에 신고된 580건의 스포츠 비리 사례 가운데 조직 사유화비리가 205(35.3%)으로 가장 많았다. 사례집에서 장기 집권을 통한 조직사유화 사례로 들고 있는 건 수영연맹의 상황이다.


사례집에 따르면 수영연맹 임원들은 10년 넘게 간부로 재직하면서 국가대표 선발, 연맹 임원 선임 등에 개입했고, 그 과정서 뒷돈을 받았다. 허위 훈련계획서를 통한 공금 횡령 과정서 회계 장부에 잘못된 날짜를 기입했지만 적발되지 않았다.

용광로론 주장하지만
갈등 풀기 쉽지 않아

실제 수영연맹 내부 간부들은 이중 계약서 등에 ‘333일 송금’ ‘20012이라고 기록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금만 살펴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문제들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것이다. 이는 학연, 지연 등 특정 인맥의 장기 집권으로 수영연맹 내부의 통제와 감사 기능이 마비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가대표 선발을 포함해 임원, 감독 선임과 관련, 명확한 세부기준과 법령조차 없었던 점도 임원들의 뒷돈 거래를 도왔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선수들의 훈련비, 복지, 처우 개선 등에 사용돼야 할 국민 세금이 수영계 일부 지도자들의 부정한 뒷돈으로 거래되면서 선수들이 입은 피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선수들은 일부 지도자들의 전횡에 당황스럽다.” “선생님에게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등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법원은 이들에게 징역형의 철퇴를 내렸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서 뒷돈을 받거나 훈련비 등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수영연맹 임원들은 1심서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는 지난달 2일 수영연맹 전 전무이사 정모씨에게 징역 3, 추징금 43900만원을 선고했다. 수영연맹 전 시설이사 이모씨에게도 징역 3년과 추징금 42950만원을 선고했다. 각각 배임수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다.

재판부는 정씨에 대해 피고인의 범행은 선수들의 발전을 가로막고 수영계 전체의 신뢰를 손상했다며 실형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또 이씨에 대해선 선수들을 위해 사용돼야 할 훈련비를 카지노서 도박을 하는 데 사용하거나 자신의 생활비로 유용한 것은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수영연맹 내부 임원들의 비리 현황을 본 한 체육인은 수영연맹은 마피아 같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여성 탈의실에 몰카를 설치하고 촬영한 혐의로 전 국가대표 선수가 영구제명되는 일도 있었다. 대한수영연맹관리위원회는 지난달 13일, 전 경영 국가대표 선수에 대해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라 영구제명의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 선수는 20136월쯤 충북 진천선수촌 수영장 여성 탈의실에 몰카를 설치하고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8월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탈의실 몰카 파문으로 안중택 대표팀 감독은 선수 관리 소홀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수영연맹 내부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비리, 성추문 등이 발각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회장에게 책임론이 쏠렸다. 이 회장이 비리에 관련된 정황이나 개인 비리 등이 없다 해도 6년이나 수영연맹을 이끈 수장으로서 내부 단속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해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갈등
못 피할 듯

1955년 대전서 태어난 이 회장은 체육인 출신은 아니지만 2000년 근대5종 경기 연맹 부회장을 맡으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4년부터 2009년까지는 대한카누연맹 회장직을, 2010년부터 올해 초까지는 대한수영연맹 회장직을 수행했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2런던올림픽 때 한국선수단장을 맡았고, 2013년부터 올해까지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체육계 안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했다.

체육계 안팎에선 이 회장의 통합 대한체육회장 당선을 두고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현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막기 위해 반 정부 인사로 분류된 강성이 회장을 밀었다는 것.

이 회장은 체육계서 굵직한 요직을 맡으며 입지를 다져왔지만 당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목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정부와도 껄끄럽고 비리 문제서도 자유롭지 않은 이 회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체육인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재정 자립, 일자리 창출, 인프라 확충 등 구체적인 공약이 부동층의 표심을 움직이면서 당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여기에 장호성, 이에리사, 전병관 후보가 친 정부 인사로 분류되면서 표가 분산된 것도 호재였다.

일단 이 회장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이 회장은 지금은 추스려야 할 때다. 집으로 치면 여기저기 어수선한 분위기다이를 수습해 우선 사람이 사는 공간을 만드는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가 될 부분이 많았지만 체육인들은 이 회장을 선택했다. 이 회장이 투표 전 소견 연설서 일자리가 체육인들에게 최고의 복지라며 체육인들에게 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할 것이라는 단언이 달콤하게 들렸을 수도 있다.

이 회장의 당선은 체육계 안팎에서 이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놀라운 결과다. 이 회장은 앞으로 4년간 체육인들의 지지에 답해야 할 의무를 짊어지게 됐다. 여전히 위험요소를 잔뜩 품은 이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검증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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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