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인 대상’ 수상에 비친 박현주(미래에셋그룹 회장)의 허와 실

금융계의 신화? 투자자 신뢰 떨어뜨린 최악의 인물?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첫 번째 금융투자인 대상을 차지했다. 특유의 공격적인 투자 방식을 높게 평가 받은 데 따른 것이다. 당초 이번 수상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박 회장은 금융계의 ‘신화’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을 뒤엎고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첫 번째 금융투자인 대상에 적합한가’라는 의문이 들려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값 못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금융계의 아이콘 박현주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제1회 금융투자인상 시상식서 대상 수상 영광 차지
성공 스토리 하버드대 사례연구 주제로 선정되기도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제1회 금융투자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금융투자협회는 지난 7일 협회 창립 2주년을 맞아 금융투자인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금융투자인상을 제정하고 첫 수상자로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선정, 이날 시상했다고 밝혔다.

대학생 때부터
주식 실전 경험

박 회장은 적립식·간접 투자개념을 새롭게 정립시켜 개인들의 안정적인 자산 형성에 기여한 점과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과 펀드상품 수출 등을 통해 자산운용업을 금융투자 산업의 탄탄한 축으로 성장시킨 공로를 높게 평가받았다.

금투협 관계자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글로벌 마인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자본시장 종사자들에게 희망과 도전정신을 고양시킨 공적이 높이 평가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1958년생으로 광주에서 태어났다. 중농의 집안에서 자라나 전라도의 명문 광주일고를 거쳐 1978년 고려대에 입학했다. 그가 주식시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생 때의 일이다. 집에서 부쳐준 생활비를 밑천으로 명동 증권가를 누비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대학원생이던 1984년에는 작은 사설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 증권 투자로 번 돈으로 서울 회현동 코리아헤럴드 빌딩 18층에 20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었다. 직원도 한 명 뒀다.

2년 뒤인 1986년, 박 회장은 투자자문회사를 접고 증권회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투자자문회사 설립에 법적 근거가 없고 아직 개인사업자가 독자적 브랜드로 자본시장에 뛰어들 분위기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박 회장은 동원증권 영업부에 지원했다. 당시 증권가 최고스타였던 이승배 동원증권 상무(현 한셋투자자문 사장)의 영업스타일과 브로커로서의 자세를 배우고 싶었던 박 회장은 수차례 문전박대를 이겨내고 입사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불과 45일 뒤 대리로 승진했다.

그러던 1989년, 동원증권 중앙지점장으로 발탁되면서 박 회장은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나이 33세, 최연소 지점장이었다. 2년만에 중앙지점을 전국 1등으로 올려놨다. 압구정 지점장으로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같은 전력을 바탕으로 1995년에는 이사로 승진했다. 이 역시 최연소 임원 승진 기록이었다. 하지만 1997년 6월 박 회장은 당시 구재상 압구정지점장, 최현만 서초지점장 등 8명의 ‘박현주 사단’과 함께 잘 나가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미래에셋캐피탈(옛 미래창업투자) 창업을 위해서였다.

박 회장은 1998년 초 시중 금리가 연 30%를 향해 치닫고 있을 때 증시 폭락과 금리 인하, 채권 가격 급등을 예상하고 미래에셋 운용자금 200억원을 채권에 풀베팅했다. 대성공이었다. 예상대로 시중 금리가 20%대로 급락하면서 채권 값이 급등해 5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1999년에는 24억원을 투자했던 포털업체 다음의 주가가 6개월만에 폭등하며 1000억원에 가까운 매매차익을 가뿐히 거둬들였다.

1998년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 뒤 자신의 이름을 붙인 뮤추얼펀드를 내놨다. 500억원 규모로 출범한 ‘박현주 1호’는 2시간30분만에 판매가 마감됐고, 박 회장의 주식운용 능력에다 증시 활황까지 겹쳐 1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부록으로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뮤추얼펀드가 성공하자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유사 상품을 앞다퉈 내놓는 등 뮤추얼펀드 붐을 일으켰다. 적립식펀드의 대중화를 이끌며 은행 예금 위주의 저축문화를 2004년 이후에는 적립식펀드 위주의 투자문화로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연이은 성공에 힘입어 2005년에는 생명보험사를 인수해 증권과 자산운용, 보험으로 짜인 투자전문그룹으로 도약했다.

손대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는 박 회장에 증권가의 이목이 집중됐다. ‘박현주가 샀다’는 소문만 나도 주가가 뛸 정도였다. ‘미래에셋의 글로벌 성장 스토리’와 ‘박현주 회장의 기업가정신’은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케이스스터디 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CEO가 기업가정신 사례로 선정된 것은 박 회장이 처음이다.

인사이트펀드 한때 반토막 나면서 투자자에 치명상
투자자들 속 타들어가는데 거액의 펀드 수수료 챙겨

그러던 2007년 말, 박 회장은 일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해 10월 말 시중 자금을 싹쓸이하며 펀드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인사이트 펀드’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것.

인사이트 펀드는 한 달만에 4조원어치가 팔렸지만, 6개월 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수익률이 곤두박질쳤다. 펀드는 지난 2008년 11월19일 현재 설정액 4조6000억원에 순 자산액이 1조9700억원 정도로 평가됐다. 2조5000억원을 날리고 만 것이다. 이는 투자액의 60%정도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인사이트 펀드의 몰락이 ▲분산투자라는 원칙 무시 ▲펀드 운용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투자자들의 ‘묻지 마’ 식 투자 등 여러 요인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분석했다. 인사이트 펀드는 ‘효율적인 분산투자로 시장 위험에 대처한다’는 미래에셋 홍보와 달리 대부분 운용 자금을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국가에 투자해 손실을 키웠다. 결국 박현주라는 브랜드를 믿고 묻지 마 투자에 나섰던 개인들은 원금이 반토막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명성만큼 큰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쪽박을 찬 투자자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감에도 미래에셋이 거액의 펀드 수수료를 챙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온갖 악평이 난무했다. 고객들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수수료는 수수료대로 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미래에셋은 연 최고 3.49%의 높은 수수료를 적용, 판매한 지 3개월만에 150억원이 넘는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액 60%
2조5000억 날려

여론이 들끓자 박 회장은  배당금 반납 카드를 들고 나왔다. 자신에게 배당될 200억원대 배당금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비난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수조원을 날려놓고 200억원대, 그것도 개인 재산이 아닌 배당금 포기로 감당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사재를 털어 사회헌납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연속적인 대박 덕에 금융투자업계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군림했던 박 회장에게 인사이트 펀드는 재앙이었다.

인사이트 펀드의 악몽이 지속되자 박 회장은 결국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국내 언론과 가진 공식 인터뷰는 2007년 11월이 마지막이다. 지난해 4월 오랜 침묵을 깨고 뉴욕에서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했지만 일방적으로 뉴욕시장 진출 계획을 밝힌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비난의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잠해질 만 하다가도 배당 소식만 나오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 손실을 벗어나지 못한 투자자들이 적지 않은 데다 미래에셋의 펀드 운용 성과가 저조한 데도 불구, 수백억대의 배당금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박 회장은  154억원의 두둑한 배당금을 받았다. 당시 미래에셋의 전체 국내 주식형펀드(설정액 10억원 이상, 중소형주펀드, 인덱스펀드, 테마형펀드 등 제외) 1년 평균 수익률은 20.91%로 전체 44개 운용사 가운데 29위인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2년 평균 수익률은 -4.51%로 39개 회사 중 22위에 그치는 등 2008년 금융위기 후 힘을 못 쓰고 있다.

물론 박 회장도 이 같은 상황을 지켜만 본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박 회장은 부동산 사업에 눈을 돌렸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를 인수하고, 그룹 내 부동산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에서 KRIA를 분리시키는 등 사업 역량 강화에 나섰다.

이 결과 박 회장은 쏠쏠한 재미를 봤다. 2008년 말 ‘미래에셋 기흥연수원’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450억원에 매각해 두 배 가까이 매각 차익을 거둔 데 이어 국내외 유수 빌딩을 사들이며 부동산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가 마냥 박 회장의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무리한 투자로 낭패를 본 경우도 적지 않다.

미래에셋증권은 서울 여의도 지상 53층 규모의 파크원 오피스 타워를 8047억원에 매입키로 결정, 일부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개발 사업이 ‘지상권 문제’로 부지 소유자 통일교재단과 시행사 스카이랜드 간 법정공방이 가시화되면서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만일 갈등이 장기화되거나 사업 자체가 무산될 경우 사실상 미래에셋은 손실이 불가피하다.

1인 중심 지배구조
누구도 거역 못해


또 지난 2009년 미래에셋맵스의 대표 부동산 공모펀드인 ‘미래에셋맵스아시아퍼시픽부동산 공모1호’ 펀드도 구설에 휘말렸다. 이 펀드는 금융 한파로 4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미국 씨티그룹센터 계약을 철회한 데 이어 홍콩 벨에어 아파트 투자에서도 손실을 입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세종로 옛 금강제화빌딩 일대(세종로1지구 재개발사업)에 건립키로 계획한 그룹 신사옥도 전 시행사 디비스코리아 측과 ‘시행권’을 차지하기 위한 법정다툼으로 아직까지 답보 상태다.

현재 박 회장은 펀드 시장에서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린 최악의 인물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반면, 과감한 도전정신만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의 제1회 금융투자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될 수 있던 것도 이 점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회장의 지나치게 공격적인 운용은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세장에선 ‘대박’을 터뜨릴 수 있지만 하락장을 만나면 ‘쪽박’ 차기 십상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박 회장의 결정에 대해 미래에셋 내부에선 아무도 “노”라는 의견을 내지 못한다. 미래에셋 지배구조가 박 회장 1인 중심으
로 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박 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최대 주주다. 또 미래에셋캐피탈은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