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또 일낸 이재오

날개는 폈는데…비상이냐 추락이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대 대선까지 13개월이 남았다. 정국은 빠르게 대선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당대표 선거에서 주류인 친박과 친문을 선택했다. 선택받지 못한 비주류들은 제3지대서 대권을 겨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재오 전 의원이 중도신당 창당 작업에 착수했다. 여권발 제3지대라는 쉽지 않은 길을 가려는 이재오의 도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이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늘푸른한국당(이하 늘푸른당)이 지난 6일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창당 준비에 들어갔다. 늘푸른당은 이날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서 이 전 의원과 최병국 전 의원,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을 창당준비위(이하 창준위) 공동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늘푸른당 창당 발기인에는 1565명이 이름을 올렸다.

MB 등에 업고
다시 날개짓?

늘푸른당은 추석 연휴 이후 올해 말까지 17개 시도에서 창당대회를 열고, 내년 1월 중앙당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날 대회는 지지자들을 비롯해 1000여명이 몰려 성황리에 치러졌다. 주최측서 준비한 좌석은 시작 전부터 이미 동이 났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엄홍길 휴먼재단 이사,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도 참석해 이 전 의원의 새로운 출발을 지원사격했다.

창준위는 정의로운 국가’ ‘공평한 사회’ ‘행복한 국민3대 창당 목표로 제시했다.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행정구역 개편’ ‘동반 성장’ ‘남북 자유 왕래4대 핵심정책도 발표했다. 이 전 의원이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 권력과 내각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가와 행정까지 담당하고 있는 현 상황서 내치와 외치를 나누자는 주장이다.


대통령은 국가·외교·통일·국방만 책임지고, 내각은 그외 내정과 나라 안살림의 권한을 갖고 함께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 그 과정서 대통령이 외교나 통일문제를 잘 풀어가지 못할 경우엔 4년으로 끝, 잘 해나갈 경우엔 4년의 기회를 더 주자는 게 이 전 의원과 늘푸른당이 추진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의 핵심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 역시 이 전 의원의 개헌 구상에 힘을 보탰다. 정 전 의장은 축사를 통해 다음 대통령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이뤄내겠다는 공약을 세우고 그런 사람이 되길 개인적으로 바란다내각제로 가는 게 정답이라고 보지만 아직 국회 수준이 신뢰받지 못하고 부족하기에 과도기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이 전 의원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창당발기인대회에 참석한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역시 19대 국회 당시 이 전 의원과 함께 개헌 추진 의원 모임을 주도한 바 있다.

새로운 도전…늘푸른한국당 창당 준비 박차
싸늘한 시선 이겨내고 제3지대 무사히 안착?

이 전 의원은 중앙정부-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로 나눠져 있는 현재 행정구역을 중앙정부와 광역단체로 개편하는 정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선거구를 줄이고 그에 맞춰 국회의원 숫자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동반 성장도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동반 성장을 위해서는 초과이익공유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초과이익공유제란 대기업이 중소기업 육성에 협력해 동반 성장을 도모하도록 한다는 취지 아래 대기업이 초과 이익을 얻은 경우 이를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기업이 해마다 설정한 경영 목표치를 넘어선 이익이 발생했을 경우 대기업에 협력하는 중소기업의 기여도 등을 평가해 초과 이익의 일부를 나눠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당시 동반성장위원장을 지낸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제안했다. 정 전 총리는 늘푸른당 창당발기인대회에 참석해 한국경제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진행했다.

이 전 의원은 정 전 총리를 두고 동반 성장을 얘기할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정 전 총리를 강사로 초청한 것에 대해 강연자가 필요해 모셨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두 사람이 정치적 동반자 관계임을 강조했다.

통일은 남북 자유 왕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은 북한 핵문제는 6자 회담으로 넘기고 남한과 북한은 자유 왕래를 하는 등 핵과 남북관계를 분리하자는 입장이다. 늘푸른당의 4대 정책을 보면 이 전 의원의 생각을 비롯해 그에게 힘을 보태는 인물들의 주장이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권발 3지대에 자리를 잡으려는 늘푸른당을 보는 시선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보통 신당이 창당되면 그 정치적 파괴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조건이 있다. 바로 지역, 인물 등 신당의 영향력을 확장시킬 기반의 유무가 그것이다.

지역, 인물…
신당 영향력은?

늘푸른당은 그 기준에 맞춰보면 여러 부분서 미달된다. 먼저 차기 대선을 노리고 창당했지만 유력한 차기 주자가 없다. 이 전 의원은 직접 대선에 나서기보다는 제3지대에 있는 인물을 모아 대선 후보로 만들어낼 생각을 갖고 있다. 여기에 지역 기반도 없고, 20대 국회 현역 의원도 없다. 원내 인사가 한 사람도 없이 원외 인사로만 구성된 신당이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연이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총선서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국민의당이 안철수라는 대선후보와 호남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이 전 의원이 늘푸른당을 성공적으로 정치권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무게감 있는 인사의 영입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이 전 의원은 대선주자급 무게감을 가졌지만 당내에서는 외면당하고 있는 존재들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 전 의원이 먼저 손짓을 한 건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다.

이 전 의원은 지난 7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 전 대표를 두고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대선 전 개헌이 안 되면 다음 정권에선 시작하자마자 개헌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봤기 때문에 논의를 해봐야 한다면서도 “(김 전 대표가) 새누리당을 나올 수 있는 혁명적 용기가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보수나 진보 양극단을 배제하고 지속적으로 나라 발전이 가능한 정책을 구사하는 노선과 이념이 있으므로 손 전 고문이 과연 그런 이념에 동조할지 따져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각종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주목받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대해서는 친박들이 후보로 만들려고 한다면서 선을 그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관련해서도 3지대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김 전 대표나 손 전 고문 등 거론된 인물들이 이 전 의원의 러브콜에 화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여전한 MB의 남자이자 입
정의화·정운찬과 손잡나

김 전 대표의 경우 이 전 의원의 세력에 합류할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김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T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 전 대표가 당을 나가서 이 전 의원 측에 합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김 의원은 한국 정치사를 보면 대선을 앞두고 늘 정계개편 시도가 있었다. 3지대에 있는 분들은 인지도 제고나 구심점 확보 차원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항상 러브콜을 보낸다그러나 세력 확장을 위한 저인망식 사람 모으기가 될 경우 신당 창당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것이 불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손 전 고문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러브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손 전 고문이 독자세력화를 통한 정계 복귀를 고려하고 있다는 핵심 측근의 말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전 의원의 늘푸른당이 큰 정치적 파괴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새누리당 비박(비 박근혜)계를 흡수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지만, 이 전 의원을 비롯한 친이(친 이명박)계가 정치적으로 몰락했고, 4대강 사업에 따른 비판적 여론이 잇따르고 있는 게 걸림돌이다.

친이계 좌장인 이 전 의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산을 신당 곳곳에 새겨 놓았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일각에선 늘푸른당이 이 전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이용될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이 전 의원은 ‘MB의 남자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이 전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전 의원과 이 전 대통령은 19646·3항쟁서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과 중앙대 구국투쟁위원장으로 알게 됐다. 이후 15대 국회에서 두 사람은 재회한다. 이 전 의원은 당시 의원이었던 이 전 대통령이 경부운하 건설을 제안한 것에 공감해 대통령 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이 전 의원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서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승리를 이끌어냈다. 2007년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서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신승을 거뒀고, 이 전 대통령이 대권을 차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때부터 이 전 의원을 말할 때 ‘MB정부의 2인자’ ‘정권 실세등의 별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4대강 사업
역시 걸림돌

이때만 두고 보면 이 전 의원이 인생이 매우 순탄했던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전 의원은 1945년 강원도 강릉시 묵호서 태어나 경북 영양군서 자랐다. 화려한 정치 행보와는 달리 가난한 유년부터 재야운동시절까지는 시위와 투옥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장의 부당 전보 발령에 항의, 전근 반대 운동을 주도해 유치장에서 20일간 구류 당한 게 그 시작이다. 이 전 의원은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결국 그 해 8월 학교서 제적당했다.

1973년에는 서울대 유신 반대 시위 배후 조종 및 내란음모죄로 수업 도중에 체포돼 치안본부 남산 대공분실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 이 전 의원을 고문했던 사람은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씨였다. 이 전 의원은 고 김근태 전 의원이 이씨에게 심한 고문을 당했던 1985년의 일을 영화화한 <남영동 1985> 시사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유신치하 인권 탄압을 풍자한 단막극을 연출했다는 이유로, 1979년에는 강연 중 대통령 딸을 비방하고 유신정권 퇴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다. 1989년에는 문익환 목사의 방북 배후로 지목돼 또 다시 구속됐다. 이 전 의원은 30여년간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다섯 차례에 걸쳐 10여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치의 시작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19902월 석방된 이 전 의원은 그해 11월 김문수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했고, 199214대 총선서 서울 은평을 지역구에 출마했다. 하지만 자신도 낙선, 정당도 전국 득표율 3%를 얻지 못해 해산됐다.

1996년 이 전 의원은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비로소 화려한 정치 행보를 시작한다. 이 전 의원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천을 받아 15대 총선서 은평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이 전 의원은 은평을에서만 내리 다섯 번 당선된다.

이 과정서 박근혜 대통령과 사사건건 각을 세웠다. 이 전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에게 독재자의 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서도 친박계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200818대 총선 당시에는 친박계 공천 학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의 팬클럽인 박사모를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 지지자들의 낙선 운동으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이후 문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이 전 의원은 재보궐 선거서 기사회생했다.

위기 끝에 재기했던 18대 총선 때와는 달리 20대 총선서의 낙선은 이 전 의원을 수렁으로 빠뜨릴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20대 총선 당시 이 전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당 내부의 친이계가 완전히 와해됐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은 20대 총선 당시 친이계 대부분이 공천을 받지 못한 상황을 두고 공천 학살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공천 결과에 반발해 은평을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새누리당은 당시 김 전 대표의 옥새파동으로 그 지역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단일후보로 나선 더민주 강병원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이 전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그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부에 친이계가 소멸하다시피 한 것과는 별개로 이 전 대통령과의 끈끈한 관계를 발판삼아 다시금 재기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다음 대선 영향
미칠 수 있을까

최근 한 언론매체는 이 전 대통령이 차기 정권은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하겠다는 언급을 자주 했다며 핵심 측근의 말을 보도했다. 이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했다는 말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했는데,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이 나라 안팎을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등 여전히 ‘MB의 입다운 발언을 이어갔다.

이 전 의원은 다시금 재기를 위한 날개짓을 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의 늘푸른당이 싸늘한 시선을 이겨내고 제3지대에 무사히 안착해 19대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종합특검 ‘검사 파견’ 대폭 줄인 이유

종합특검 ‘검사 파견’ 대폭 줄인 이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2차 종합특별검사팀 출범했다. 이제 수사팀을 꾸린 뒤 내란 관련 혐의 17개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내란 외에도 김건희·채 해병 등 각 특검팀에서 매듭짓지 못한 사건들도 들여다볼 방침이다. 이번 특검팀은 과거 특검팀과는 사뭇 다르다. ‘검사 파견’을 대폭 줄였다. 이는 일부 특검팀에서 야기된 내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2차 종합특별검사팀은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해병) 수사로 결론을 내지 못한 사안과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블랙리스트, 부정선거 관련 유언비어 의혹 등을 재수사한다. 사무실을 정하고 수사팀을 꾸리는 데만 한 달여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분주한 움직임 윤석열·김건희에 의한 내란·외환 및 국정 농단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종합특검법)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추천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특검을 임명해야 하기에 지난 5일 특검을 임명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2일 특검 후보자에 전준철 변호사를, 조국혁신당은 같은 날 특검 후보자에 권창영 서울대학교 법전원 겸임교수를 각각 추천했다. 전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장, 수원·대전지검 특수부장, 대검 인권수사자문관 등을 거쳤다. 반면 권 교수는 판사 출신으로 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 편집위원 및 간사, 중대재해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특검팀 사무실 구성과 인력 파견 요청 등 출범 작업은 곧바로 진행되고 있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대상이 광범위한 만큼 초반에는 사건별 우선순위와 수사 분담을 정하는 정리 작업이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대상을 총 17개로 규정했다. 크게 보면 기존 3대 특검이 다뤘지만 규명이 미진했던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한편, 당시 특검 범위에 없던 의혹을 추가로 다룬다. 구체적으로 ▲12·3 불법 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 7개 ▲김건희씨 관련 1개 ▲채 해병 관련 1개 ▲관련 고소·고발 및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사안 2개 등으로 분류된다. 종합특검팀도 앞선 특검팀들과 마찬가지로 인지수사가 가능해 수사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다. 과거 특검수사 못한 대상 총 17개로 규정 주로 12·3 내란 사안…‘정보기관’도 포함 종합특검팀이 다룰 불법 계엄 관련 의혹 상당수는 내란 특검팀 수사 과정에서 다뤄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거나, 내란 특검팀이 무혐의·각하로 종결했던 사건들이다. 대표적으로 ▲무장 헬기의 북방한계선(NLL) 위협 비행 의혹 ▲삼청동 안전 가옥(안가) 회동 ▲일부 지자체의 계엄 동조 의혹 등이다. 이 밖에도 종합특검팀은 내란 특검팀이 마무리하지 못해 채 군검찰로 이첩한 일부 외환 의혹, 계엄 준비 정황이 담겼다는 ‘노상원 수첩’ 의혹, 국군 방첩사령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을 재수사할 계획이다. 종합특검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건들로는 계엄 당일 계엄사령부 구성을 위해 육군본부 간부들이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서울로 이동하려 했다는 이른바 ‘계엄 버스’ 의혹이 있다. 국방부가 최근 당시 버스 탑승 간부들에게 일제히 중징계를 내린 만큼 종합특검팀은 이 사건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 지시·보고 라인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김씨 관련 의혹에서는 이전 특검팀이 정해진 기간 내 수사를 끝내지 못해 경찰에 넘긴 사건들이 종합특검팀에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관저 이전 의혹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등이 꼽힌다. 종합특검팀은 관저 이전 의혹과 관련해 김씨와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을 윗선으로 봤지만 수사 기한이 임박한 시점에 조사가 이뤄지면서 윤 의원은 기소 여부를 결론 내지 못했다. 종합특검팀이 윤 의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수사 막바지에 착수해 핵심 관련자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른바 ‘김건희 수사 봐주기’ 의혹과 사실상 손을 대지 못했다는 창원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과정의 부당 개입 의혹 등도 수사 대상이다. 또 김건희·채 해병 특검팀에서 중복 수사 대상이었지만 규명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이른바 ‘구명 로비’ 의혹 역시 종합특검팀이 결론을 내야 할 사안이다. 정치적 계산 확연한 차이 종합특검팀을 둘러싼 가장 큰 변화는 단연 검사 파견 규모의 축소다. 과거 특검팀이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여명의 현직 검사를 파견받아 운영됐던 것과 달리, 종합특검팀은 검사 파견을 최소화하고 외부 인력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사 구조를 택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 이후 시대를 염두에 둔 구조적 실험”이라는 평가와 “수사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킨 선택”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단순한 인력 운용의 변화라기보다, 종합특검팀의 성격과 권한, 검찰과의 관계 설정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특검은 형식적으로는 독립기구였지만, 실제 운영은 검찰 조직에 크게 의존해 왔다. 수사 실무와 기획, 영장 청구와 공소 유지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파견 검사들에 의해 이뤄졌고, 특검은 사실상 ‘검찰의 별도 수사본부’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거셌다. 검찰로부터 검사를 파견받으면 대형 수사를 빠르게 진행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수사 대상에 전·현직 고위 공직자, 검찰 출신 정치인, 혹은 검찰이 과거 불기소하거나 수사했던 사안이 포함될 경우 “검찰의 셀프 수사”라는 비판이 지속됐다. 특검이 검찰의 판단을 다시 들여다보는 구조 자체가 모순이라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이번 종합특검팀의 수사 대상에는 전직 대통령과 고위 권력층, 과거 검찰 수사와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안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검사 파견을 대규모로 유지할 경우,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공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 갈등 의식했나 종합특검팀은 검사 수를 최소화하는 대신, 특검보를 중심으로 한 지휘 체계와 외부 수사 인력을 대폭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경찰, 국세청, 감사원, 금융·회계·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등 비검찰 인력 비중을 확대해 복합 사건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히 인력 구성을 바꾼 것이 아니라, 검찰 권한 축소 이후 특검의 새로운 모델을 시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검찰이 더 이상 모든 대형 수사의 중심이 아닌 상황에서, 특검마저 검사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검찰개혁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이 아닌 방식으로도 대형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사 파견 축소에는 분명한 정치적 계산도 담겨있다. 종합특검팀은 출범 단계부터 ‘정치 보복’ ‘선택적 특검’이라는 야당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검사 중심 특검은 가장 공격받기 쉬운 지점이다. 여권으로서는 ‘검찰이 주도하지 않는 가장 독립적인 특검’이라는 명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검사 파견을 줄이면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소한 절차적 중립성에 대한 방어 논리는 강화된다. 이는 향후 수사 과정이나 결과 발표 시 정치적 공방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반대로 야권은 이미 “검사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특검은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프레임을 꺼내 들고 있다. 검사 파견 축소가 수사의 공정성이 아니라 수사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무적으로 보면, 검사 파견 축소는 분명한 부담 요소다. 대형 특검 수사에는 압수수색영장 청구, 구속영장 판단, 법리 구성 등 고도의 형사법 경험이 요구된다. 검사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외부 인력 중심 구조에서는 수사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검 아닌 경찰·국세청·감사원 조사관 비중 확대 “정보사 의혹 수사 시간 오래 걸릴 수도” 우려 특히 수사 이후 공소 유지 단계에서 검찰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특검들이 검사 파견을 중시했던 이유는 ‘기소와 유죄 입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건희 특검팀에서 벌어졌던 내부 갈등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됐던 검사들의 ‘원대 복귀 희망’ 입장문 파동이 종합특검팀에서 재발할 경우 내부 수습에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 당시 입장문이 외부에 유출되며 ‘항명’ ‘집단 반발’ 등으로 알려졌지만, 특검팀 지휘부와 수사팀장들은 ‘하소연 취지’였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파견 검사들을 겨냥해 “징계와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비판하고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국민에게 항명했다”고 규정한 것과 달리, 실제론 태업이나 이탈 없이 수사와 공소 유지를 차질 없이 진행했다. 파견 검사들은 검찰에서부터 최대 1년 넘도록 동일한 사건을 수사하며 피로감에 쌓였다. 이들은 검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수사를 매듭지으려 노력했다. 다만 재판에 넘겨진 주요 피고인들의 공소 유지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일선 검찰청의 민생 사건 적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직관(수사 검사가 공판에 직접 관여) 제한’ 방침 ▲기존 특검 관례 등을 고려하면 최소 인력만 공소 유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검 지휘부도 공소 유지 단계에선 복귀를 희망하는 검사들을 강제로 붙잡을 순 없다고 보고, 효율적인 인력 운용 방안을 고심했다. 지휘부가 입장문을 작성하기 2~3주 전부터 김건희 특검 내 일부 수사팀에선 ‘진행 중인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한 후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결과 이전에 이미 하나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검찰 없이도 대형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가, 특검이 검찰개혁 이후의 사법 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실패하면 역풍 불가피 만약 종합특검팀이 의미 있는 수사 성과를 낸다면, 향후 특검은 검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표준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성과가 미진할 경우, “그래서 결국 검사가 필요하다”는 역설적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사 파견 축소는 정치적 선택이자 제도적 실험인 셈이다. 이번 종합특검팀은 단순히 몇 건의 의혹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검찰 이후 한국 사법 시스템이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그 성패는 수사 대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