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조희팔,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살았어도 살면 안 되고 죽었어도 죽으면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이 ‘단군 이래 최악의 사기꾼’ 조희팔의 사망 논란에 대해 “사망한 것이 맞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검찰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조씨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라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조희팔 사망 논란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조명해 봤다.

대구지방검찰청 김주원 1차장검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조희팔 사건’ 브리핑에서 “다각적인 수사 결과를 종합할 때 조희팔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돼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브리핑을 끝으로 재수사 발표 이후 23개월간 이어진 조씨 관련 수사를 종결했다. 이번 발표를 통해 ‘조씨는 2011년 12월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재확인 해준 셈이다.

의혹 너무 많아
피해자 “못믿어”

검찰에 따르면 조씨 일당은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의료 건강보조기구 대여업 등으로 고수익을 낸다고 속여 투자자 7만여명에게서 약 5조원을 가로챘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유사수신 사기 사건이다.

조씨는 사기 행각이 드러나자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해 도주한 뒤 조선족으로 신분을 세탁해 숨어 살았다. 그러다 2011년 12월18일 밤 10시쯤 중국 웨이하이의 한 호텔 객실에서 갑자기 구토를 하며 쓰러졌다. 조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다음날인 19일 0시15분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장례식 동영상 위조 의혹 ▲사망증명서에 직인이 없는 점 ▲조씨를 봤다는 목격담 등 근거를 들어 조씨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주장한다.


조씨의 유족들은 조씨가 사망한 직후 장례식을 치르면서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경찰도 동영상을 근거로 조씨가 사망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동영상을 보면 관의 덮개가 유리로 돼 있어, 조씨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방송 당시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장)은 종합편성채널 JTBC 프로그램 <독한 혀들의 전쟁-썰전>에 출연해 “(조씨가) 죽었다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표 의원은 앞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조씨의 장례식 장면을 재연한 적이 있다. 피해자들은 촬영된 장례식 장면이 편집 등 위조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직인이 없어 진위 논란이 있는 사망증명서와 관련해서도 “사망증명서에 적힌 조영복(조씨가 중국에서 사용한 가명)이 진짜 조희팔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피해자들은 조씨의 사망증명서에 직인이 없는 것을 두고 위장 사망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대 다단계 사건…중국 도주로 흐지부지
검찰 23개월 재수사 핵심 없이 대충 종결

여기에 사망 이후에도 여기저기서 조씨를 봤다는 목겸담이 쏟아지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조희팔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중국 칭다오의 한 골프장에서 조씨의 가명인 조영복이라는 이름이 2011년 이후 2013년까지 총 11번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조씨가 자주 가던 것으로 알려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단골식당에도 2015년 초까지 그가 들렀다는 종업원의 제보가 있었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의혹으로 검찰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씨 사건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이하 바실련)는 “검찰이 강태용 검거를 전후로 서둘러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검찰은 피해자들이 제기한 조씨 사망 의혹 관련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조씨 사망 직후 가족이 보관 중이던 조씨의 머리카락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가족과의 유전자 일치 여부를 분석했다. 검찰은 유전자가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서 조씨의 사망을 목격했다는 측근과 관련해서는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2명 모두 진실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한 내연녀를 비롯 조씨의 장례식에 참여했던 지인들의 일관된 진술, 사망 직전 조씨를 치료한 의사의 거짓말탐지기 반응 등을 들어 조씨의 사망설에 힘을 실었다. 검찰은 중국인 의사가 사망한 환자를 보고 조희팔이라고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사망, 이번엔 진짜?
증거 없이 마무리

이어 조씨 장례식 동영상과 관련, 대검찰청 과학수사부가 감정한 결과 “편집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직인 여부 문제로 논란이 됐던 사망증명서와 관련해서는 “중국에서는 타살 혐의가 있는 경우에만 직인을 찍는다”고 설명했다. 조씨의 죽음이 타살이 아니기 때문에 직인이 없어도 사망증명서가 가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골프장 목격담, 농장 목격담 등에 대해서도 “모두 조희팔이 아니었다”며 못을 박았다.

한편 검찰은 조희팔 사건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봤을 때 피해금액 규모는 8400억원대”라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 일당이 저지른 범죄 총매출액은 5조715억원에 달하고 이 중 투자자 수익금조로 4조8700억원을 지급해 수익금은 2900억원이다. 이어 범죄 수익금 추가 환수와 관련해서는 “범죄 수익 추적으로 720억원을 확보했고, 232억원에 대해 추징 보전 명령을 받아뒀다”고 밝혔다.

재산 분배 문제는 “피해자 수가 너무 많고 피해자들끼리 얽혀있는 것도 많아 관계가 복잡하다”면서 “민사 절차에서 정리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검찰이 여러 근거를 들어 조씨의 사망을 확정 발표했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맹탕 수사’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이 2012년 5월 조씨가 사망했다고 발표하면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사건은 2014년 7월 ‘조희팔 고철사업 투자금이 은닉자금인지 여부를 다시 조사하라’는 대구고검의 지시에 따라 다시 떠올랐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조씨의 범죄 수익금을 숨기는 데 가담했거나 은닉 재산을 착복한 관계자 등 20여명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는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15억8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대구지검 서부지청 오모 전 서기관과 9억원을 받아 기소된 대구지방경찰청 권모 전 총경 등도 포함돼 있다.

오 전 서기관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9년을 선고 받았고,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권 전 총경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피해 보상금?
턱없이 부족해

검찰의 조희팔 사건 수사는 조씨 조직의 2인자로 알려진 강태용이 중국에서 검거되면서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강씨는 조씨를 제외하고 조직의 실체를 가장 많이, 잘 알고 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랬기에 조씨의 사망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포함해 정관계 로비 의혹, 비호세력의 존재 등 그간 감춰졌던 부분이 드러날 것으로 봤다. 하지만 2년여간의 검찰의 재수사는 이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강씨를 검거하고 기존 수사팀을 보강해 전담 수사팀까지 구성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대검에서 계좌 추적 전문수사관까지 지원받아 자금 흐름 추적에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여기에 강씨를 검거한 이후 추가로 40여명을 기소하긴 했지만 조씨의 아들, 내연녀 등 상당수는 1차 수사 때 이미 조사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조씨의 내연녀는 조씨가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하기 전 가방 한 개를 맡긴 인물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봤으나 역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가방 역시 실체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였다. 조씨 일당은 그간 도피 행각을 벌이면서 수사기관 내부 정보를 몰랐다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대처를 보여왔다. 특히 밀항 당시에는 해경이 제보까지 받은 상태였음에도 조씨 일당을 체포하지 못하자 뒤에 비호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검찰이 조희팔 사건에 연루됐다고 파악한 전·현직 검찰·경찰 관계자는 8명이다. 피해자 수나 피해 금액에 비해 초라한 숫자다. 수사기관의 부실한 실적은 ‘꼬리자르기’ 의혹까지 더해져 수사의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 사건에 깊숙이 개입돼 있는 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해 몇 명을 쳐내는 수준에서 사건을 급하게 마무리 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는 게 피해자 단체들의 시선이다.

여전한 사망 의문 생존 가능성
피해자 투자금 5조 다 어디로?
정관계 로비의혹도 이대로 묻혀


사건과 관련돼 구속된 인물의 면면을 보면, 조씨의 수족 노릇을 했던 전직 경찰도 있어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 조희팔 사건 특별수사팀이 검거한 임 전 경사는 2007년 6월 경찰에서 파면된 뒤 조씨 일당의 업체에서 전무직을 맡아 월 500여만원의 판공비를 받으며 사기 행위를 방조한 혐의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임 전 경사는 조씨 일당이 운영하던 업체가 경찰에 고소‧고발이 들어가면 인맥을 이용해 수사 진행상황을 파악해 대처하는 창구역할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임 전 경사는 조씨 일당에게 1억원의 뇌물을 받고 수사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던 정모 전 경사를 통해 강씨를 소개받은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강씨의 손길은 검찰에도 닿아있었다. 서울고검 김광준 전 검사는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강씨 측으로부터 2억7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아 7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김 전 검사는 강씨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강씨가 검거된 이후 그가 가진 로비리스트에 검경 관계자들이 떨고 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발표에서 조씨 사망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비호세력, 정관계 로비의혹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바실련 측은 지난달 29일 ‘검찰, 대국민 우롱 중단하고 특검 설치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검찰 수사 발표를 강력히 비판했다. 바실련은 성명서에서 “검찰이 성역없는 재수사를 펼치겠다고 했으면서 결국 실질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납득할만한 결과를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사명감을 갖고 어떤 외압도 없이 수사를 전개했다면 이 같은 졸속수사 발표가 가능했겠느냐”고 검찰 수사 결과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아울러 바실련은 “조희팔이 죽은 것으로 발표한 것은 조희팔에게 면죄부만 쥐어주는 꼴”이라면서 “생존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재수사 왜 했나
논란 계속될 듯

피해자 단체뿐만 아니란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조씨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검찰의 발표 이후 네티즌들은 “수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심스럽다” “(조희팔이) 어딘가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 것” 등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한 네티즌은 “(조희팔이) 죽은 걸로 돼야 살 사람 많을 것”이라며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 비꼬기도 했다. 사회에 넓게 퍼진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지속되는 동안 조희팔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남자’로 계속 망령처럼 우리 곁을 떠돌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조희팔 사건일지
 
▲ 2008.10 = 경찰, 조희팔 일당 수배
▲ 2008.12.09 = 조희팔 충남 태안군 마검포항에서 중국으로 밀항
▲ 2012.05.21 = 경찰 ‘조희팔 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 발표
▲ 2012.09.07 = 경찰 중국에서 조희팔 일당에게 골프 접대받은 정모 경사 구속 영장
▲ 2012.11.19 = 사건 수사 무마 청탁으로 2억7000만원 받은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 구속
▲ 2012.11.26 = 경찰 중국 공안에 조희팔 생존 여부 재확인 요청
▲ 2014.12·18 = 검찰 조희팔 1200억원대 은닉재산 확인
▲ 2015.01.26 = 사건 수사 무마 등 명목으로 10억원대 돈 받은 오모 서기관 구속기소
▲ 2015.09.16 = 검찰 조희팔 불법 자금 1억원 받은 김모 전 경위 구속기소
▲ 2015.10.02 = 검찰 조희팔에게 뇌물 받은 권모 전 총경 구속기소
▲ 2015.10·10 = 조직 2인자 강태용 도피 7년 만에 중국 현지 공안에 검거
▲ 2015.10.13 = 경찰 강태용 측 뇌물 1억 받은 정모 전 경사 중국 광저우서 검거
▲ 2015.10.31 = 조희팔 조직 임원으로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전직 경찰 임모씨 구속
▲ 2015.11.25 = 검찰 범죄 수익금 은닉한 조씨 아들과 조씨 내연녀 김모씨 등 구속 기소
▲ 2015.12.16 = 강태용 국내 송환
▲ 2016.04.22 = 조희팔 조직 뒤를 봐준 명목으로 5000만원 받은 곽모 경위 구속 기소
▲ 2016.06.28 = 검찰 최종 수사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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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