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경찰 '계급체계' 대해부

11만 경찰 수장이 겨우 차관급?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로 불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및 공공의 안녕을 책임지는 사명 때문에 붙여진 수식어다. 즉 경찰은 그 어떤 공무원보다 책임감이 막중하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경찰의 위상은 그렇게 높지 않다. ‘동네북’에 가까울 정도다. 이런 까닭에 대해 경찰 관계자와 학계는 "이상한 계급체계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9월14일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구파발 총기사고에 대한 질의 도중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총기 발사 시연을 요구했다. 유 의원은 이날 경찰청을 대상으로 한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구파발 총기사고가 계획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요지로 질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유 의원은 강 청장에게 모의 권총을 총기사용 지침에 따라 격발 시연을 요청했다. 강 청장은 사전에 준비된 모의 권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격발 과정을 시연했다.

장관은 파트너
차관은 밑으로

이는 공직사회에서 11만명 경찰 수장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유 의원은 강 청장에게 총기 발사 시연을 요구해 큰 논란이 됐다. 당시 여야를 막론하고 강 청장의 총기 시연은 경찰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야당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국회의원들은 기본적으로 장관급을 파트너로 생각한다”며 “차관 정도밖에 안 되는 경찰청장은 사실상 자기 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청장에게 장난감 총 들고 ‘시연해 보라’는 것 자체가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경찰청장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경찰청장이 국회의원보다 급이 낮다. 국회의원은 장관급 대우를 받지만, 경찰청장은 차관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앙행정기관 직급별 정원 현황에 따르면 경찰 인력은 11만6988명으로 집계됐다. 11만명의 경찰을 거느리고 있는 경찰청장이 차관급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안 된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같은 수사기관인 검찰의 경우 전체 인력 9942명에서 차관급 49명과 장관급 1명이 있는 것과 상당한 대조를 이룬다.

국회의원들 만만한 청장 대놓고 망신주기
공직사회도 무시…기죽는 민중의 지팡이

경찰 관계자들은 강 청장의 총기 발사 시연을 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와 더불어 경찰 관계자들은 당시 강 청장의 모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경찰들의 이런 박탈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은 오래 전부터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주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는 게 내부의 오랜 소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 공무원에 비해 업무 난이도와 스트레스가 크지만 경찰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경찰의 불합리한 직급 개편에서 비롯됐다”고 덧붙였다.
 

"직급 부분을 자꾸 어렵게 풀려고 하는데요. 경찰대, 간부를 7급 경사로 임용시키고 경위 경감 통합해서 6급으로 조정해 일반직과 같이 계급은 허수고 단일 호봉으로 풀어가면 좋겠네요. 왜 계급만 많이 만들어 오를 때마다 호봉은 까여서 급여 부분에서도 손해를 보는지..."

이는 한 경찰이 경찰 내부망 게시판에 게재한 현행 경찰 계급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로 현행 경찰 계급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글이 올라오자 많은 경찰 관계자가 "공감한다"며 댓글이 이어졌다.

경찰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경찰 계급의 대대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 동안 학계에서도 ‘경찰계급 단계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2004년)와 ‘경찰 계급별 인력구조의 중장기적 개선방안’(2010년) 등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먼저 우리나라 경찰 계급의 변천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 경찰 계급장은 1946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7차례에 걸쳐 변경됐다. 1979년 최종적으로 경찰 계급에 대한 변경이 이루어졌으며, 현재까지 37년 동안 유지돼 왔다.

경찰 11계급
일반 9계급

경찰 공무원은 일반 행정직 공무원과 다른 계급체계를 갖고 있다. 경찰은 국가공무원 중 특정직공무원으로 분류된다. 11계급(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정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직 공무원보다 2계급이 더 많다. 통상적으로 일반 공무원은 9계급이다.

2010년 경찰의 계급별 인원을 살펴보면 전체 경찰관 10만481명 중 순경·경장·경사(7급 이하) 등 하위직 경찰관 6만5800명으로 65.4%를 차지하고 있다. 중간 간부인 경위·경감·경정(5∼6급)은 1만6693명으로 33.9%다. 경정 이하 경찰관이 전체 인력의 99.5%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고위직인 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4급 이상)은 530명으로 0.5%에 불과하다. 즉 전형적인 첨탑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인력구조는 타 부처 일반 공무원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현격하다. ‘2009년 국가직 일반공무원의 경우 9-7급(경위 이하) 56.9%, 6-5급(경정∼경감) 36.4%, 4급(총경 이상) 6.7%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같은 청단위인 국세청과 비교해도 경찰의 9-7급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찰조직에서 실질적 중간 관리자인 6-5급 경우에는 국세청과 무려 6배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찰 조직의 계급별 인력 구성이 다른 부처에 비해 매우 불균형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래 전부터 경찰의 11계급을 일반직 공무원 9계급에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이 같은 하위 중심의 인력 구성으로 받게 되는 불이익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일반직 공무원보다 2단계 많은 직급 때문에 승진이 느려진다. 2008년 공무원 총 조사에 따르면 일반직 공무원의 경우 9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27년 5개월이다. 반면 경찰의 경우 순경(9급)에서 경정(5급)까지 승진하는 데 무려 35년 1개월이 소요된다.

즉 순경 입직 후 경위(7급)까지 승진하는 데 19년7개월이 걸리며, 경감(6급) 견장을 다는 데 28년 2개월이 소요된다. 일반 공무원은 9급에서 6급까지 15년 밖에 걸리지 않으며, 개인적 편차를 고려하면 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지난 2006년부터 경사 8년 근무자의 경우 자동으로 경위로 승진하는 ‘경위 승진제’가 도입·시행됐다. 경위는 일선 치안 현장에서 관리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경위 승진제로 경위 계급이 급증한 나머지 관리자와 실무자가 혼재돼 팀장급 직책에 대한 보직 갈등 및 지휘통솔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선 파출소에서 경위인 파출소장 바로 밑에 경위 순찰팀장이 있는 등의 기형적인 구조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장 지휘권 혼란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순경+경장
통합론 일어


또 대부분의 경찰관은 순경으로 입문에 평생을 근무하고도 경사(7급)로 퇴직하는 게 현실이다. ‘2005-2009년 경찰공무원과 일반직 공무원의 퇴직 시 계급현황’에 따르면 일반직 공무원은 7급 이하로 퇴직하는 경우는 26.3%인 반면, 경찰은 83.4%가 경위 이하로 퇴직한다. 심지어 경찰 내부에서는 순경 퇴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대다수 경찰은 경위까지만 승진을 하고, 경감부터는 지나친 병목현상으로 승진이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문제는 곧 봉급과 연금 수령액과도 연결된다. 경찰은 구조적으로 늦은 승진 때문에 일반직 공무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봉금과 연금을 받는 경향이 강하다.
 

2008년 치안정책연구소에서 나온 ‘경찰보수 현실화 방안’에 따르면, 20년 차 경찰과 일반직 공무원의 1년 기본급은 100만원까지 차이가 났다. 20년 차 경찰의 기본급이 212만원이라면 일반직 공무원은 221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 역시도 경찰은 월 평균 175만원인 반면 일반 공무원은 183만원으로 8만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거기다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으로 업무특수성의 반영 미흡, 기본급과 수당체계의 문제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경찰은 직업 특성상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난이도와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교대 근무 및 야간 근무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 또한 높은 편이다.

경찰 차관 1명 검찰 차관 49명
일반 공무원보다 승진도 어려워

이런 인사 구조 때문에 중하위직 경찰관의 근무 의욕 저하 및 지나친 승진 경쟁으로 인사철 치안 공백을 야기한다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또 경찰의 만성적 인사 적체로 직급과 계급의 불일치로 인한 지휘권 혼란 등이 현장에서 빚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계급 구조의 문제점은 경찰관 개개인의 사명감과 소명의식에 의존해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며 “구조적인 문제로 경찰 계급 구조개선 및 직급의 상향 조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런 필요성을 절감한 경찰청은 경위 이하 편중의 기형적 직급 구조를 위해 ▲중간 관리자 직급 조정 ▲성과 우수자 경감 승진 ▲경사·경장 계급 통합 등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 중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계급 통합이다. 업무 내용면에서 순경과 비슷한 경장 계급을 줄이고 경정과 경감을 합쳐 업무를 경정이 담당하도록 하고 경감 계급을 없애면 9계급이 될 수 있다. 혹은 경사·경장을 통합해 하위직의 계급 단계를 축소함으로써 승진·보수·연금 등의 불이익을 해소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11만 경찰을 지휘하는 경찰청장도 일본처럼 경찰청 장관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즉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되 국무총리 하에 가칭 치안처장관이나 경찰부장관으로 격상 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것이다.

일반 공무원과
100만원 차이

신현진 한세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은 분명 거대 조직이다. 경찰 장관은 없을지언정 경찰청장에 대해 장관급 대우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 조직이 타 부처에 비해 급이 낮게 책정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경찰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보고 있다. 세분화된 경찰 계급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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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