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3 03:01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2006년 4월의 일이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세훈이 당내 경선에서 맹형규 의원을 제치고 후보로 확정되자 “서울시장 선거만큼은 유례없는 정책 경쟁의 장이 되도록 촉구할 것”이라며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지방선거에 임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언급했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동 지방선거가 실시되기 전 해인 2005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연정(한나라당과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한다. 그 조건으로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그 일로 인해 분열의 기로에 있던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은 아사 직전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속된 표현으로 동 지방선거에 ‘한나라당이 개를 후보로 내세워도 당선된다’는 말이 떠돌아다닐 정도로 노무현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극을 달리고 있었다. 아울러 한나라당은 동 선거의 최대 이슈로 당연하게도 노무현정부의 실정을 부각시켜 정권 심판론으로 몰아가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정작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은 상기 발언을 토해냄으로써 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에 반해 오세훈은 그동안 축적돼있던 신선한 이미지에 폭발적인 인기를
며칠 전 출근길에 서울시장 보궐선거 관련 현수막에서 ‘LH 해체, 주택청 설치, 투기 부동산 몰수, 투기 이익 환수’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실소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 살펴봤다. 진보당으로 출마한 한 젊은 여성이었다. 그를 살피자 이번에는 실소가 아니라 냉소가 흘러나왔다. 그 사람이 당당하게 내건 공약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용이 아니라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 선거용이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왜 그 후보는 얼토당토 않는 공약을 내걸었을까, 그 후보는 자신이 내건 공약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모를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명색이 한 정당의 대표로 출마한 사람이 그 정도의 인식 능력이 없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데 왜 그 후보는 보궐선거와 관계없는 공약을 내걸었을까. 결론은 뻔하다. 서울 시민들에게 먹혀든다는 판단에 그런 공약을 내걸었고, 실제로 일부 유권자들은 그 공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이 있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단일화과정에서 후보로 확정되자 ‘서울시민과 당원에게 드리는 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공직 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 일명 ‘통합선거법’의 탄생 및 그로 인한 선거 문화의 변화에 대해 논해보자. 시간은 지난 1992년 12월에 실시된 제14대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황을 살피면 선거 초반에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과 민주당의 김대중이 2강, 그리고 통일국민당의 정주영이 1약 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서서히 선거 열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정주영이 약진하기 시작했다. 정주영의 약진에는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바탕으로한 무차별적인 자금 살포가 주원인으로 작동했다. 그를 살핀 김영삼 측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주영의 지지기반과 김영삼의 지지기반이 겹치기 때문으로 정주영의 선전은 역으로 김영삼의 당선을 위태롭게 만드는 형국이었다. 그에 봉착하자 김영삼 측도 자금살포에 치중하면서 선거를 이끌었고,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은 동 선거에 대해, 즉 무차별적인 자금살포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그의 임기 중에 통합선거법이 탄생하게 된다. 당시 정치판에 있었던 필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업적 중 동 법의 탄생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이전까지 실시되었던 각종 선거는 이승만 정권 시절 자행되었던 부정부패가 무색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부동산 적폐’로 규정하고 이를 청산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동 사건이 과연 LH 직원들에게만 국한된 일인지, 그리고 그런 사건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논해보겠다. 먼저 동 사건에 LH 직원들만 국한되었느냐에 대해서다. 동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문득 1990년대 초반에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주자유당(민자당) 정책위의장실에 근무했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는 집권당이 정부 부처의 상위 개념에 위치하고 있었던 관계로 국가 중요 시책은 반드시 집권당 정책위의장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얻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의도적이지 않게 돈 되는 고급정보를 자주 접하고는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필자가 돈에 욕심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 정보를 활용해 지금보다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도 돈에 전혀 욕심을 느끼지 않았던 필자는 돈이 되는 정보에 조금도 현혹되지 않았고, 또 그 과정에 취득한 정보를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말인즉 필자는 사리사욕과는 거리가 멀다는, 청렴을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인 광복절, 3·1절, 개천절, 제헌절, 한글날을 열거해본다. 이를 세밀하게 살피면 유독 시선을 끄는 명칭이 두 개 나타난다. 한글날과 3·1절이다. 한글날은 여타의 국경일이 ‘절’로 표현되는데 반해 ‘날’이란 용어가 사용됐고, 다른 여타의 국경일이 기념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칭으로 정했는데 유독 3·1절은 사건이 일어난 날로 그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한글날에 대해 살펴본다. 대한민국은 기념하고자 하는 날의 중요도에 따라 ‘절’ ‘일’ 그리고 ‘날’로 나뉘어 있다. 아울러 한글날 역시 절로 표기했어야 옳은데, 한글날의 특성상 한자인 절(節)대신 한글인 날을 사용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제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3·1절로 시선을 돌려보자. 3·1절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즉, 동 사건은 1919년 3월1일 당일에 발생하고 끝난 사건이 아니라 3월1일을 시작으로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3월1일이란 날짜로 명칭을 정한 대목은 상당히 어설퍼 보인다. 아울러 동 명칭은 시간적 제한을 지니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개최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 지원금, 국민 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맞춤형 지원뿐 아니라 코로나19 추이를 보고 경기 진작용 전 국민 지원도 하겠다’는 제안을 문 대통령이 전폭 수용한 것으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면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잠시 말장난을 해보자. 먼저 문 대통령이 언급한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에 대해서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강한 의구심을 느꼈다. 물론 ‘벗어난다’는 표현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에 앞서 8·15에 대해 언급하자.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8·15를 가리켜 ‘해방’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압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사용됐는데, 해방이라는 용어는 필자의 기억으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광복’이란 용어로 대체됐다. 여하튼 지금은 해방이란 용어는 자취를 감추고 광복이란 단어로 고착화됐는데, 문 대통령이 언급한 벗어난다는 상황이 해방인지 광복인지 난해하다. 아울러
1948년 7월 제헌국회서의 일이다. 유진오 박사를 중심으로 이뤄진 헌법 기초위원회에서 대법원장 임명과 관련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조항이 통과된다. 조선변호사회 서울지부에서 성명을 발표한다. 그 주요 내용 간략하게 요약한다. 『대통령의 신임 여하로 대법관이 임명되는 경우에는 대법원장은 대통령 및 대통령의 신임으로 득세한 정부의 인물이 그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사법권의 완전 독립성을 명실상부하기 위해 현 판검사와 재야 변호사의 선거로 선출된 인물을 대통령이 임명하기만 하고 거부권 없는 제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당시의 사법체계에 대해 정확하게 언급하기 힘들지만 당시는 검사는 물론 변호사도 사법부 소관이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그 시절 조선변호사회는 삼권분립을 위해 대법원장 임명은 전적으로 사법부 소관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과 관련한 우리 헌법 제104조 인용한다. 1항은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로 그리고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 조항을 세밀하게 살펴보자.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은 국회의 동의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기소장에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이 문건에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해 “문재인정권이 극비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기로 했다”며 그를 ‘이적행위’로 언급한 발언으로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이에 대해 부연 설명해보자. 사건은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판문점에서 개최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직후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 따라 남과 북의 협력방안들과 관련한 여러 대책 중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방안’이 작성된다. 그리고 2019년 감사원이 산업통산자원부(이하 산자부)를 감사하기 전날 산자부 직원이 동 문서를 포함 여러 파일을 삭제한다. 그러나 감사원은 삭제된 파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동 문건을 발견하고 결국 검찰의 기소장을 통해 알려지게 된다. 동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했지만 김 위원장이 이적행위라고 지적한 사안은 남북정상 회담 직후 실무 차원에서 작성했던 문건으로 여러 안 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시 언급해서 실무자의 단순 아이디어일 뿐이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발언 “공무원의 컴퓨터 폴더에 무엇이 있었다면,
최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아권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민의힘 경선 플랫폼을 야권 전체에 개방해 달라”며 “그럴 경우 기꺼이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오픈 경선 플랫폼에 누구든 참여할 수 있게 하고 누가 단일 후보로 선출되든 단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앞장서서 뛰겠다고 대국민 서약을 하자”고 언급했다. 즉 누구든지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선에 참여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흥미로운 표현을 살펴보자. 안 대표가 언급한 경선 플랫폼에 대해서다. 플랫폼이란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안 대표는 이를 경선에 연계시켰다. 의문이 들어 어학사전을 살펴보니 ‘특정 장치나 시스템 등에서 이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는 틀 또는 골격을 지칭하는 용어’로 컴퓨터와 관련해 ‘시스템의 기본이 되는 특정 프로세서 모델과 하나의 컴퓨터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는 운영체제를 말한다’고 언급돼있다. 필자는 이 순간까지 플랫폼이란 단어가 경선과 연계돼 사용된 경우를 본 적 없다. 그런데 안 대표는 당당하게 경선과 연계해 동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조선조 제 17대 임금인 효종과 당대 학자인 송준길의 대화 내용을 인용한다. 송준길의 <동춘당집>에 실려 있다. 「송준길이 아뢰기를 “사람으로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이는 죽은 물건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과 동물이 똑같은 기운을 받고 태어났으나 금수가 금수가 된 까닭은 한 가지 일에만 밝기 때문입니다. 뜰 앞의 풀을 베어 내지 않고 병아리를 구경하고 노새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을 옛사람은 모두가 측은에 속한다고 하였습니다”하니 성상이 이르기를 “노새의 울음을 듣는 것이 어째서 측은에 속하는가?”하였다. 준길이 아뢰기를 “상채(上蔡)가 처음 명도(明道)를 뵈었을 때 사서(史書)를 줄줄 외어 거론하며 한 자도 빠뜨리지 않으니, 명도는 이를 완물상지(玩物喪志)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채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이 붉어지자 명도는 이것을 바로 측은지심이라고 하였으니, 이에서 측은이 사단(四端)을 통솔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기록과 관련해 부연설명을 곁들이자. 상채(사량좌의 호)와 명도(정호의 호)는 중국 송나라의 성리학자이고 완물상지는 ‘물건을 구경하다 뜻한 바를 잃어버린다’는, 즉 쓸데없는 물건에 정신이 팔려 소중한
최근 두 건의 흥미로운 사안이 발생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관련한 법원의 1심 판결,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처분의 효력을 중단하라는 법원의 판결 내용이다. 동 사건들이 필자의 흥미를 유발시킨 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법리상 문제가 아닌 필자의 직감에서 유발된 일로, 두 개의 판결 모두 문재인정권을 의도적으로 물 먹이려는 처사로 비쳐진다. 왜 그런지 구분해 접근해보자. 먼저 정 교수에 대한 판결에 대해서다. 법원은 정 교수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 추징금 1억3894억원을 선고했다. 이 대목에서 벌금과 추징금은 제외하고 징역 4년이란 기간에 대해 살펴본다. 법에 관해 문외한이지만, 법원에서 판단한 그녀의 위법 행위만으로 그만큼의 형량을 부과한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치다는 느낌이 인다. 필자는 집행유예, 혹은 2년 정도의 판결이 마땅하다 생각하는데 징역 4년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그런데 법원은 왜 그런 판결을 내렸을까. 바로 판결문에 나타난다. “피고인 정경심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적이 없다. 법정에서 진실을 증언한 사람들에게는
지난 1960년 3월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 당시의 일이다. 집권당인 자유당은 대통령 후보로 이승만 그리고 부통령 후보로 이기붕을, 야당인 민주당은 대통령 후보로 조병옥을, 부통령 후보로 장면을 내세우고 선거전에 돌입한다. 그런데 민주당의 조병옥 후보가 선거 유세 도중 발병하면서 신병 치료 차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 받던 도중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일로 이승만은 자동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자유당 정권은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당시 법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돼있었는데, 이승만의 나이가 86세라 미래가 불투명했다. 또 4년 전에 실시됐던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이 장면에게 패했던 쓰라린 경험과 자유당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악화일로를 겪고 있었던 때문이다. 이에 직면하자 자유당 정권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최후의 발악을 전개한다. 당시 행해졌던 각종 부정 선거 행위에 대해서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 생략한다. 여하튼 자유당의 최후 발악으로 개표 당일 이기붕의 득표율이 100%에 육박하게 되자 부정 선거를 지휘하던 최인규 내무부 장관과 이강학 치안국장 등이 경비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이르면 내년 초 공수처가 본격적으로 가동할 태세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형 비리의 성역 없는 수사와 사정, 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 부패 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며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평가했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공수처 설치는 시민사회의 요구로 공론화된 후 24년을 끌어온 오랜 숙원이었다”며 “투명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국민의 공수처’로 신뢰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과 이 대표의 평가를 언뜻 살피면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세밀하게 살피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쉽사리 이해하기가 힘들다. 마치 공수처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억지춘향으로 비친다. 왜 그런지 먼저 문 대통령의 평가에 대해 살펴보자. 사실 문 대통령의 평가는 모두 엉터리다. 그에 의하면 지금까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의 비리에 대한 수사는 없었고 공수처 설치로 인해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김영삼정권이 들어서면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범죄 행위에 대한 단죄, 그리고 박근혜와 이명박 전 대통령들이
최근 대전지검의 한 평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바, 그 중에서 개괄적인 부분만 인용한다. 그는 ‘추미애 장관님, 단독 사퇴해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장관은 진정한 검찰개혁을 위해 장관직에서 단독 사퇴해 달라”며 “임명권자께서 요구하신 검찰개혁의 임무를 누구보다 철저히 수행하고 계신 현 총장님까지 물귀신 작전으로 동반 사퇴로 끌어들일 생각은 말아주십시오”라고 덧붙였다. 오만의 올가미에 갇혀있는 검찰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일개 검사의 주장치고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한편으로 살피면 그의 의식세계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일어날 정도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두 가지를 들겠다. 먼저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대목에 대해서다. 우리 헌법을 살피면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있다. 그가 주장한 법무부 장관, 즉 국무위원 사퇴 주장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침범한 경우다. 이 대목을 한편으로 생각하면 심각하다. 결국 그가 주장한 법무부 장관 사퇴는 법무부 장관을 넘어 문재인정권 전체를 적시하고 있다. 국가의 녹으로 연명하는 일개 공무원의 주장치고는 객기에 가깝다. 다음은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지시했던 직무집행 정지 명령에 대해 일선 검사는 물론 간부급 검사들의 집단 반발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그들이 내세운 저항의 변을 살피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 그리고 사법 질서 훼손이다. 사법 질서에 대해서는 법의 문외한인 필자로서 가타부타 언급하기 힘들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해서는 정치판 출신 문학인으로서 보편적 양심에 따라 간략하게 의견을 개진해보겠다. 먼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다. 참으로 희한한 현상으로, 공무원 중 유독 검찰만 이를 강조하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실로 난감하다. 속된 표현으로 ‘지나가던 개가 웃고 말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하튼 그들에게 묻고 싶다. 검찰이 언제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 본 적이 있느냐고. 왜냐, 현 상태의 검찰은 절대로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없다. 검찰은 우리 사회에서 명백하게 권력기관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 기관인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천만에다. 권력 기관, 그것도 비정상적 권력 기관인 검찰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권력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지금까지 검찰이 승승장구했
필자는 지난해 10월 <일요시사>에 ‘검찰청을 기소청으로’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게재했었다. 당시 동 칼럼은 검찰 스스로 ‘대검찰청’을 영어로 ‘prosecution service’라 명명한 부분, 즉 ‘기소로 봉사하는 단체’라 표현한 대목과 관련해 검찰이 지니고 있는 제반 문제를 지적하고 기소만 전담하는 기소청으로 거듭나는 일이 검찰 개혁의 본질이라 강변했었다. 그런데 칼럼을 게재한 지 1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검찰 개혁의 본질을 외면하고 알량한 이익 쫓기에만 급급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혈안이 돼있는 문재인정권, 그리고 이를 정확하게 간파해 맞서고 있는 검찰의 실상을 바라보며 동 맥락과 같은 개념에서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먼저 문재인정권이 바라보는 검찰 개혁에 대해서다. 이와 관련해 현 정권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공수처와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공수처, 이제는 실행할 때이다’란 글로, 이 중 일부를 인용한다. 이 지사는 “있는 죄도 덮고 없는 죄도 만드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은 견제가 있어야 비로소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킬 칼이 될 것”이라며 “공수처는 이미 고 노무현 대통령님 재임
지난 2013년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장에서의 일이다.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은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조영곤 지검장 등에 의한 수사 외압이 있었으며 상관의 지시가 위법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당시 새누리당 법제사법위원인 정갑윤 의원이 “조직을 사랑하는가, 사람에 충성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윤석열은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로 인해 윤석열은 ‘조직은 사랑하지만,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는’ 인물, 즉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하는 인물로 각인되게 된다. 당시 그의 변을 들었을 때 상당히 정치적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필자가 살필 때 그가 작심하고 내뱉은 동 발언은 정치꾼들의 전매특허인 이율배반적인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조직과 사람의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윤석열은 조직과 사람을 별개로 취급했는데 짧지 않은 기간 조직, 특히 서열이 분명한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이에 절대 동조하지 않는다. 조직과 조직의 구성원은 별개가 아닌 동일체로, 조직에 충성한다 함은 사람에 충성한다는 의미다. 일찌감치 자유를 얻고자 일체의 패거리에서 벗어난 필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윤석열의 동
필자가 민주자유당 중앙 사무처 당직자로 근무하던 지난 1992년 12월19일, 그러니까 제14대 대선 바로 다음 날의 일이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김대중)이 선거에 패배하자 대선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고 의원직 사퇴 및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의 정계은퇴 선언은 그의 정치역정을 알고 있던 다수의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심지어 모 유력 언론은 김대중을 가리켜 역사의 승리자로 기록될 것이라는 극찬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전력을 상세하게 알고 있던 필자의 눈에 그의 정계은퇴는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김영삼)의 보복이 두려워 선택한 ‘궁여지책’에 불과해 보였다. 지면 관계상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13대 대선 당시 김영삼의 집요한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으로 야권 분열을 초래했던 김대중은 중요한 기로에서 김영삼에게 치명적 훼방꾼이었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밝히자. 김영삼이 왜 1990년에 무수한 비난을 감수하고 노태우, 김종필과 합당했느냐에 대해서다. 그 이유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김대중을 우군으로 둔다면 그의 야망을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흥미로운 사실을 먼저 짚어보자. 지난 1928년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국내 유력 일간지가 일본 의회의 ‘검사지휘권’에 대한 법률 개정의 내용을 보도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한다. 『검찰법 제21조에 대해 ‘사법대신(현재 법무대신으로 우리의 법무부 장관)은 공소 사실에 대해 개개의 검사를 지휘·명령함은 폐해가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사법대신은 개개의 검사를 지휘감독하지 말고 검사총장(검찰총장)을 경유해 명령을 개개의 검사에게 이달하고 긴급하고 부득이한 때에는 개개의 검사를 지휘한다’로 개정한다.』 이어 지난 주 <일요시사>에 게재했던 ‘윤석열의 궤변 중’에 언급했던 검찰청법 제8조를 다시 인용한다. 동 조항은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연하면, 일본의 개정안은 ‘법무부 장관은 일반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통해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개개의 검사를 지휘한다’고 규정한 반면, 우리 검찰청법은 역으로 ‘법무부 장관은 일반적 사건에 대해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
조선왕조실록 태종 11년(1411)6월3일의 기록을 요약해본다. 『형조판서 임정(林整)이 “형조에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데, 한 어미는 그 아들이 살기를 구하고, 한 어머니는 그 아들이 죽기를 원하는 일입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슨 말이냐?”고 했다. 임정이 대답하기를, “도관(都官, 노비의 송사를 담당하던 형부의 속사)의 비(婢) 아무개가 말하기를, ‘내 아들이 나를 구타하니 이 놈을 죽여 주십시오’ 하므로, 신 등이 여러 날 동안 조사했어도 그 실정을 얻지 못했습니다. 또 아들의 용모를 보건대 매우 열약(劣弱)해 그 어미를 구타할 수 없는 놈인 듯이 보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미가 그 아들을 죽이려고 하니 어찌 공연(空然)한 일이겠는가? 그것을 자세하게 살피라.” 이에 대사헌 황희(黃喜)가 말하기를, “신도 이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종은 일찍이 남의 첩이 되어 음란한 행동을 자행해 이 아들을 낳은 것인데, 다른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본래부터 모자의 애정이 없으므로, 항상 해하려고 합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 형조판서는 지금에 법무부 장관에 해당되며 정2품 관직이고, 대사헌은 검찰총장에 해당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