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강북 북창동 룸살롱 황제로 불리는 봉모(47)씨가 지난 18년 동안 세무서와 경찰에 정기적으로 로비 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봉 사장은 A룸살롱을 운영하면서 세무조사와 경찰 단속을 피하고자 관공서에 상납한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조세포탈 혐의로 봉 사장 대신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는 A룸살롱 ‘바지사장’ 주모씨를 만나 사건의 전말을 들어봤다.
봉 사장은 1999년부터 서울 북창동에서 A 룸살롱을 운영해왔다. 지금까지 18년째 이들 업소에선 유사 성행위 등 성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영업정지를 당한 적이 없다.
지난 5년 동안 경찰이 봉 사장의 업소에 성매매 단속을 나간 건 10번. 이 가운데 9번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2012년, 경쟁업소 관계자가 손님으로 가장한 뒤 성매매 현장에서 신고를 해 단 한 번 덜미를 잡혔지만 영업정지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난 18일 16시께 강남역 근처 카페에서 기자는 주씨를 만났다. 주씨와 일문일답이다.
-봉 사장과 무슨 관계인가?
▲A룸살롱에서 10년 정도 상무로 일했다, 상무는 쉽게 말해 영업직이다. 손님에게 술과 아가씨를 브리핑하고 가격을 제시한다. 끝날 때까지 손님을 챙긴다. 지난 2013년 3월에 제주도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봉 사장이 “바지사장으로 세무서 조사만 받아달라”며 조사 받으면 3000만원을 준다고 제시했다. 당시 돈도 없고 어려운 처지였으며, 봉 사장이 “다 손 써놨다”며 전혀 문제없을 것이라고 했다.
-세무조사 상황은?
▲봉 사장은 그냥 조사할 때 ‘예’ ‘아니오’라고만 대답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도 바지사장인 내가 아는 게 있겠나. 이상한 게 봉 사장이랑 같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당시 봉 사장이 과일 한 상자를 들고 갔는데, 봉 사장이 세무서 직원에게 “형님 저 왔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세무서 직원들도 아주 편하게 맞아주었다. 직원이 나에게 ‘인삼한뿌리’(음료수)도 손수 따줬다.
조사 받으면서 봉 사장은 옆에서 다리를 꼬고 편하게 있었으며, 내가 모르는 것을 일일이 알려줬다. 상식적으로 조사 받는데 옆에서 대신 말해주는 게 말이 되는가. 그것도 두 차례 다 그런식으로 조사를 받았다. 당시 봉 사장이 세무서 직원을 매수한 것으로 확신했다.
-세무서 직원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나?
▲이름은 잘 모른다. 얼굴을 보면 누군지 알 수 있다. 조사 받을 때 두명이 있었다. 한 명은 타자를 쳤던 젊은 남자와 형님이라고 부른 중년 남자 직원이 있었다. 타자를 쳤던 사람은 얼굴이 잘생겼었다. 믿음직해 보였다. 중년 남성은 덩치도 크고 어깨도 벌어져 있었다. 앞머리가 옆으로 가르마를 타고 있었다.
-룸살롱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실제로 접대가 어떻게 이뤄지나?
▲룸살롱은 관할 관공서의 협조가 없으면 운영할 수가 없다. 세무서 직원과 경찰에게 한 달에 한 번씩 100만∼200만원 월정금을 상납한다. 이쪽 바닥에서는 관행이다. 또 예를 들어 단속이 오면 벌써 위에서 다 알고 있다. 상무들은 초소형 무전기를 끼고 일하는데 “앞에 빽차(경찰차) 왔으니깐 조심해라” 등으로 지시가 내려온다. 그리고 한 달에 두세 번 꾸준히 관공서 직원들이 A룸살롱에서 회식을 했다. 접대 테이블은 상무들이 안 받고 간부급들이 받는다. 한 번씩 그렇게 수백만원 상당 접대를 받고 갔다.
“관공서 정기 상납은 사실”
봉 사장이 필리핀서 폭행
-실제로 접대 받은 관공서 직원 리스트가 있나?
▲관공서 관리 리스트는 그 사람한테 다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꼼꼼하다.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주씨는 이 질문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기자의 눈만 바라보며 답변을 피했다.)
-조사 받고 필리핀으로 왜 도망갔나?
▲봉 사장은 추징금 3억∼4억원 정도밖에 안 나올 거라고 했다. “너가 빵(감옥) 가도 집행유예로 나온다 그냥 부담 없이 해라”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사 4일 만에 누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어떻게 추징금이 28억이 나왔냐. 뭔 사고를 친거냐”고 깜짝 놀라했다. 봉 사장은 곧 검찰 수사가 시작된다며 “빵에 가려면 여기 있고. 안 가려면 필리핀 가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2013년 11월에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도망갔다.
-도피생활은 어땠나?
▲필리핀에서 2년3개월 동안 거지처럼 살았다. 봉 사장은 8개월 간 생활비도 한 푼도 안 줬다. 도피 생활이 힘들어 자수하려고 하니깐 봉 사장이 그때부터 나를 때리더라. 여권도 빼앗아 한국에 못 돌아가게 했다. 봉 사장은 나를 감시하려고 필리핀에 자주 왔다. 그곳에서 장소를 안 가리고 봉 사장에게 맞았다.
맥도날드, 놀이터, 하얏트 호텔, 하숙집 등 이빨도 나가고 안경 쓴 채로 맞기도 했다. 안경도 두 번이나 바꿨다. 봉 사장이 때리면 옆에서 동업자 이모(44)씨는 말렸다. 이씨는 그러면서 나에게 “형(주씨) 말 잘 들어야 해, 형 죽이려고 사람까지 사놨어”라고 협박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는 지금도 살아서 돌아온 게 감사하다.
-한국에는 어떻게 왔나?
▲지난해 12월 필리핀 대사관에 자수했다. 여권도 빼앗기고, 비자 문제도 생겨 한국 들어오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당시 누가 나를 죽일 것 같아 필리핀 경찰관과 함께 공항에 갔다. 지난달 중순 한국에 돌아왔다.
-조사는 어떻게 받고 있나?
▲한국 돌아와서 며칠 뒤에 남대문 경찰서에서 두 차례 조사 받았다, 검찰 조사도 한 번 받았다. 현재 검찰에서 조사 중이다. 구체적으로 조사 내용을 말할 수는 없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은?
▲당연히 바지사장이라고 사칭하고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은 잘못됐다. 달게 처벌 받겠다. 하지만 봉 사장도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는 악마였다. 필리핀에 있는 동안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