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응급피임약의 오남용

쉽게 사용하는 피임약 위험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연말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그래서인지 TV 광고에 모텔 등 숙박업소를 안내하는 애플리케이션 광고가 유난히 잦은 것을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에는 연인들을 위한 방 잡기 경쟁이 송년회 장소 예약보다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 때 연인을 위한 이벤트보다 미리 챙겨야 할 것은 피임이다. 응급피임약 처방이 바캉스철 다음으로 많은 때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이기 때문이다.

일반피임약에 비해 10배 이상 호르몬 함양
반드시 의사처방 필요한 전문의약품이어야

바캉스철이 7~8월에 고르게 분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연말연시 기간은 이보다 더 짧아서 일 평균 처방 건수로 따지자면 연말연시의 응급피임약 처방 건수가 1년 중 가장 높을 가능성도 있다.
응급피임약은 말 그대로 피임을 미리 하지 못해 임신이 염려되는 응급상황에서 먹게 되는 약이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응급피임약이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피임약 사용 증가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 의원이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제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피임약 처방 건수가 지난 2011년 3만7537건에서 지난해 16만9777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고, 전체 피임약 처방 건수 중 응급피임약 처방은 62%를 차지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20대가 가장 많이 처방 받았고, 뒤를 이어 30대, 40대, 10대, 50대 순이었다. 이 중 10대가 처방 받은 응급피임약 건수만도 10%에 해당하는 1만5738건이었다.
정호진 피임생리연구회 연구위원장은 응급피임약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바로 잡고 응급피임약 오남용을 예방하는 교육 및 홍보활동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일반 먹는 피임약에 포함된 호르몬 보다 10배 이상 함량이 높은 응급피임약이 부작용 우려가 큰 반면, 사후피임약으로 잘못 쓰이고 있는 용어처럼 피임방법 중 한 가지로 오인해 오남용 될 때에는 여성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용량 호르몬이 포함된 응급피임약의 복용 후에는 복용 후 메스꺼움이나 구토, 두통, 하복부 통증, 유방통증, 피로 및 불규칙한 질 출혈, 여성호르몬 및 내분비계의 일시적 교란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으며, 질 출혈을 생리로 오인하여 임신 상태를 간과하거나 자궁외 임신과 같은 응급상태를 방치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정 위원장은 응급피임약이 생각만큼 피임효과를 신뢰할 수 있는 약도 아니라고 밝혔다. 응급피임약의 평균 피임실패율은 10~20% 이상으로, 일반 피임약의 2~8%보다 훨씬 높다. 월경주기 1회당 1회만 복용이 가능하며, 응급피임약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복용할 경우에는 호르몬에 내성이 생겨 피임효과가 더욱 감소될 수 있다.
응급피임약의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오남용을 억제할 최소한의 장치마저 제거하자는 이야기와 같다. 특히 우리나라의 20~30대 젊은 여성들이 응급피임약에 피임을 의존하는 성향이 크다는 점은 응급피임약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의 폐해가 더욱 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염려스럽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서 보듯이 2010년에는 일반피임약 3만1217건 응급피임약 3만7537건으로 비슷하던 처방건수가 2014년에는 일반피임약이 10만4835건으로 늘어나는 동안 응급피임약은 16만9777건으로 압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이와 같은 응급피임약 처방건수의 증가는 응급피임약이 반드시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어야 하는 점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밝혔다.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처방전 없이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응급피임약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면, 응급피임약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대신, 콘돔 등 다른 피임방법의 사용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 매개 감염이나 골반염 등 사회적 비용 및 건강보험재정에 부담을 줄 추가적인 부작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제대로 된 피임 상담 또는 계획임신 상담의 기회가 줄어들게 됨으로써, 인공임신중절을 줄이거나 출산율을 올리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정 위원장은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해외 몇몇 국가의 사례를 근거로 들어 안전하다고 말하는 일부 주장들에 대해서는, 국가간의 피임문화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10대부터 여성들이 먹는 피임약을 통해 피임을 시작하고, 피임약 복용률이 적게는 14%대에서 많게는 42%에 달하는 국가들과 먹는 피임약 복용률이 여전히 3~4%로 여성들의 주체적인 피임문화가 답보상태라고 볼 수 있는 우리나라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응급피임약이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안전’하다고 판단될 수 있었던 근거는 어디까지나 그 용도가 한정적이고, 복용이 단기적이었으며 복용이 꼭 필요한 상황인지 우선 판단하는 전문의의 처방이 오남용 방지 수단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응급피임약을 피임 없는 성관계 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 ‘필요할 때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피임약’ 이라고 인식하게 된 후에도 과연 응급피임약의 안전성이 보장될 수 있을지는 산부인과 전문의들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정 위원장은 미래 대한민국의 건강을 책임질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응급피임약뿐 아니라, 먹는 피임약 등 주의를 요하는 호르몬제는 산부인과 전문의로부터 처방을 받아 복용하고, 이를 통해 보다 자세한 복약지도와 이후 실천 가능한 계획적인 임신과 피임법에 대한 상담까지도 함께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소속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보다 많은 한국 여성들이 계획적인 피임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몸을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응급’ 상황에서 산부인과 방문 자체가 큰 심리적 부담이 되어 방문을 포기하게 되는 여성들을 돕고자 산부인과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의사회 차원의 노력들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사회적 관심 필요

구체적인 실천 방법 중의 하나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는 여성의 피임 및 생리관련 질환에 대해 정확한 의학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통해 전문적인 무료상담을 제공해 오고 있으며, 산부인과 전문의가 중고등학교로 찾아가는 피임교실도 운영 중에 있다.
정 위원장은 장차 어머니가 될 청소년들이 스스로 건강관리를 일찍 시작할 수 있도록 계획임신과 건강한 자궁관리 방법을 알려주는 ‘찾아가는 피임교실’에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의 확대가 절실하며, 인공임신중절 등을 효율적으로 예방하려면 성생활이 활발해지는 20대를 겨냥해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대학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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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