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42)정옥현 무송종합엔지니어링 대표

1조대 분양사기 10년째 법정공방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42화는 551억9500만원을 체납한 무송종합엔지니어링 대표 정옥현씨다.

국세청이 공개한 6609개의 고액체납 법인 가운데 체납액 기준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회사가 있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516억500만원을 체납해 전체 8위에 랭크돼 있다. 건설 업종 가운데는 1위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이하 ㈜ 부호 생략)은 지난 2008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29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납부기한은 2010년 12월31일까지다.

1조대 매출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2009년 7월부터 지방소득세 등 13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징세할 세금은 23억3500만원이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의 등기상 대표는 정옥현씨다. 정씨 개인은 국세청과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정씨는 2009년부터 국세청이 과세한 양도소득세 등 6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한 세금은 11억1600만원이다. 정씨는 같은 해 7월부터 지방소득세 등 6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고지한 체납액은 1억3900만원이다. 정씨 및 정씨가 대표로 등재된 회사 앞으로 달린 세금의 합은 확인된 것만 551억9500만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의 2011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표 정씨는 지분 20%만을 소유한 3번째 주주였다. A씨와 B씨는 각각 30%의 지분율을 기록해 정씨보다 많은 지분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2011년까지 법인 대표는 정씨가 아닌 김모씨였다. 김씨는 2005년부터 무송종합엔지니어링 대표직을 수행했다.


법인등기부등본을 살피면 등기임원 가운데 강모씨가 눈에 띈다. 강씨는 정씨와 함께 무송종합엔지니어링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강씨는 서울대 출신으로 한 대기업 건설사 전무를 지낸 바 있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이 체납한 거액의 세금과 관련해 강씨는 키를 쥔 인물로 꼽힌다.

대표 정씨 및 강씨는 각각 807명의 분양 피해자로부터 피소돼 10년 가까이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07년 2월 분양 피해자들은 정씨와 강씨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발단이 된 사건은 부산 남구 용호동 오륙도SK뷰아파트 분양사기 의혹이다.

사건은 지난 2004년 5월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이 부산 남구 용호동 일대 아파트 건설 사업시행자 지위를 획득하면서 시작됐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이 사업시행자가 되기까지는 복잡한 사건 경과가 있다. 국유지 불하와 토지 원소유주 간의 다툼, 최초 사업시행자의 부도 등이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2002년 무렵부터 용호동 개발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전면에 나선 건 2004년이다.

대법원 판결문과 공공기관 발급 문서 등에 따르면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2004년 8월 용호동 산 185-1 외 34필지에 총 3000세대 규모의 아파트 15개동을 신축하기로 하는 주택건설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사업기간은 2004년 8월부터 2008년 10월까지로 예고됐다.

2005년 9월28일 허남식 당시 부산광역시장은 대지면적 16만9840㎡, 연면적 66만6123㎡ 규모의 사업 승인·변경 고시를 공고했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의 대표는 김씨였고, 이들이 신고한 사업비는 무려 1조3857억3796만원이었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1994년 5월 설립된 부동산 개발회사다. 서울 마포 주상복합(655가구), 부산 반여동 공동주택(744가구), 사직 도심지(1030가구) 재개발 사업에서 컨설팅을 맡았다. 오륙도SK뷰아파트 건축은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이 직접 분양을 맡은 사실상 최초의 사업이었다.

서울시 24억7400만원
국세청 527억2100만원
부산 용호동 개발사업 도중 부도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용호동 일대를 관광지와 주거단지를 융합한 랜드마크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분양광고에는 Sea-Side(씨사이드)가 조성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씨사이드는 해양공원을 가리킨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수분양자에게 "오륙도SK뷰아파트가 해양공원아파트라는 특징을 갖는다"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앞 해안가에는 호텔, 컨벤션센터, 콘도, 워터파크, 쇼핑몰, 씨푸트레스토랑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해양공원이 들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씨 등은 해양공원이 완공되지 않으면 아파트 준공승인이 나지 않는다고 광고했다. 실제 부산시는 2006년 5월 씨사이드를 관광지구로 확정하는 안에 사인했다.

같은 시기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강원 원주시 호저면 '대명원' 개발에도 관심을 보였다. 총 2000억원을 투입해 2007~2010년까지 대명원 일대 17만평을 생태단지와 최첨단 기능을 갖춘 뉴타운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사업 파트너로는 SK건설이 고려됐다. SK건설은 오륙도SK뷰아파트의 시공사이기도 했다. 2004년 10월 SK건설이 무송종합엔지니어링과 맺은 원도급가액은 6246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의 실제 대표로 의심된 강씨는 SK건설 출신이다. 강씨의 동생 역시 같은 회사(SK건설)에 재직 중이었다. SK건설은 용호동 개발 과정에서 자체 감사보고서에 오륙도SK뷰아파트 도급금액을 5730억원으로 기재해 논란이 됐다. 두 회사 간 도급금액이 현저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무당국은 사라진 수백억원에 대해 무송종합엔지니어링 측에 세금을 물렸다.

시공에 참여한 건설사 가운데는 대주건설이 있었다. 허재호 당시 대주건설 회장은 SK건설로부터 받은 공사비 112억원을 횡령했다. 풍림산업 역시 3400억원을 들여 짓겠다던 해양공원 조성 사업에서 발을 뺐다.

반면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의 매출은 2005년부터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했다. 2005년 2335억원, 2006년 3276억원, 2007년 3260억원으로 3년 동안 약 9000억원을 관리했다. 2008년에도 35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2007년 2월부터 이미 위기를 맞고 있었다. 수분양자 1000여명은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이 SK건설과 함께 과장 분양광고를 했다"라며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시행사가 해양공원 조성을 사실상 포기하자 분양계약을 취소하며 중도금 납부를 거부했다. 광고만 믿고 인근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계약자들은 기나긴 법정공방에 휘말렸다.

대법원은 올 7월에서야 무송종합엔지니어링과 SK건설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들은 각각 허위·과장 광고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지급할 위자료는 120억원 규모다. 단 대법원은 일부 법리적 판단의 오류를 지적하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대기업과 한몸

법정에서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SK건설에게 2009년 시공사의 지위를 양도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은 유동성 위기를 겪다 2010년 사실상 폐업했다.

같은 해 국세청은 무송종합엔지니어링이 폐업 전 미개발된 씨사이드 부지를 담보로 550억원을 대출받은 뒤 이를 동양증권에 신탁하자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세금·압류를 피할 목적으로 허위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대법원은 동양증권의 손을 들었다. 세무당국의 압류조치는 자동 해제됐다. 500억원대 체납 세금을 해결할 마지막 방도가 사라진 것이다. 씨사이드 개발은 10년째 보류 중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