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갤러리도스에서 동양화가 정진아 작가의 '바람걸음'전이 열린다. 작가는 '인연의 흔적'이란 자신의 주제 의식을 이번 전시를 통해 더욱 심화시켰다. 백토와 금분, 흑연으로 그린 담백한 산수화에서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정진아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바람걸음'전이 지난 24일부터 서울 갤러리도스에서 열리고 있다. 아크릴, 흑연, 연필 등을 이용해 '정제된 산수화'를 선보이고 있는 그는 '인연의 흔적'이란 자신의 주제 의식을 더욱 심화시켰다.
자연을 그린다
정 작가의 작업은 단순히 작품을 만들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우리 주변의 '관계'를 조망하는 사색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의 관념 안에선 존재하는 모든 자연물의 관계가 뒤바뀐다. 작가의 삶을 긴 '여정'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가 머무른 장소, 사물의 위치, 여행지에서의 관심사 등 모든 것이 변화한다.
심지어는 기억을 구성하는 상징적인 언어체계에서 '역치'가 생긴다. 주어, 개체, 배경이 바뀌고 존재하는 것들의 상응(相應)이 펼쳐진다. 자연 속 여러 형상은 서로 순서와 자리를 바꾸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 속 수많은 '나비효과'가 빚어낸 '여정'은 화면 위에 덮여 실제보다 더욱 생동감 있는 풍경을 만든다.
작가는 인간(혹은 자연물)이 매 순간 다른 상황과 삶에 적응하며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서로를 몰랐던 순간 혹은 이별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어느 지점에서 연결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접점, 쉽게 풀면 '인연'이다. 작가는 지난해 갤러리이즈에서 첫 번째로 열린 개인전 'Unseen Movement'에서도 '인연의 흔적'을 이야기했다.
당시 정 작가는 자신의 작업노트에 "순간의 변화가 모여 만든 지금의 형상은 또 다른 내일의 순간이 된다"라며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닌 매일 새로운 삶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시간성을 지니며 흩어진 인연의 조각들은 다시 한 곳에 흘러들어 생명을 품는 공간을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상호작용의 결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다. 작가는 이처럼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의 풍경을 드러내고자 했다. 연기와 같이 사라지는 물, 단단한 돌이 그림자처럼 해체되는 과정이 그림 속에 녹아있다.
백토·금분·흑연으로 표현
정제된 담백한 산수화 담아
죽은 풀은 흙의 일부가 된다. 흙은 다시 생명을 잉태한다. 삶과 죽음을 뛰어넘어 관계 맺은 것들은 서로 함께 순환하며 공존한다. 응축된 자연물의 관계는 작품 속 여백으로 표현됐다. 허상으로 보이는 실체와 물질, 그 관계를 둘러싼 '바람걸음'이 두루마리 형식의 작품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변화하고 있는 풍경은 처음과 끝이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수미상관의 구조를 갖는다. 화려함을 덜어낸 산수는 담담하게 그 변화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작품 속 각 자연물은 단절된 드로잉이 아닌 연속성을 지닌 작업의 여정으로 인식돼야 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정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순지를 주로 이용했다. 백토와 분채, 금분, 흑연 등을 덧칠해 순지의 물성을 살려낸 모습이다. 자연을 닮은 그림에서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감상에 젖다보면 고요한 바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정 작가의 그림은 보는 그림이기 이전에 생각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연속된 작업
우리는 변한다. 동시에 자연도 변한다. 자연을 움직이는 힘과 움직이는 자연은 서로 독립된 존재일 수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그림 앞에 선 관객에게 "모든 것은 변한다"라고 말한다.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찰나가 '바럼걸음'을 통해 제공된다. 전시는 다음달 6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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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아 작가는?]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동양화전공 및 동대학원 수료
▲개인전 'Unseen Movement'(2014, 갤러리이즈) '바람걸음'(2015, 갤러리도스) 등 2회
▲그룹전 화봉갤러리, 갤러리 각, 겸재정선기념관, 모란미술관, 공평아트센터, 조선화랑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