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①그들은 누구?

어렵게 자라 세상이 적이라 여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트렁크 시신’ 사건의 범인 김일곤이 구속됐다. 김씨는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뒤 시신을 차량 트렁크에 넣은 채 도피행각을 벌였다. 그는 주차장에 불을 지르고 시신이 훼손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또 검거 당시 그의 호주머니에서는 이른바 ‘데스노트’로 불리는 29명의 이름이 적힌 쪽지도 나왔다. 가히 엽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살인범들의 이러한 엽기적인 행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살인은 극악무도한 범죄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사건 현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희대의 연쇄살인범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강력범죄 87%
피해자는 여성
 
국회 안정행정위원회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간 살인사건 발생 건수는 2012년 984건에서 2013년 914건, 지난해 906건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로 나오지만, 살인범들의 잔혹한 범행 방법은 이런 통계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잔혹한 살인범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왜 이들은 연쇄 살인범이 되는 것일까.’ 확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범죄학자 에드워드 글로버가 쓴 <범죄의 기원>에서는 연쇄 살인범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사기성이 짙은 사람이다. 자신의 욕구만이 중요하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으며 고문·강간·살인에 대한 욕망을 꿈꾼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악한 본성을 감춘 교활하고 냉혹한 약탈자이다. 양심의 가책이 없으며 대부분 선정적이고 파괴적이다.” 
 
우선 연쇄살인범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이는 통계로도 알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올 들어 발생한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 및 강제추행)는 총 1만5227건으로, 이 중 약 87%인 1만3344건이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로 집계됐다.  
 
 
희대의 살인마로 불리던 강호순은 여성만 살해했다. 2009년 경기도 군포시에서 실종된 여자 대학생을 살해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했다. 강호순이 살해했다고 밝힌 부녀자는 노래방 도우미 3명, 회사원 1명, 주부 1명, 여대생 2명이었다. 그는 2005년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자신의 장모와 처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이외 김길태, 조두순 등 대부분 여성을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십중팔구 불행한 가정환경서 성장
왜소한 체구에 콤플렉스도 공통점
 
여성을 상대로 한 이런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며 과거 남성 대 남성의 금전 갈등, 감정적 갈등 등이 여성에게로 번져갔다고 불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물리적인 힘이 약한 여성이 피해자가 될 확률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분위기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증가의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폭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려는 심리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더 많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간을 충격에 빠뜨리며 두려움에 떨게 한 살인범들은 대부분 유년시절 큰 충격을 받으며 불우하게 보낸 경우가 많다. 역대 연쇄살인범의 성장 과정을 보면 ‘가정불화’ ‘가출’ ‘학대’ ‘고아’ ‘버림’ 등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대부분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9명을 살해한 정두영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 버림받았다. 아버지가 일찍 타계했으며,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삼촌집에 맡겨졌으나 곧 고아원에서 살게 된다. 늘 자신의 왜소한 체구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첫 살인을 저지른 것도 방범대원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저질렀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18살의 이른 나이에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서 11년간 복역한다. 
 
유년기 큰 충격
부모 영향 받아
 
유영철의 경우는 어머니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그를 죽일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남편의 외도로 유영철의 친 어머니는 서울로 상경했고 유영철은 계모와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지만 계모의 폭력에 시달리다 초등학교 시절 가출을 하는 등 암울한 유년시절을 보내왔다. 
 
이처럼 불안전한 가정환경은 살인범을 양성하는 대표적 원인으로 지적된다. 학자들은 이를 ‘사회구조이론’에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살인범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버팀목이 될 존재들에게 정서적 애착을 느끼지 못했다”며 “이들은 버팀목 자체가 없거나 그들에게 학대당한 경험이 많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려면 정서적인 함양을 통해 경험을 습득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충족하는 방법을 얻지 못한 것이다” 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정서적인 공감능력도 발전하지 못한다는 게 학계의 통념이다.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한 채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탓에 전문가들은 살인범도 포괄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피해자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각한 심리·성격적 문제를 가진 사람 모두 거듭되는 좌절과 실패, 거절 등 스트레스 환경에 놓인다고 다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쇄살인을 계획하게 만드는 촉발요인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유영철의 경우는 교도소로 날아든 아내의 이혼통고가, 정두영은 10억원을 마련해 동거녀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지존파는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입시부정 등 가진 자의 부정부패가 촉발요인이라는 견해가 있다.
 
싸이코패스(Psychopath) 기질도 연쇄살인범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사이코패스란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필리프 피넬이 창안한 심리학적 용어로 정신을 뜻하는 사이코(Psycho)와 병리 상태를 의미하는 패시(pathy)의 합성어라고 한다.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신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또 최대한 잡히지 않을 방법을 고심한다. 일반인과 다른 합리성을 보이지만 이들도 권력욕, 성욕 등 나름대로 범죄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3명을 살해한 정남규다.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경우 살인 자체를 즐겼다. 그는 직접 대면해서 “어떤 도구로 살인하는 걸 좋아하느냐”고 물으며, “망치, 칼 다 쓰지만 아무래도 칼이 제일 짜릿하다. 때론 망치도 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남규는 살인, 방화, 절도, 강도, 강간 등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저질렀다. 쉽게 말하자면 살인을 탐닉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첫 번째 살인이 두 번째 살인의 교본이 된다. 그는 이 사건을 시작으로 완전범죄를 위한 체력관리까지 들어간다. 이틀에 한번씩 10km를 뛰며, 건강식단을 먹는 등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쓴다. 
 

본인 욕구 충족
치밀하고 계획적
 
정남규는 살인자체가 목적이며 살해 대상을 물색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그는 살인 대상 순위까지 정했다. 정남규는 고통받는 피해자를 보면서 희열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정남규를 검거한 영등포 경찰서 팀장은 “피해자가 고통받으며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자기 두 눈으로 보면서 황홀감 내지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 살인범의 또 하나 특징은 계획적이며 치밀하다는 것이다. 유영철이 사이코패스 중 한 사람이다. 유영철은 범행 지역을 사전 답사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뒤 살인을 저지르는 ‘계획 살인범’의 면모를 과시했다. 
 
연쇄살인의 경우 목격자를 피하고자 가급적 길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정원이 넓어 외부에서 집안 상황을 파악하기 힘든 100평 이상 2층 단독주택을 주요 범행대상으로 선정했다. 또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노인 혼자 집을 지키던 점심시간 전후나 오후 시간대에 주로 범행을 저질렀고, 일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상대를 안 가리고 모두 둔기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잔혹하게 살해했다. 혜화동 노인 살인사건에서는 강도로 가장하려고 곡괭이 등으로 금고문을 뜯어내려 한 흔적을 남겼다.
 
최근 사건 터졌다 하면 ‘참혹’

약자인 여성들 상대로 한 범행
 
이 과정에서 손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르자 경찰의 DNA 감식을 고려해 현장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유씨는 살해한 보도방 여성의 신원 파악을 하지 못하도록 지문을 흉기 등으로 없앴다. 토막낸 사체는 검은 비닐봉지로 5∼6겹 싸서 운반했고, 암매장을 마친 후 단서가 될 수 있는 비닐봉지를 다시 거둬왔다.  
 
그렇다면 살인하는 순간 연쇄살인범의 심리상태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금품 탈취 등이 목적이 아니라 동기도 없이 묻지마 연쇄살인을 하는 살인마들이 살인을 멈추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그 순간에 짜릿한 흥분과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범죄자의 DNA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연쇄살인범 등 특히 폭력적인 범죄자는 뇌구조와 기능, 특정 신경전달물질 생성체계, 또는 성호르몬 분비량 등이 다르다는 보고가 최근 학계에 자주 보고되고 있는 점이다.  2004년 캘리포니아대의 아드리안 레인과 베데스다의 메서디스트병원(NYMH)의 제임스 블레어는 충동적인 살인자의 뇌와 사전에 치밀히 계획된 살인을 범하는 연쇄살인범의 뇌적 이상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뇌 구조 달라
신경도 특이
 
MRI를 통해 충동적 살인자의 뇌는 전두엽피질의 활동이 저하된 반면 연쇄살인범의 경우엔 전두엽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편도체의 활동이 저하됐다. 대뇌 피질 측두엽의 왼쪽에 위치한 편도체는 두려움을 발생시키는 곳이며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감지하고 처벌에 따라 태도를 바꾸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편도체가 비정상적인 연쇄살인범은 두려움도 타인과의 공감도 없다. 피해자가 자신의 엽기적 행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는지 정작 본인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전두엽의 활동이 저하된 사람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화를 내며 공격적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살인사건 연루 유명인 누구?
직접 죽이고 “죽여라” 사주
 
살인 사건은 고위층에서도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인정받은 이들이 왜 살인을 저지른 걸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0·26 사건’이 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요정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1979년 10월 피격한 사건이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유신 개헌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며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박정희를 저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아직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피격한 구체적인 배경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 발칵
막후서 지시한 고위층도 
 
90년대 희대의 패륜아로 불렸던 고려한약의 사장의 장남이었던 박한상도 있다. 그는 100억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1994년 5월 부모를 살해했다. 아버지를 흉기로 수차례 찌른 후 도망가는 어머니도 쫓아가 무참히 살해했다. 그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알몸으로 범행을 감행했고, 집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경찰은 한 집에 있었음에도 유독 박한상만 이렇다 할 상처가 없는 점과 머리에 묻은 타인의 혈흔 등을 근거로 추궁하자 이내 박한상은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자백했다.
 
일가족을 살해한 가장도 있다.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이호성은 2008년 3월 아내와 세 딸을 살해하고,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일가족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호성은 선수생활 은퇴 후 삶의 부침을 겪었다. 
 
이 외에도 최근 친구를 시켜 재력가를 청부 살해한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이 법원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2010∼2011년 재력가 송모(사망 당시 67세)씨로부터 선거 자금 5억2000만원을 빌리면서 송씨 명의 부동산의 용도를 변경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 처리가 지연되면서 송씨가 김형식 전 시의원의 금품 수수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자, 친구인 팽모씨를 시켜 송씨를 살해한 혐의로 지난해 8월19일 무기징역으로 복역 중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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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