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징크스> ‘진도의 저주’ 내막

품으면 사건사고 펑펑 ‘도미노 잔혹사’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재계에 흉흉한 괴담이 돌고 있다. 이른바 ‘진도모피의 저주’. 이 소문은 호사가들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그 실체를 파헤쳐봤다.

 
‘사채 괴담, 사정 괴담, 사옥 괴담, M&A 괴담….’
 
재계가 온갖 괴담으로 뒤숭숭하다. 안 그래도 경영난을 겪는 기업으로선 소소한 입방아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국이 혼란스럽고 검찰발 사정이 한창이라 더욱 그렇다. 한번 퍼지면 좀처럼 진화되지 않아 심각성을 더한다.

‘인수→위기’
 
진도모피의 저주.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 괴담은 모피로 유명한 ‘진도’를 인수하면 위기에 처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한마디로 ‘망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수도 있다. 설립 이후 회사를 장악한 점령군이 줄줄이 추락하면서 저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소문이나 괴담은 거의 대부분 출처와 실체가 불분명한 낭설로 끝나기 일쑤다. 진도모피의 저주는 소설 같은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물론 그럴 만한 사례가 근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국내 대표 모피브랜드 진도는 고 김성식(1981년 작고) 창업주가 운수업을 하다 1965년 의류공장을 세운 게 모태다. 정식으로 설립된 건 1973년. 외국업체 주문생산만 하다 1980년대 들어 직접 모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엔 모피가 수입금지 품목이었다. 때문에 진도모피는 불티났다. 만드는 족족 팔려 나가 김 창업주 일가는 돈을 긁다시피 했다. 사업도 환경, 건설, 무역, 철강 등으로 늘었다. 진도그룹은 한때 재계서열 50위권에 들기도 했다.
 
김 창업주가 별세한 뒤 그의 아들(영원-영철-영진-영도-영기)들이 공동으로 경영했다. 이들은 각각 진도그룹 회장과 부회장, ㈜진도 대표, 진도물산 대표, 진도산업개발 대표를 맡았다. ‘진도’란 회사 이름은 김 창업주가 영진-영도 형제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재수 없는…’ 흉흉한 소문 돌아
인수한 회사·오너 줄줄이 곤욕  
 
잘나갔던 진도그룹은 1990년대 후반부터 어려워졌다. 무리한 투자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1998년 외환위기 때 경영이 악화돼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소유권이 채권단에 넘어간 것. 그룹은 공중분해 됐다. 오너일가는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모두 퇴진했다.
 
당시 그룹을 이끌던 김영진 전 회장은 철창신세까지 졌다. 대검 중수부 산하 공적자금비리 특별조사단은 2001년 비리 경영인 33명을 적발했다. 이 중 한 명이 김 전 회장이었다. 그는 3500억원대 사기대출과 횡령 등 혐의로 이듬해 구속됐다. 김 전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년에 마가 낀 것 같다”는 얘기를 끝으로 야인으로 돌아갔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진도는 C&그룹(당시 쎄븐마운틴그룹)에 인수됐다. 새 주인은 임병석 회장. 진도모피의 저주, 바로 두 번째 에피소드 주인공이다.
 
목포 해양대를 졸업한 임 회장은 항해사로 일하다가 30세 때인 1990년 단돈 500만원으로 칠산해운을 세웠다. 사업 초기 선박과 화물 중개업으로 돈을 벌어 1995년 해운업에 본격 진출했다. 2002년부터 세양선박,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한리버랜드, KC라인, 우방 등을 잇달아 인수해 2조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한때 계열사가 40개가 넘기도 했다.
 
 
‘M&A의 귀재’로 불린 임 회장은 진도를 인수할 때가 최고 전성기였다. C&그룹은 2004년 6월 진도를 1744억원에 인수했다. 진도는 4개월 뒤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법원 승인이 떨어진 날 임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해외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라며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이날 임 회장은 유난히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는 게 간담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도 잠시. 3년이 채 되지 않아 암운이 드리웠다. C&그룹은 2007년 무리한 인수·합병(M&A) 후유증을 겪다 이듬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졌다. 직원들 월급까지 밀릴 정도로 급속도로 무너졌다. 버티다 못한 임 회장은 주요 계열사 매각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C&그룹은 사실상 파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검찰 수사까지 더해졌다. 임 회장은 2010년 10월 대출사기와 횡령, 배임 등 1조원대 경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됐다. 수사 과정에서 진도의 모피코트를 명절선물 등으로 유력 인사들에게 로비했다는 증언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나중에 임 회장은 진도의 본사 부지를 매각하면서 횡령한 혐의도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기업 몰락 검찰 수사
‘굿이라도 해야 하나∼’
 
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사건을 돌려보냈고, 서울고법이 다시 징역 5년을 선고한데 이어 2013년 6월 원심을 확정 받았다. 만기출소가 3개월가량 남은 셈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얼마 전 부상했다. 진원지는 임오그룹. 비자금 의혹이 나오면서다. 이는 진도모피의 저주가 불거진 계기가 됐다.
 
두 주인을 잃은 진도는 또 다른 주인을 맞았다. 임오그룹(임오파트너스)은 2009년 2월 진도를 인수했다. 당시 45억원에 매입해 ‘헐값’논란이 일었다. 추후 80억원을 더 투자했지만 ‘거저먹었다’는 뒷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국내 주방업계 대표주자인 임오그룹은 남대문시장 0.7평 구멍가게로 시작한 임오식 회장이 일궜다. 
 
임 회장은 1970년 맨손으로 주방·가전제품 유통업체인 임오(옛 삼성상회)를 창업해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코렐, 테팔 등 글로벌 주방용품의 국내 판권을 딴 게 발판이 됐다. 수저업체 화인센스, 냉동업체 임오냉동 등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주방과는 거리가 먼 진도도 그중 하나. 진도는 임오그룹 품에서 재무구조가 크게 안정되면서 마침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5년 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그야말로 초상집이 따로 없다. 임 회장이 교도소 담벼락을 걷고 있어서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최근 임 회장의 횡령 혐의를 포착, 그룹 본사와 임 회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임 회장은 2005년부터 회사 매출액을 부풀리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회사에서 근무한 적 없는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급여를 지급한 것처럼 회계장부를 꾸며 회삿돈 1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명의 이전을 통해 그룹 소유 부동산을 빼돌리고 회계자료를 조작해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횡령 사실에 대해 일부 인정했지만 금액엔 차이가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검찰은 지난 10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 15일 법원은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와 수사상황에 비춰 피의자가 방어권 행사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영장을 재청구할 예정이다.

세 가지 에피소드
 
진도는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었다. 여러 번 바뀐 주인들이 하나같이 위기에 처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주란 단어가 그냥 붙은 게 아닌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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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