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대한민국은 지금 ‘사이비 전성시대’

기자·의사·대학 “진짜를 찾아라!”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사이비’ 전성시대다. 기자를 사칭해 취재원을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는 이른바 ‘사이비 기자’는 애교가 된지 오래다. ‘기자’라는 직업이 뭐길래 순진한 가정주부들을 유혹해 돈을 뜯어내고 살림을 차리는가 하면, 이혼을 시키는 등 가정파탄을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의사면허를 대여해 성형외과를 차리고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이 대신 수술을 진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최근에는 사이버 대학을 차려놓고 한의학 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꼬여낸 ‘사이비’ 대학도 나타났다. 1990년대 “짜가(?)가 판친다”던 어느 여가수의 노랫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요즘이다.

소위 지성인, 대한민국 상류층이라고 꼽히는 의사들이 자신의 의사면허를 대여해주는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버 한의대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의사는 ‘면허’ 팔고
학교는 ‘양심’ 팔고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가짜 사이버대학을 차려놓고 미국·캐나다에서 활용 가능한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해주겠다고 속여 등록금 명목의 수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모 외국어학원 원장 최모(5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6월18일 밝혔다.

최씨의 사이비 행각은 지난 2006년 9월에 시작됐다. 최씨는 2006년 9월 ‘한의사 면허 취득하고 성공하기’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해당 카페를 통해 온라인 강의만 들으면 캐나다나 미국에서 인정되는 자연의학의사(NMD) 자격증 시험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고 허위광고했다.


최씨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은 사람은 최근까지 11명에 이른다. 이들은 등록금과 응시료 등의 명목으로 5000여만원을 최씨에게 건넸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이들이 최씨에게 제대로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씨는 코스타리카 서던크리스천대학(SCU)이 개설한 사이버 한의학이라는 과정을 내세우기 위해 그럴 듯하게 한국어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운영했기 때문에 수강생들은 자신이 이 대학의 학생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최씨가 간판으로 사용한 SCU는 실제 코스타리카에 존재하는 대학이지만 한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조사 결과 최씨는 온라인 강의 과정을 이수한 수강생 한 명에게 실제로 시험지를 주고 캐나다 자연의학사 자격시험인 양 시험을 치르도록 했지만 정작 캐나다에서는 같은 시험이 시행되지 않았다.

해외 ‘사이버’ 한의대…알고 보니 ‘사이비’
의사면허 대여 병원 차리고 ‘사이비’ 시술

놀라운 사실은 최씨의 사이트의 수강생 중에는 물리치료사, 스포츠마사지사, 한의사 자격증을 따 캐나다로 이민 가려했던 현직 내과의사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국에서 중의학을 전공한 한 수강생은 최씨의 부탁으로 온라인 강의에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경찰은 이번에 적발된 사이버 대학 이외에도 무인가 교육기관이 난립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불법 의료기관에 의사 면허를 빌려주거나 사이비 성형 시술자를 고용한 ‘타락의사’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돼 사회적 충격을 안겨줬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6월14일 의사 면허를 대여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심모(68)씨 등 의사 8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무면허 성형 시술자를 채용한 혐의로 재일교포출신 의사 박모(45)씨를 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또 의사 면허를 빌려 병원을 개설한 업자 김모(38·여)씨와 서모(56·여)씨, 박씨의 병원에 취업한 불법 시술자 신모(54·여)씨에 대해서는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의사 면허를 대여한 혐의의 심씨 등 8명은 김씨와 서씨에게 의사 면허를 빌려줬고, 이들은 이를 배경 삼아 2002년부터 최근까지 서울과 인천 지역에 병원 5곳을 설립해 운영했다.

현행 의료법 상 의료 면허가 없는 개인이 병원을 설립하면 불법이지만 김씨는 남의 의료 면허로 병원을 차리고 당국의 단속을 피해 2009년 4월부터 10월까지 환자 600여 명을 상대로 피부 미백, 점 빼기, 사마귀 제거 등의 시술을 했다.

성형외과 상담실장 출신인 서씨 역시 인천 등지에 성형외과를 차려놓고 의사를 고용해 20억원 상당의 수입을 챙겼다. 경찰 조사 결과 의사 면허를 빌려준 의사들은 대개 병원의 경영안과 자신의 고령을 이유로 급전이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고, 사례금조로 400~700만원을 받거나 병원의 고용의사로 월급 2000여만원을 준다는 말에 속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뭐길래…
사이비에 속아 가정파탄

그런가 하면 재일교포 의사 박씨는 경기도 부천시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했지만 2008년 세계적인 경기 위기를 맞은 가운데 시술조차 부족해 환자가 줄자 ‘손기술이 좋다’고 소문난 무면허 시술업자 신씨를 영입했다. 신씨 역시 의사 면허가 없었지만 박씨의 병원에서 주름살 제거수술 등을 했다.

사회적 엘리트로 꼽히는 의사들이 이 같은 밑바닥까지 추락한 것과 관련, 경찰 관계자는 “최근 병원 간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의사들조차 돈의 유혹에 빠져 불법의료 관행을 돕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에서는 ‘기자’라는 간판을 이용, 부녀자를 유혹하고 가정파탄을 초래한 ‘사이비 기자’가 붙잡히는 믿기 힘든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이 사이비 기자는 경상도 지역에서도 이 같은 말썽을 부려 쇠고랑을 차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주지 못하고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다시 한번 ‘한탕’을 노린 것으로 드러났다.

모 주간지 순천지역취재본부장인 김모(46)씨는 지난해 1월부터 해당 언론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던 김씨는 기자 본연의 자세는 망각한 채 다른 부업(?)에 열을 올렸다.

경상도 지역에서 기자 신분을 내세워 여성들을 유혹한 뒤 수천만원의 뒷돈을 챙긴 바 있던 그는 순천지역에서 언론사에 입사하자마자 작업 대상을 물색했다.

김씨의 눈에 띈 것은 돈 많은 직장여성 A(53·여)씨. 연봉 5000만원이 넘는 A씨는 고학력에 단란한 가정까지 꾸리고 있었지만 김씨의 달콤한 거짓말에 너무 쉽게 넘어갔다. 김씨는 A씨에게 자신을 “여수 모 방송국 PD로 근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일본 동경대학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파일럿 출신으로 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청와대 출입기자였다”는 식의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했다.

‘용감한 시민상’ 받은 의사도 가짜 드러나
“기자가 뭐길래” 주부 꾀어 몸 뺏고 돈 뜯고

기자라는 전문직에 수려한 외모와 말솜씨까지 겸비한 김씨 앞에 A씨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간판만 걸린 상조회사에 투자비 명목으로 2000여만원을 김씨 손에 쥐어주고 따로 살림까지 차렸다가 이를 알게 된 남편에게 이혼까지 당한 것.

하지만 김씨의 말도 안되는 유혹에 넘어간 여성은 A씨 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지역에서 A씨를 포함해 3명의 여성이 김씨에게 수천만원을 뜯기고 가정파탄에 이르렀다.

김씨는 이들 중 2명을 한꺼번에 만나는 ‘양다리’도 서슴지 않았고, 김씨의 번지르르한 거짓말에 넘어오는 남성들도 있었다. B(52)씨 등 남성 2명도 상조회사 투자명목으로 2000여만원을 뜯겼고, 김씨는 지난 해 1월부터 지난 3월 중순까지 1년 2개월 간 5명에게 600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부녀자를 상대로 사기를 쳐가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긴 김씨는 간판만 걸려 있는 상조회사에 고용한 장애인 직원 C(32)씨에게는 1년여 간 급여를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결국 김씨에 의해 가정이 파탄난 여성들은 경찰에 김씨를 신고했고, 김씨의 추잡한 범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런가 하면 지난 6월24일 서울에서는 절도범을 잡아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의사로 언론에 보도됐던 사람이 알고 보니 면허가 없는 ‘사이비 의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이날 허위 이력서로 병원에 취업한 뒤 환자를 불법 치료해 온 나모(35)씨를 보검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

절도범 잡은 ‘용감한 의사?’
면허 없는 ‘사이비’

경찰 조사 결과 의사 자격증이 없는 나씨는 지난해 11월27일 서울 동작구 모 피부과병원에 허위 경력을 기재한 이력서로 취업한 뒤 4개월간 50여명의 환자를 진료해왔다. 해당 사항에 대해 조사를 벌이던 경찰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나씨는 지난 2004년 6월2일 새벽 2시께 서울 신촌에서 절도범을 검거해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바 있으며, 그 당시에도 자신을 의사로 소개해 언론에 보도된 것.

나씨는 이 언론 보도를 핑계 삼아 병원에서 자격증을 제출하라고 할 때마다 “인터넷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의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둘러댄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경찰은 의사 면허를 확인하지 않고 채용한 병원장 등 2명도 붙잡아 조사 중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