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난 24일 서양화가 이유정 작가의 '믿을 수 없는 화자'전이 막을 내렸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 공간 안팎의 사실과 허구의 관계에 초점을 뒀다. 작가는 과거의 기억이 뒤섞인 사물들과 그에 관한 상상을 마치 동화 같은 풍경으로 그려냈다.
지난 18일 갤러리도스는 서양화가 이유정을 초대해 개인전을 열었다. '믿을 수 없는 화자'전은 관객의 호응을 얻고 같은 달 24일 끝을 맺었다. 갤러리도스 최주연 큐레이터는 "중요하진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간직한 사물들이 소중한 물건으로 변해 작가의 작업에 중요한 소재가 됐다"라며 "인공의 사물들이 가상의 회화공간 속에서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라고 평했다.
형형색색 구슬
이 작가의 작업노트에는 '믿을 수 없는 화자'전을 설명한 구절이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사물과 기억에 관한 풍경화'라고 썼다. 다섯 폭의 캔버스를 파노라마로 길게 연결하면서 완성해나간 사물집적 연작이라고 정의했다. 작품 소재는 사물인데 정말 중요해서가 아니라 버리지 않고 간직해서 소중하게 된 사물이 그려진다. 또 그 사물이 지닌 시간의 기억이 그림에 쌓여 겹쳐진다.
'오드라덱'이란 이름의 사물은 끝말잇기 하듯 하나씩 보태지며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한다. 이 작가는 "사연 있는 물건이 떠오르기도 하고 쓰임의 연관성이나 단지 조형적인 어울림으로 선택한 것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유정의 작품에는 수많은 구슬이 등장한다. 형형색색의 구슬은 이 작가의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이 작가는 사물을 그리다가 다음 그릴 것이 연상되지 않을 때 구슬을 붙였다고 한다. 그렇게 구슬을 넣다보면 어느새 새롭고 적확한 사물이 떠올라 남은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물은 서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구슬, 또 다른 사물과 조합돼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작가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는 대개 조화롭지만 그것이 놓인 상태는 종종 긴장과 갈등을 부르고 결과적으로 풍경의 인상이 된다"라고 풀이했다.
갤러리도스 '믿을 수 없는 화자' 전시
회화 공간 안팎 사실과 허구 관계 초점
책, 옷핀, 전화기, 종이컵, 구두 등 언뜻 보면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는 조합이 한 곳에 놓였다. 작가는 이것들을 사물이기 이전에 '정보'라고 봤다. 정보에 대한 이 작가의 독특한 견해는 이랬다.
정보 과잉의 홍수 속에 우리 사회는 아귀처럼 더 많은 정보를 갈구한다. 꾸역꾸역 꼬리를 물고 자라나는 강박의 그물이 정보를 길어 올렸다. 이 정보는 곧 사물이다. 건져 올린 사물들은 이 작가의 손에서 회화적 공간으로 재구성됐다. 이 작가는 자신의 회화를 전자매체시대의 주관적 풍경이라고 서술했다.
회화 속 물건들은 조화롭고 신비로운 분위기지만 내적 갈등이 숨어 있다. 그는 모순적이고 불안한 공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 자신의 기억은 선택적으로 특정 정보가 부각되거나 축소된다. 그것들이 모여 전체가 되면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게 나타나는 왜곡 효과가 생긴다. 그는 기억의 왜곡을 화폭으로 옮겨 분산 또는 확대해 그렸다.
이 작가는 "나는 이 번지르르한 거짓 풍경이 한 시대를 목도한 증인의 진술처럼 생생하게 보이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폐허처럼 무너져버린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 드러난 사물들이 선명한 자태로 반짝이도록 진심을 다했다"라고 덧붙였다.
기묘한 정물화
이 작가의 그림 안에는 동물과 반인반수, 신화 속 천사가 기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 그는 각 개별 주체가 부각되도록 세부묘사에 치중했다. 풍경화보다는 정물화에 가까운 터치다. 또 소녀의 모습을 한 '주인공'이 자주 등장하는데 통속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초현실적인 무드가 묻어나도록 공을 들인 인상이 강하다. 화려한 색상에도 각 사물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 건 그림이 가진 미덕이다.
[이유정 작가는?]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 학사 및 석사 졸업
▲개인전 관훈갤러리(1999) 갤러리 아트사이드(2001) 인사아트센터(2006·2007) 갤러리 도스 등 5회
▲단체전 노암갤러리(2004) 가나아트스페이스(2006) 전북도립미술관(2007) 광주신세계갤러리(2009) 아람미술관(2010)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