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보는 데 얼마 들까?

2015 복채 대해부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지나면 점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평소 점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토정비결, 사주팔자, 궁합 등을 알아보기 위해 점집을 찾곤 한다. 길거리의 노점 점집을 비롯해 강남대로변의 빌딩에 위치한 점집,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점집까지 편의점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점집이다. 그렇다면 상담의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인 복채는 얼마가 적당할까.

음력 연초가 되면 점집은 호황이 이룬다. 점술가로부터 토정비결, 사주팔자 등을 본 후 다가올 한 해를 미리 예견해보고 혹시 모를 사고나 질병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던 자녀 문제, 직장 내 갈등, 직업 선택, 결혼 문제, 건강 걱정, 사업 문제 등의 근심거리를 점술가에게 토로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안 받을 수 있다.

복채, 기본 5만원

지난 2월24일 점집을 찾았다는 남숙자(56·주부)씨는 “매년 연초가 되면 점집을 찾곤 한다”며 “올해로 33살이 된 아들이 여자친구가 없어 걱정이었는데 내년에 결혼운이 있다고 하여 한시름 덜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3인 가족이라 작년까지는 복채로 3만원씩 총 9만원을 냈는데, 올해는 15만원을 냈다”고 설명했다. 

‘복(福)’을 채간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복채는 점술가에게 상담의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을 말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쌀, 닭 등 현물에 준하는 농축수산물로 복채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현금으로 복채를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복채는 얼마가 가장 적당한 것일까. 기자가 직접 점집을 찾아 복채 가격을 알아봤다.

가장 먼저 강남역 주변의 노점 타로카드 점집을 찾았다. 질문을 던지자 점술가는 테이블 위에 타로카드를 나열한 후 7장을 뽑으라고 말한다. 질문에 대한 점괘를 들은 후 추가 질문을 하자 이번에는 타로카드 3장을 더 뽑으란다. 총 네 가지 질문을 던졌고 뽑은 타로카드를 해석함으로써 점괘를 들을 수 있었다. 복채가 얼마냐고 묻자 1만원이란다. 가격표에 적힌 ‘타로카드 5000원’에 대해 언급하자 ‘디테일 1만원’이라고 적힌 문구를 가리킨다. 가격표에는 종합운, 궁합, 신년운세, 나의성향, 관상의 경우 3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변인들로부터 소개 받은 소위 ‘용하다’는 점술가를 만나기 위해 새벽 5시 이태원 경리단길을 찾았다. 사전 현장 예약을 해야만 정오부터 순차적으로 상담이 가능한 곳이다. 두 번째 차례였기에 오후 1시 다시 점집을 방문한 기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무속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한참동안 기자의 얼굴을 본 무속인이 입을 열었다. 손님에게서 투영되는 영상을 통해 점괘를 말한다는 이 점술가는 20여분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이후 심도 있는 대화로 남은 40분을 채웠다. 복채로 7만원을 지불했다.  

유명 역술인으로 꼽히는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유영대) 회장을 찾아갔다. 무속인 점술가와는 달리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생년, 생월, 생일, 생시, 성명 등을 불러주자 백지에 한자를 차곡차곡 적어 나갔다. 이후 기자의 사주팔자에 대해 요목조목 설명해주었다. 이어 관상, 수상(손금), 성명의 역술을 풀이해줬다. 사주팔자 풀이만으로는 개인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얼마를 내야 하냐고 묻자 합산 5만원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및 SNS을 통해 점괘를 봐준다는 강준현(32)씨를 영등포역 부근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났다. 휴대전화 인터넷 검색창을 띄워 만세력에 기자의 기본정보를 입력한 후 사주팔자에 대해 풀이해줬다. 말솜씨가 유창하지는 않았으나 백운산 역술가의 풀이와 엇비슷하게 맞아 떨어졌다. 30여분간 이어진 점괘의 복채는 1만원이었다.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복채의 규모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지역 및 인지도에 따라 금액은 다소 차이가 났으나 노점 점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점집에서는 평균 복채 5만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별 평균 복채를 살펴본 결과 서울·경기·인천 지역은 5만원, 지방은 3만원에 거래됐다.

골머리 근심거리…점술가 만나 해소
지역·인지도 따라 가격 '천차만별'

소위 ‘용하다’고 소문난 점술가와 영매한 지 2년이 되지 않은 무속인의 경우에는 10만원 이상의 복채를 지불해야 한다. 특히 무속인이 많이 밀집해 있는 경기도 동두천, 포천, 연천 지역과 충청북도 제천, 경상북도 영주의 경우에는 대부분 복채가 1만원이며, 최대 3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요시사> 998호 ‘일요초대석’에 소개된 점술가 정호근의 복채는 10만원으로 조사됐다. 노점 점집의 경우에는 대게 가격이 명시돼 있으며 상담 항목에 따라 5000원에서 3만원에 거래된다. 정확한 복채가 궁금할 때는 사전 예약 시 복채 가격을 물어보면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경신연합회 진선(최수진) 회장은 “점을 본다는 것은 유형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는 별개의 개념이다”며 “협회에서 회원들에게 권장하는 복채 금액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5만원에 거래되지만 복채는 점을 보려는 사람이 성의껏 건네는 것이므로 상담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복채는 성의껏

한국무속신문사에 따르면 약 10여년 전 부산 온천장의 문수보살이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점괘를 봐준 대가로 1700만원의 복채를 받아 국내 최고가 복채 금액으로 조사됐다. 국내 유명 역술인도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둔 한 후보자의 점괘를 봐준 대가로 3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운산 회장은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은 점집을 찾지 않는 법이다”며 “통산적으로 5만원에 거래되지만 점괘가 마음에 들 때는 백단위의 금액을 건네는 손님도 있다”고 설명한다. 덧붙여 “간혹 현재 상황도 힘든데 점괘 결과가 더 최악인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 복채를 받는 대신에 차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건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에서 그려진 점술가는 점괘를 설명하는 도중 입을 다문다. 복채를 달라는 의미다. 이때마다 지폐 한 장씩을 건네면 보다 상세한 점괘를 풀이해 준다. 하지만 실제로 점술가에게 확인해 본 결과 그런 점술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용 연출 장면인 것이다. 그렇다면 복채는 어느 시점에 지불하는 것일까.  

인천 계산동에 위치한 칠성사의 변성은 무속인은 “상담 전, 중, 후 아무 때나 복채를 지불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며 “상담자가 점괘의 만족도와 복을 채가려는 마음에 따라 복채 지불액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상담이 끝난 후 복채를 지불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대한역술인협회, 대한경신연합회, 한국무속협동조합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점술가는 역술인 30만명, 무속인 23만명으로, 총 53만명(노점 점술가 제외)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무속인 점집을 찾는 경우 복채 이외에도 기도, 부적, 굿 등의 추가 비용이 소요되기도 한다. 기도 비용은 30만∼50만원, 복사본 부적을 제외한 부적 비용은 30만∼80만원, 굿 비용으로는 350만∼1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기점, 사기굿 많아

부적은 액운을 퇴치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제작된다. 매년 고액 부적에 의한 사기 사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지난해 2월에는 아들의 앞날이 잘 풀리려면 부적을 써야한다는 명목으로 555만5000원짜리 부적을 써준 무속인이 사기 혐의로 붙잡혔다.

이 무속인은 지난 2008년 2월에도 남편이 죽을 지도 모른다고 위협해 1999만9990원의 부적을 써준 혐의를 받은 바 있다. 부산지검은 “무속행위를 할 의도가 없고, 효과도 믿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속여 부정한 이익을 취할 경우에는 사기죄가 성립하지만, 부적을 쓴 뒤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속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무속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보통 수도권 5만원, 지방 3만원
유명인, 일반인보다 비싸게 받아


굿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길흉화복 등 인간의 운명을 조절해 달라고 빌기 위해 이뤄진다. 굿의 형태는 이용 목적에 따라 다양하나 대표적으로 조상굿, 산신굿, 서낭굿, 병굿(우환굿), 재수굿(운수굿) 등을 들 수 있다.

지난해 9월에는 30대 여성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합격 기원 재수굿을 500만원 들여 벌였다가 시험에 불합격하자 사기죄로 무속인을 신고했으나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사례가 있다. 재판부는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얻기 위해 굿을 하는 경우이므로 사기라고 보기 힘들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2월에는 모 건설업체 사장이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무속인에게 공사 도중 사고가 나지 않도록 5000만원짜리 재수굿을 의뢰했다.

실제로 공사 중 인부 사고가 나지 않자 타운하우스 관련 신사업과 관련 1억5000만원의 재수굿까지 의뢰했다. 하지만 이 타운하우스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되고 말자 뒤늦게 사기 굿임을 깨닫고 사기죄로 무속인을 신고했다. 그동안 건설업체 사장이 무속인에게 건넨 굿 의뢰 액수는 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TV 방송에 여러 차례 소개되며 유명세를 탄 강남의 한 무속인은 지난해 2월 한 증권전문가로부터 30여 차례에 걸쳐 17여억원의 굿비를 챙겼다.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한 증권전문가가 사업 번창을 목적으로 재수굿을 의뢰해 온 것이다. 증권전문가는 굿비를 마련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주식 투자를 명목으로 투자금을 받아 개인용도로 사용했으며 사기 혐의가 인정돼 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한국무속인협동조합 김준옥 조합장은 “무속인의 말을 무시하기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신기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속인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무리한 금액을 요구할 때는 과감하게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위협적인 말투로 누군가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공갈 협박하는 무속인은 대부분 사기 무속인이다”며 “점을 보러 갈 때는 주변 지인들이 추천하는 점술가를 찾아가는 게 사기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억 단위 굿

한편 최근 영아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지문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수상학(손금) 중 하나인 지문점을 통해 타고난 성격과 성품, 적성을 알 수 있어 자녀의 적성 교육에 참고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지문점은 정기문(감성형), 반기문(창의형), 쌍기문(조정형), 두형문(지도자형), 호형문(안전형)의 다섯 가지로 구분되며 각 손가락별로 지문 분석을 통해 보다 상세한 점괘를 알 수 있다.  

3세 아들을 둔 허선영(32·직장인)씨는 “아들의 지문은 호형문 형태로 사무 능력과 관리 능력에 뛰어나며 안정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말해주더라”며 “공무원, 교사 등 책상에 앉아 서무 관련 업종으로 나아갈 것을 추천 받았다”고 말했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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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