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⑳ 빈곤층이었던 사무라이

중급 무사도 생활고 시달렸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일본 역사에 있어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한 나라가 무려 300여 개의 작은 독립된 세력으로 나뉘어져, 130여 년 동안 서로를 침략하고 침략당하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는 시기였다.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통하는 무법천지의 세상이었다. 이때를 흔히 피의 역사라고 한다. 130여 년 동안 지속된 크고 작은 전쟁으로 날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니 피로 얼룩진 역사라고 할만도 했을 것이다.

계속된 전쟁

계속되는 전쟁으로, 시체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그런 사회 환경이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이곳저곳에서 진동했고, 그로 인해 많은 질병도 발생했다. 한 차례 전쟁이 끝나면 목 잘려져 나간 시체가 너무 많아 묻지도 못하고 들판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이 어두운 시기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굶어 죽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겨울이면 얼어 죽는 사람 또한 세지 못할 지경이었다. 계속되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사회 기반 자체가 혼란스러워 서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전쟁이 있을 때는 전쟁으로 피해를 보고, 전쟁이 없을 때는 전쟁 준비로 또 다른 어려운 생활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겨울이면 바람막이조차도 되지 못하는 움막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웅크리고 자고, 춘궁기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살아야 했다.

지배 계급이었던 사무라이들조차도 상위 30퍼센트만이 기본 생활을 유지 할 수 있었고, 나머지 70퍼센트는 절대 빈곤 속에서 살았다. 1000석의 영지를 가진 상급 무사가 되어야 적자 없는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300석의 영지를 가진 중급 무사조차 적자 생활을 면할 수 없었다. 이들의 생활이 이렇게 어려웠던 것은 군역 규정 때문이었다.

쇼군에게 영지를 하사받은 영주는 그 영지에 해당하는 만큼의 군역을 부담해야 했고, 부하 사무라이들은 또 영주의 군역을 나누어 부담해야 했다. 전쟁이 났을 때 영주를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영주로부터 영지를 하사받을 때는 단지 전쟁에 나가 영주와 영지만을 지키라는 것만은 아니었다.

하사받는 영지의 크기에 따라 정해진 규정이 있었다. 수확물 중 얼마는 영주에게 세금으로 바치고, 전쟁이 나면 몇 명의 무사와 말 몇 필, 그리고 짐꾼 몇 명을 데리고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는 규정 아래 영지를 하사받는 것이었다.

300석의 영지를 받는 중급 무사는 자신이 탈 말과 하급 무사 4명에 짐꾼 3명을 대동하고 전투에 참여하여야만 했다. 따라서 평소에도 말 한 필과 하급 무사 4명, 그리고 종 3명을 유지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만성적인 적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암흑시대, 전국시대
굶지 않으려면 이웃 침략해야


중급 무사가 적자 생활을 면하려고 하급 무사 4명 대신 2명을, 종 3명 대신 2명을 쓰면 적자 생활은 면할 수 있었겠으나, 이 또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용하는 숫자를 규정으로 정해 놓고, 영지를 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정을 어길 수는 없는 것이었다. 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 규정보다 적은 무사나 짐꾼을 부하로 둔다는 것은 바로 영주와 약속을 어기는 것이므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이 가난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사회 구조상 피할 수 없는 제도 때문이었다. 만성 적자를 면해 보려고, 많은 사무라이들이 천민층인 상공인들에게 부탁하여 우산을 만들고, 나막신을 만들고, 새를 키우고, 금붕어를 키워 보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적자는 면할 수 없었다.

많은 사무라이들이 춘궁기면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갑옷과 투구는 물론 심지어 칼도 내다 팔았다. 자신의 굶주림이야 참을 수 있었겠지만, 어린 자식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우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어 목숨 같은 무기를 내다 팔았던 것이다.

비록 갑옷 없이 다음 싸움터에 나갈지언정, 굶주림에 우는 어린 자식을 차마 볼 수 없어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영주도 영주 나름으로, 큰 영지를 가진 영주도 있었고, 작은 영지를 가진 영주도 있었다. 대체로 만석 이상의 영지를 가지면, 영주라고 하여 성이 달린 큰집을 짓고 살았다.

만석 영지를 가진 영주 밑에 과연 1000석 영지를 가진 가신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10명 이상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만석 영주 밑에 과연 백성 몇 명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위 극소수만이 적자 없는 기본 생활을 유지하고 살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배 계급인 사무라이들조차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다면, 평민들의 생활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계속되는 전쟁에 직접, 간접 참여하게 됨으로서 발생하는 어려움에,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도 하루의 큰일로 오늘 날 일반인들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처참한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상위 30퍼센트에 속하는 사무라이들도 마냥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당대에는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적어도 3~4명이나 되는 아들 세대에 가서는, 하사받은 땅만으로는 기본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불안 속에서 살았다. 앞서 여러 차례 말했듯이 당시 사무라이들의 직책과 영지는 대물림되는 것이었다.

영주가 가신들에게 대를 이어 가며 보다 확실한 충성을 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신의 처지에서는 당대에 충분한 영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식 세대에 가서는 살림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러한 불안을 해결하려면 전쟁에 나가 공을 세워야만 했다.

공을 세워 보다 많은 영지를 하사받아 보다 큰 영지를 물려주어야만 했고, 영주는 이러한 가신들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이웃 영주를 침략하여 보다 많은 영지를 확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웃한 영주끼리 끊임없이 침략하고 침략당하는 주된 까닭이었다.

탐욕의 역사


보다 큰 영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웃한 영주를 침략하고, 갖고 있는 영지나마 빼앗기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고 맞서야 하는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보다 많은 영지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일본을 통일한 후 평화가 찾아온 일본에서는 늘어난 사무라이들에게 나누어 줄 땅을 더 이상 확보할 수 없게 되자, 그 대안으로 조선을 침략한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상당한 허풍쟁이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가신들이 보다 열심히 싸움하게 하기 위한 독려책으로 또는 적군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상당한 영지를 약속하였다고 한다. “당신에게는 영지 5만석”을, “당신에게는 영지 10만석”을, 그리고 “당신에게는 영지 20만석”을 등등 통 큰(?) 약속을 남발했지만, 일본을 통일하고 나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자, 조선 침략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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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