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⑭목숨 구걸한 사무라이

부하들에겐 '옥쇄 명령' 고위급들은 '목숨 구걸'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1937년에는 관동군 참모장으로 있으면서 중국을 침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초창기였던 1940년에는 육군대신으로 임명되어 일본의 세계대전 참여를 주도하였다.

육군대신으로 당시 내각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도조 히데키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동맹을 주도하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지배하고 있던 동남아시아를 침략함으로써, 기존의 전쟁을 영국과 미국을 포함하는 세계대전으로 확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41년 10월18일 총리에 임명된 그는 이례적으로 총리이면서 동시에 내무대신, 육군대신, 그리고 전군을 지휘하는 참모총장 등을 겸임하였다. 그야말로 일본의 핵심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핵심 권력을 장악한 그는 일본 전체를 군사독재 체제로 이끌어 갔다.

총리가 된지 채 두 달도 안 된 1941년 12월7일에 진주만 공습을 명령해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1944년에 그 전쟁의 패전 책임을 지고 총리대신에서 물러났다.

목숨 구걸

한마디로 그는 전쟁의 핵심인물이었고, 전쟁의 원흉이었다. 특히 그는 포로로 잡히는 치욕을 당하지 말고, 사무라이의 후예답게 명예롭게 죽으라는 전진훈과 와전옥쇄의 령을 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도조 히데키야말로 현대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모범이 되었어야 할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일본이 패전하고 약 한 달 후인 1945년 9월 권총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A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그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난 때가 1944년이고, 자살을 시도한 때는 1945년 9월11일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도조 히데키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이 명령한 진주만 공격이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졌고, 우세했던 전세는 어느덧 역전되어 태평양 전선 곳곳에서 미군에 격퇴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가 미군에 점령당하고, 그곳에서 발진한 미군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폭격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전세는 완전히 절망스런 상황이 되었고, 이제는 자신도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패색이 짙어져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패전의 책임을 지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죽는 것이 책임질 줄 아는 정치 지도자요, 그렇게 죽는 것이 자기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사무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의 소유자라면, 그래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지도자였다면, 그때 죽는 것이 그의 결정과 명령으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미련이 있었는지 그는 죽지 않았다. 1945년 9월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자살을 시도했다. 그것도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나 이마저 실패하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진정 그가 그토록 주장했던 사무라이 정신의 소유자라면, 왜 할복이 아닌 권총 자살을 시도했으며, 총은 어떻게 쏘았기에 죽지도 못하고 부상만 입었느냐 하는 점이다. 당시의 관습대로라면 도조 히데키는 집에, 그것도 그가 거처하는 안방에 일본도를 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드러난 사무라이들의 비겁한 실체
자살할 용기도 없었던 사무라이


큰칼 작은칼을 나란히 병풍 앞 받침대에 올려놓고, 그 앞에 놓인 책상에 앉아 대부분의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을 결심했을 때부터 자살을 생각했을 것이고, 언제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일 년여 동안 야인으로 살면서, 매일 매일 이어지는 패전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할복하여 죽을까, 총을 쏴 죽을까, 아니면 독약을 먹고 죽을까 등등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방에 비치되어 있는 일본도를 보면서, 그가 그토록 주창하던 사무라이 정신을 생각하면서, 그는 마땅히 할복자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할복자살은 엄청난 고통이 오랫동안 뒤따른다는 것도 가늠해 봤을 것이다.

위는 치명적인 장기가 아니기 때문에, 배를 갈라서는 바로 죽지 못하고, 상당한 출혈이 있고 나서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할복을 하고도 완전히 죽을 때까지는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그는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

피가 솟구치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형극의 고통도 생각했을 것이다. 오니시 다키지로 중장이 할복 후 무려 16시간 동안 형극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죽었다는 소식도 그에게 할복에 대한 엄청난 공포심을 주었을 것이다. 끝내 그는 고통이 적은 권총 자살을 택했다.

그가 자살을 시도한 날짜는 9월11일이다. 일본이 항복한 지 약 한 달이 지나서 이며, 도쿄만에 정박한 미군 전함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정식으로 서명을 하고 9일이 지난 때였다. 미군 체포조가 집으로 와서 체포하겠다는 통고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자살을 시도한다. 칼이 아닌 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면서 그것도 머리가 아닌 심장을 향해 발사했지만 그마저도 빗나가면서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이 점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오니시 다키지로 중장 같은 사람도 패전의 책임을 통감하며 할복자살했고, 도조 히데키에게는 패전의 책임을 추궁하는 비난이 높아지고 심지어 암살설까지 대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미련이 있었기에 핵심 중에 핵심 전범이 되는 자가, 그것도 부하들에게는 사무라이의 후예답게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라고 명령까지 내린 자가 항복을 하고도 한 달 이상이나 살아 있었으며, 미군 체포조가 도착하여 체포하겠다는 통지를 받고서야 비로소 자살을 시도하면서, 그것도 자살을 하겠다는 자가 어째서 머리가 아닌 심장을 향하여 총을 쏘았으며, 그마저도 어째서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고 부상만 입었다는 것인가?

비겁함의 전형

총으로 심장을 쏴 자살하겠다고 결정했을 때는 틀림없이 심장에 총구를 대거나 최소한 심장을 향하고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덜컥 겁이나 총구를 다른 곳으로 돌린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그러면서 총알이 심장을 제대로 관통하지 못하고 비켜 간 것으로 믿어진다. 한마디로 도조 히데키는 겁쟁이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비굴할 정도로…….

죽음이 두려워 미군 체포조가 올 때까지 살아 있었고, 사무라이답게 할복할 용기가 없어서, 그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어서, 칼이 아닌 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였으며, 그마저도 머리가 아닌 심장을 쏘기로 했지만 결국엔 심장에조차 총을 제대로 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겁쟁이 도조 히데키는 자신이 내린 전진훈과는 반대로 명예롭게 죽지 못하고 치욕스럽게 포로로 잡혀 재판장에 섰으며, 부하들에게 권유한 와전옥쇄도 지키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교수형에 처해진 것이다. 그의 비굴한 행동에 심증을 더해 주는 작태는 바로 재판받는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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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