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콧수염 주방장 그림이 상징인 주방용품 업체 셰프라인. 최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업체가 일간지에 셰프라인 광고를 내고 프라이팬을 사기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셰프라인 브랜드를 내세워 입금액은 자신들이 꿀꺽 삼켰다. 사기는 엉뚱한 곳에서 쳤는데, 책임은 셰프라인이 지게 된 것이다.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면서 36년 전통의 주방기구 명가 ‘셰프라인’의 자존심이 구겨지게 됐다.
지난 8월 추석을 앞두고 A씨는 한 일간지 전면에 실린 광고를 보고 셰프라인 프라이팬 4종세트를 구입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주문한 프라이팬은 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A씨는 주문한 곳에 전화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광고에 적혀있던 홈페이지조차 폐쇄됐다. 카드사에 전화하니 경찰서에 신고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입금액만 ‘꿀꺽’
지난달부터 신문광고를 통해 셰프라인 프라이팬을 구입한 피해상담이 쏟아졌다. 신문광고를 보고 셰프라인 프라이팬 세트를 주문한 뒤 물품이 배송되지 않고 사업자와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피해 사례가 급증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접수된 (주)나이스전자를 통해 셰프라인 프라이팬을 구입한 소비자상담은 총 109건으로 집계됐다. 배송이 오지 않자 환불을 요구하는 문의가 주를 이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8월 말 추석명절을 앞두고 주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 8월 22일 27면 일간지에 셰프라인 프라이팬에 대한 광고가 전면에 떴다. 광고는 명절을 겨냥했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초특가 기획전’이라고 표현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나이스전자는 8월 모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고 셰프라인 프라이팬 4종 풀세트(초코와인 프라이팬28cm, 초코와인 프라이팬20cm, 초코와인 파티그릴 28cm, 초코와인 궁중팬 28cm)를 3만9800원에 판매했다. 추석명절 기획전을 내세워 ‘놓칠 수 없는 단 한 번의 기회’라며 구입을 유도했다. 게다가 4종 풀세트를 구입한 고객에게 제주 셰프라인월드 무료입장권 2매를 증정한다고 했다. 제주 셰프라인월드는 국내 최초 주방박물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입장권은 1인당(성인 기준) 8000원이다.
광고 하단에는 농협 입금계좌가 안내돼 있었다. 나이스전자로 보내지는 계좌였다. 광고에는 제품과 브랜드명 셰프라인을 강조해놓고, 입금액은 자신들에게 들어오게 만들었다. 마치 셰프라인이 광고한 것처럼 꼼수를 부린 것이다. 지금까지 약 1400건의 주문이 들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콧수염 주방장 심볼로 알려진 셰프라인은 프라이팬의 다이아몬드 5중 코팅 기술 선두 주자로 디자인과 기능이 입증된 최고급 주방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국내 주방용품업체 중 드물게 FDA 인증까지 받아 위생과 안전성도 검증받았다. 소비자들이 물품을 주문하고도 의심할 수 없었던 이유다.
신문광고 보고…사기 피해자들 속출
싸길래 세트 주문했는데 감감무소식
나이스전자에 전화 연결을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고객님 죄송합니다. 물건을 배송할 수 없어 환불 및 취소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라는 자동응답기 목소리만 돌아왔다. 홈페이지 또한 열리지 않았다.
나이스전자는 통신판매업 미신고 사업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한국소비자원은 관계기관에 위법사실을 통보할 예정이다. 나이스전자가 환불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신용카드 할부로 20만원 이상 결제한 소비자는 카드회사로부터 할부금 납부를 면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신용카드 일시불 또는 현금으로 결제한 소비자는 피해보상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본사인 셰프라인이 9월 중순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다. 사기 피해자는 속출하는데, 책임은 셰프라인이 모두 떠안게 된 것이다.
셰프라인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만 제품에 대한 책임은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셰프라인 관계자는 “우리로서도 황당했다”며 “나이스전자라는 곳에서 8월에 전면광고를 내서 판매를 했고, 우리가 해당 광고를 알게 된 시점은 9월 중순”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나이스전자를 대상으로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이 관계자는 “어찌됐든 우리 회사 상품으로 인해 일어났기 때문에 환불은 못해주더라도 고객이 교환이나 A/S문제를 요구하면 바로 처리해 드릴 것”이라며 “10월 말이나 11월 쯤 소송절차가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최대한 고객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하겠다”라고 전했다.
구겨진 자존심
한국소비자원은 통신판매로 구입하는 경우 사업자의 통신판매업 신고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20만원 이상은 신용카드 할부로 결제할 것을 당부했다. 소비자단체 한 관계자는 “신문광고를 통해 사기를 본 피해사례는 이전에도 파다했다”며 “우선 소비자가 신문광고를 보고 물건을 구입할 경우 사업자의 통신판매업 신고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겠지만, 언론사 역시 이러한 광고를 내는 업체에 대해 확인하고 광고를 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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