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한가위에는 전국 각지로 흩어졌던 친지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자연스레 정치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도 오가며 중지가 모인다. 이때 형성된 한가위 여론은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때문에 출렁이는 여론의 파도 위에 떠 있는 정치인에게 한가위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다. 한가위 민심의 호평을 얻느냐 아니면 혹평을 얻느냐에 따라 정치적으로 도약할 수도,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잠룡들에게 한가위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미래권력을 꿈꾸는 ‘빅5’의 한가위 비책을 들여다봤다.
박근혜정권이 초·중반에 들어선 상황에서 차기 대선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권력의 속성상 대권잠룡들의 행보 하나하나는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마찬가지로 전국 각지로 흩어졌던 친지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한가위에도 대권잠룡들의 행보는 주요 관심거리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전망이다.
뜨거운 김무성·박원순
씁쓸한 정몽준·안철수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5~29일까지 전국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17.6%)로 나타났다.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16.7%),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15.3%),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9.7%), 김문수 전 경기지사(7.8%),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7.0%)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중 정 전 의원은 6·4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패하며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고 정치일선에서 씁쓸히 퇴장했다(조사방식 : 유·무선 병행 전화면접 및 자동응답전화 방식,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서 ±2.0%P).
현재를 기준으로 사실상 가장 유력한 대권잠룡 ‘빅5(김무성·박원순·문재인·김문수·안철수)’ 가운데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은 김무성 대표다. 7·14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 핵심 서청원 의원을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대표로 선출된 그는 미니총선급 규모로 열린 7·30재보선에서도 새누리당의 압승을 견인하며 순식간에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치고 나갔다.
여야를 포함해 소위 가장 잘 나가는 김 대표의 최근 행보는 기득권과 특권의식을 포기하겠다는 ‘보수혁신’과 소외된 계층을 살피고 다독이는 ‘민생정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지난달 22일 당 연찬회에서 보수혁신의 깃발을 들어 올린 이후 부산 수해지역, 여러 지역 시장,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 등을 찾는 민생현장 방문을 부쩍 강화했다. 이와 같은 행보는 한가위 연휴에도 쉬지 않고 이어질 전망이다.
‘빅5’, 한가위 민심 잡기 위한 각양각색 민생행보
대신 정국의 최대 현안인 세월호특별법 논란에 대해선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일임하고 한 발 물러서 방관하고 있는 입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민생행보 도중 취재진에게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민생현장 챙기기에 주력하겠다”면서도 “(세월호특별법 논란과 관련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세월호특별법 논란으로 국회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이를 외면하고 국회 밖 민생행보에 주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집권여당의 대표로 국회운영에 무한책임이 있는 김 대표가 ‘자기정치에만 몰두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꼬여 있는 매듭을 풀어 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세월호에서 비켜선 김 대표의 민생행보가 한가위 민심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권의 또 다른 유력 대권잠룡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도지사 퇴임을 앞두고, 재보선을 통한 국회 재입성이나 전당대회 출마를 요구하는 주변의 강력한 요청을 뿌리치고 민생 속에서 차분히 차기 대권도전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낮은 자세로 민생현장을 파고들고 있다.
김 지사의 한 측근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김 지사는 도지사 퇴임 후, 소록도·꽃동네 자원봉사와 택시운전을 통한 민생탐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며 “다른 이들처럼 민심탐방이 아니라 민심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한가위를 목전에 두고 대구로 지역 택시운전자격 취득을 위해 내려간 김 지사는 한가위 연휴를 포함해 한 달가량 대구민심을 살핀 뒤 광주로 이동해 다시 한 달가량 택시운전 등으로 민심을 살핀 후 자택으로 돌아올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에서만 국회의원 세 번, 경기도지사 재선을 지내며 경기도정치인이라는 테두리를 갖게 된 그가 전국구 정치인으로 도약하기 위해 택한 전국 민심탐방이 대권가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목소리 높이는 박원순
세월호에 집중 문재인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하며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야권 차기 대선주자 가운데 선두에 위치하게 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가위를 앞두고 시장, 귀성길 현장, 소외된 어르신 방문 등 민생행보를 이어갔다.
이와 함께 국제회의 유치 확대와 관광객 증가 등 시장 2기 핵심사업 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에 공감을 표시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만나 한강개발 등 경제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등 폭넓은 소통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통일좌담회를 열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카운트파트너로 언급하는 등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 시장이 서울시정을 넘어선 국가적 현안에 대한 발언을 하기 시작한 것은 차기 대권 등 더 큰 정치인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가위를 앞두고 부쩍 강화된 박 시장의 이러한 행보는 한가위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요구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9일간 단식에 나서기도 했던 문재인 의원은 단식을 마친 뒤 첫 공개 일정으로 진도를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는 등 세월호특별법에 자신의 정치력을 모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4개월여의 시간이 흐르며 세월호 유가족의 강경한 태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만만찮은 상황에서 당 지도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비판까지 감수하며 적극적인 세월호 행보를 이어가고 이는 것이다. 그러나 문 의원의 이러한 행보가 장기적으로 그의 정치 세 확장에 도움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당장 한가위 여론에서도 문 의원의 행보는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무성 - 민생현장 챙기기, 김문수 - “민심 그 자체”
박원순 - 폭넓은 소통행보, 문재인 - 세월호에 올인?
안철수 - 급락한 차기 지지율, 상임위활동으로 만회?
7·30재보선 참패 이후 1개월가량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두문불출 했던 안철수 의원은 지난 1일 정기국회 개회식에 모습을 드러내며 한가위 직전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준비 중이던 신당 창당 계획을 접고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신당을 창당한 이후 잇단 실기로 지지율 추락을 거듭한 안 의원은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가 6위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기대는 상당한 상태다. 대표적인 예로 지지율은 폭락했지만 냉정한 주식시장에서 ‘안철수 테마주’는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이는 아직 ‘안철수 현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가 상당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안 의원의 이른 기지개는 재보선 참패 후 당 재건을 책임지게 된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희생자 유가족과 당의 외면을 받는 협상안을 가져오는 등 실기를 거듭하며 리더십이 붕괴된 것이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 위원장의 실기 이후 최근 당내 중도 온건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안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박영선 잇단 실기에
안철수 이른 기지개
안 의원은 지난 1일 정기국회 개회식을 앞두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았다”며 “앞으로 현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듣고 배우겠다”고 본격적 활동재개를 예고했다. 그는 우선 한가위 민심을 살핀 후 정기국회가 시작된 만큼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 활동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빅5’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민생행보를 시작한 가운데 국민들이 이들에게 어떤 평가를 내릴지 주목된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월호특별법 논란에 대한 국민 인식
세월호특별법 논의에 발목이 잡혀 국회가 멈춰선 가운데 지난달 여야가 두 차례에 걸쳐서 합의한 안을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KBS가 지난달 3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달 17일 여야 원내대표가 재합의한 안에 대해 응답자의 53.7%가 ‘다시 협상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재합의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응답은 41.6%에 그쳤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58.3%가 ‘동의한다’고 답한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8.6%에 그쳤다.
국민 58% “진상조사위 수사권·기소권 부여해야”
국민 61% “박 대통령이 희생자 유가족 만나야”
새정치민주연합이 제안했으나 새누리당이 사실상 거부한 ‘여-야-유가족’ 3자 협의체 구성에 대해서는 65.8%가 ‘필요하다’고 답해 ‘필요 없다’는 답변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60.6%가 ‘필요하다’고 답했다(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3.1%P).
국민여론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은 절대로 줄 수 없다는 새누리당과 유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청와대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