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짧은 머리에 콧수염을 길렀다. 범상치 않은 외모에서 저항의 코드가 읽혔다. 힙합 음악 마니아로 알려진 인세인박. 그는 전업 예술가다. 인세인박 작가는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세련된 사진 작품들이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이라는 타이틀로 묶였다. 인세인박은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포장하는 여러 수사를 배제하고, 시각의 본질에 충실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름 모를 아름다운 여인을 봤을 때 느끼는 황홀함. 그것처럼 우리는 메시지가 아닌 이미지로 구성된 세계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
인세인박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이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디렉터스 컷'. 이른바 영화 감독판이라고 알려진 원어의 의미를 차용한 것이다. 일반 영화 프린트가 극장 상영에 맞춰 편집되는 것과 달리 '디렉터스 컷'은 영화감독의 의도대로 편집되는 것이 특징이다. 엄밀한 의미로 '두 필름'은 상이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인세인박은 자신이 감독이 돼 여러 이미지를 수집했다. 인세인박은 "인터넷 검색으로 사진을 구했다"고 했다. 움직이는 이미지인 미디어 아트도 있지만 그의 작업은 고정된 평면에서 강점을 보였다. 디지털 사진을 컴퓨터나 TV 모니터에 띄워놓고, 이를 카메라로 촬영해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디지털화'된 이미지의 재가공인 셈이다. 이는 현실에 있는 인물 등을 직접 촬영한 방식과 차이가 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미디어가 송출하는 이미지를 작가의 주관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 해 전 인세인박은 미디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케이블선을 연결한 오브제는 '미디어가 인간을 조종하고 있다'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인세인박은 이번 전시에서 "예술가 개인의 세계관을 작품에 주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념미술에 심취했던 인세인박. 하지만 그는 "요즘 들어 과도한 의미 부여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인세인박은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를 좋아한다. 속된 말로 '빠'라는 표현도 썼다. 린치의 독특한 미적 감각은 인세인박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린치에 대한 오마주는 아니라고 했다.
아라리오갤러리서 '디렉터스 컷' 개인전
미디어 속 '이미지' 디카로 촬영해 '재편집'
일면 컬트적이면서도 깔끔하게 정제된 이미지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펜스와 결합했다. 그의 작업은 음습한 공포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한 대낮에 느끼는 까닭 모를 불안함에 가깝다. 갤러리의 새하얀 벽면은 긴장을 고조한다. 방금 전 무엇인가 본 것 같지만 다시 눈을 돌리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초점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단절된 시각 경험은 내러티브 없이도 감정을 일으키는 힘이다.
인세인박은 거의 모든 작업에서 뭉개짐(Blur)이나 망점 확대(Pixelate)와 같은 포토샵 기능을 활용했다. 그는 "3D 작업을 평면에서 썼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초점을 훼손하고, 픽셀을 확대해 조형의 윤곽을 망가뜨린 것이다.
인세인박은 오브제를 비추는 빛의 각도에 따라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그릴 것이냐' 못지않게 중요한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의 문제다. 인세인박은 기술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고 해도 '눈에 띄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창조자보단 편집자의 관점으로 작업을 풀어내고 싶었다"고 인터뷰한 이유다.
편집자 관점으로
물론 인세인박은 자신의 작업관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인세인박은 "늘 깨나가겠다"고 했다. 작품에서 현학적인 메시지를 덜어낸 것도 이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그는 회화든 조각이든 설치든 미디어든 가리지 않고 부딪치고 있다. 가식 없이 '진짜'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자신의 주변 세계가 머금고 있는 이미지를 흡수하고 내뱉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 인세인박. 그가 내뱉는 기발한 '사자후'에 관심이 모인다.
[인세인박 작가는?]
▲경기대 서양화전공 학사
▲개인전 '미디어의 습격'(신한갤러리·2009), 'Blame Game'(영은미술관·2012) 등 4회
▲단체전 '통과의례'(수원시미술전시관·2008), '2인전'(Shonandai갤러리·2009) 등 다수
▲제2회 에트로 미술대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