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도 너무한' 르노삼성차 ‘협력사 후리기’ 고발

60억 팔아줬는데 VIP커녕 머슴 취급

[일요시사=경제팀] 이창근 기자 = 특정 자동차영업소에 2000만원을 호가하는 차량을 매년 50대 이상 6년 동안 6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려준 거래처가 있다면 어떤 대접을 받을까. 일반적인 상식으론 해당 거래처는 사업소로부터 극진한 대접과 관리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 사례가 르노삼성차 사업소라면 전혀 얘기가 다르다. VIP 대접은커녕 채무자, 머슴, 심지어 아무 때나 빼먹는 곶감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이에 반항하면 사업소로부터 곧바로 응징을 당한다. 르노삼성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를 넘는 갑질 행태를 들여다봤다.
 
 
르노삼성차 산하에 있는 전국의 사업소는 총 13개. 각 사업소마다 소위 ‘보증대차’에 대한 협력업체를 선정하면서 정상적인 협력계약 외에 차량출고를 전제한 구두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이 구두계약을 빌미로 한 상식 이하의 영업행태, 이른바 ‘갑질’이 자행되고 있다.
 
출발은 윈-윈
결과는 갑질
 
‘보증대차’라는 것은 르노삼성차의 고객서비스 중 하나로 무상보증 기간 중 A/S로 인해 고객의 렌터카 수요가 생기면 이를 각 사업소가 지역 협력업체(전속 렌터카업체)의 차량을 임대해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차량 렌터비용을 르노삼성차가 부담하기 때문에 고객들의 호응이 큰 서비스다. 또한 협력업체로 지정된 렌터카 업체 입장에서는 꾸준히 발생될 것으로 기대되는 단기렌탈 매출이 매력적이다.  
 
물론 지역 사업소의 전속업체가 되는 데는 나름 부담도 있다. 르노삼성차를 일정량 확보해야 한다. 이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보증대차 서비스 차량으로 현대차나 기아차가 아닌 르노삼성차를 제공하고 싶은 브랜드 메이커의 순수한 욕심의 발로로 해석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옵션이다. 
 

윈-윈 결합이라 할지라도 민감한 사안은 있다.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일정량 이상의 차량 확보’에 대한 조율 부분이다. 2009년, ‘스타스카이’라는 렌터카 업체가 르노삼성차 성수사업소와 구두 합의한 차량 대수는 65대였다.
 
또한 이 65대를 1년 이내에 성수사업소를 통해 신규로 출고하기로 했다. 확보차량을 중고차가 아닌 신규차량으로만 채워야 하는 협력업체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성수사업소는 보증대차뿐 아니라 ‘보험대차’에 대한 계약 건도 밀어주기로 했다. ‘보험대차’란 교통사고 발생으로 인하여 접수된 렌터카 수요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양자 간의 계약이 1년 단위로 갱신하기로 한 점을 사업소가 악용하는 관행이 생기면서 발생했다. 스타스카이가 2009년 한 해 동안 65대의 차량을 출고함으로써 계약서 및 구두로 합의한 ‘일정량의 차량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재계약 당시 추가로 65대의 차량출고를 요구받은 것이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지만 마지못해 사업소의 요구에 따라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이것이 잘못된 관행의 시발점이 됐다. 스타스카이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동안 계약을 연장해 왔다. 그리고 매년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신차출고를 약속하고, 이행해왔다. 이 기간 동안 출고한 차량은 324대.
 
2009년 65대, 2010년 65대, 2011년 64대, 2012년 64대, 2013년 55대, 2014년 올해는 42대의 출고를 약속하고 7월 현재까지 11대를 출고한 상태다. 차량 1대 가격을 2000만원으로 계산해보면 스타스카이가 사업소에 올려준 매출은 65억원 규모에 이른다. 
 
스타스카이 조기배 대표(49세)는 그간의 과정을 한마디로 ‘6년간의 악몽’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소와의 구두계약을 지키기 위해 안 해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매출이 생기는 대로 최우선으로 차량을 출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는 회사나 주변 사람들이 차를 산다고 하면 어르고 달래서 성수사업소와 연결시켜줬다. 출고대수를 채우기 위해 1년밖에 안 된 다른 차를 중고차로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새 차를 주문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수년간 협력업체에 악질적 갑질 논란

‘곶감 빼먹기’ 반항하면 곧바로 응징
 
이렇게 계약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사업소를 통해 발생한 보증대차 및 보험대차의 매출은 월 1800만원에서 2000만원 수준. 그렇다면 스타스카이는 돈을 벌었을까? 
 
“보증대차, 보험대차 합해서 월 2000만원 매출이 나면 얼추 손익을 맞춘다. 1800만원 수준이면 손해가 난다. 차량 보험료에 파견한 직원 셋 인건비를 차감하고 나면 항상 차량할부금 낼 돈이 모자랐다. 차량할부금 비중이 너무 커서 도저히 이익을 남길 수가 없었다.” 
 
크게 남는 것도 없고 대부분 적자를 보는 전속계약을 6년이나 지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 대표는 그 이유를 중소기업들에 적합한 업종에 대기업이 뛰어든 결과로 규정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렌터카 시장은 KT금호렌터카와 AJ렌터카 같은 대기업이 시장점유율 대부분을 잠식하면서 군소 렌터카업체의 위기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차 사업소와의 전속계약을 대기업 렌탈사업자에 대항하는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것이다.
 
대기업 몰려 
설자리 없어
 
그런데 가뜩이나 울고 싶은 조 대표의 뺨을 때려 울린 것과 다름없는 일이 생겼다. 지난 3월19일, 지난해 부임한 성수사업소장 정모씨가 조 대표를 사무실로 호출했다. 용건은 “이번 달에 세 대밖에 안 했으니 한 대만 더 출고해 달라”는 것.
 
조 대표는 정 소장의 부탁을 쉽게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럴 여건이 안 됐다. 대기업들 틈바구니 속에서 매출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한 대 더 뽑으라”는 정 소장과 “이번 달은 어렵다”는 조 대표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 정 소장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조 대표를 격분케 했다. “내 직원 하나가 이번에 진급 케이스인데 차 한 대가 부족하다. 조 대표 때문에 직원이 진급을 못해서야 되겠는가!”
 

조 대표는 정소장의 ‘당신 탓’ 발언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추가할 필요도 없는 차량을 매년 수십대 씩 출고해 온 자신을 ‘직원 진급을 가로막는 사람’으로 대하는 처사가 참기 힘들었다. 
 
조 대표는 “그게 왜 내 탓인가, 책임을 왜 나한테 돌리는가”라고 반발했다. 그리고 조 대표의 반발에 이어진 정 소장의 발언이 6년간의 협력관계를 깨트렸다. “아, 내가 이 정도 그릇밖에 안 되는 업체와 계약을 하다니. 능력 없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서 이게 무슨 고생인가!”    
 
정 소장의 발언에 조 대표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게다가 그 자리에는 성수사업소의 직원이 배석해 있었는데 그 앞에서 “능력 없는 파트너” 운운하는 소리를 듣고 보니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정 소장의 나이가 조 대표보다 다섯 살 가량 아래임을 알고 있었던 터라 모멸감은 더욱 컸다. 
 
버릇 고치려다 

뺨 맞고 울분
 
그날 미팅은 서로 얼굴만 붉힌 채 끝이 났지만 조 대표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이후 조 대표는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차량 출고를 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그동안 확보한 차량만으로도 계약서에 명기된 ‘서비스에 필요한 차량의 확보’ 조건은 만족되었다는 판단이 있었다. 또 구두약속인 42대의 출고 부분은 1년 안에 이행하면 되는 것이어서 하반기에나 감당하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러나 조 대표의 행동에는 자신이 ‘을’이라는 자각이 부족했다. 7월에 접어들자마자 성수사업소로부터 ‘더 이상 계약을 지속할 수 없으니 사업소에 있는 차량과 인력을 철수시키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에 조 대표는 직접 정 소장을 찾아가 “계약기간도 남아 있고, 남은 기간 동안 출고목표를 채우겠다”며 읍소를 했다.
 
계약이 파기되면 사업소에 파견한 직원 셋을 해고해야 하고, 사업소에 주차된 20여 대의 차량의 주차공간도 마련해야 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수사업소의 대답은 “이미 다른 업체와 계약됐다”는 것. “차량 처분이나 대체할 주차 공간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를 달라”는 부탁 역시 수용되지 않았다. 
 
조 대표가 <일요시사>에 자신의 사연을 호소한 것도 이 시점이다. 조 대표는 2009년부터 최근까지 3백대 이상 르노삼성차를 출고해온 협력업체에 대한 사업소의 처사가 너무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사업소가 협력업체에게 ‘파트너’가 아닌 ‘채무자’나 ‘부하직원’처럼 취급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지난 6년 동안 사업소로부터 받은 무수한 설움도 털어놓았다. 
 
추가 출고 압박 영업소장 핀잔에 반박하다 보복

계약서에 독소조항 집어넣고 입맛대로 좌지우지
 
“왜 내가 능력 없는 파트너입니까? 더 이상 추가할 필요도 없는 차를 매년 수십 대씩, 6년 동안 300대가 넘도록 차를 뽑아줬으면 VIP 아닌가요. VIP 대접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 협력업체로는 대해줘야지 마치 채무자나 부하직원 다루듯 해서야 되겠습니까?”  
 
문제의 발단이 된 성수사업소 정 소장은 조 대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인터뷰를 회피했다. 그러면서 “조 대표와 대화에서 폭언이나 욕설은 없었다. 스타스카이가 출고를 안 한 상태에서도 3개월간 보증대차 계약을 받아갔다. 그 동안 주차비도 안 냈다”면서 오히려 조 대표를 비난했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르노삼성차 사업소와 협력업체의 갈등이 비단 성수사업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르노삼성차의 전국 사업소마다 비슷한 형태의 갈등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도권의 한 협력업체 대표는 “르노삼성차 악랄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업체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차량출고 시점과 수량을 조절하면서 약속한 출고대수를 맞춰나가려는데 이게 사업소 맘대로다. 무슨 상호협력이 이 모양인가.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단언했다.
 
말로만 상생 
실상은 쪼기
 
일부 지역에서는 사업소가 인근 렌터카업체를 모아놓고 “몇 대를 출고할지를 써내라. 많이 써낸 곳과 계약을 하겠다”는 방식으로 업체를 선정하고 있음을 확인해 줬다. 사업소가 르노삼성차로 보증대차를 원활히 제공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몇 대를 출고할 것이냐를 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를 비롯한 전·현직 협력업체 대표들은 “르노삼성차가 협력업체들 등쳐서 매출을 올리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계약 당시에는 ‘르노삼성차 A/S로 제공하는 렌터카를 다른 브랜드 차량으로 제공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을 명분으로 삼지만 결국은 차량출고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르노삼성차 본사는 전국 사업소에서 보증대차를 빌미로 한 갈등이 조장되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이에 대해 홍보실 관계자는 “개별 영업소가 해당지역의 렌터카업체들 중 한 두 곳을 선정해서 보증대차나 보험대차 계약을 밀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속계약의 실체는 인정했다. 그러나 매년 추가출고가 강제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그러면서 “랜터카 일감을 몰아주는 것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업체가 알아서 출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차량출고에 대해 구두계약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감을 얼마나 밀어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하고 구두계약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구두계약한 출고대수 때문에 협력업체가 힘들어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출고대수는 업체가 자발적으로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성수사업소가 계약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협력업체에게 계약파기를 통보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도 본사는 별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해당 업체가 4월부터 3개월 간 차량 출고가 없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는 업체로 판단하여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보고받았다”는 것이다.
 
남은 기간에 약속한 출고대수를 채우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에도 ‘신뢰할 수 없는 업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성수사업소장에게 물어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본사와 사업소가 한 목소리로 ‘신뢰할 수 없는 업체로 판단했음’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에 다시 계약서를 살펴보니 그 안에 답이 있었다. 사업소와 협력업체가 체결한 계약서 제11조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 요건을 보면 6번째 조항에 ‘갑의 입장에서 을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판단하는 경우’라고 명시되어 있다.
 
어떤 때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보는지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 을의 소명 기회에 대한 언급도 없고, 그저 갑이 보기에 을의 신뢰도가 떨어졌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작성된 것이다.
 
갑의 지위를 이용해 을의 의사결정을 제한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볼 때 이 계약서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 조항을 배경으로 사업소장에게 협력업체는 어느 때나 필요할 때 빼먹을 수 있는 ‘곶감(?)’이 됐다.
 
협력업체의 자금사정이나 계획보다 사업소의 필요와 의지에 따라 출고차량의 수량과 시점이 결정되는 불합리가 자행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계약을 갱신하려면 새로 출고약속을 하라는 형태는 문제소지가 많다. 이미 인프라를 갖춘 업체를 상대로 요구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르노삼성차는 전혀 개선의 의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삼자대면 제의
나중엔 모르쇠
 
현대차나 기아차 영업소에는 없는 형태라는 지적에도 “다른 회사 일은 언급할 필요가 없고, 영업소에서 시행하는 것까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답변이다. 비난을 받더라도 협력업체들로부터 발생할 매출은 포기 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협력업체 대표가 사업소장으로부터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들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본사와 사업소장 모두 민감하게 반응했다. “삼자대면을 하자”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이 르노삼성차 측이다. 이 제의에 조 대표도 기꺼이 찬성을 했다. 그러나 일정을 잡아달라는 본지의 제안에 홍보실 관계자도 성수사업소장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거듭 재촉해도 마찬가지였다. 6년 동안 멀쩡한 차 팔고, 주변에 아쉬운 소리해가며 르노삼성차 영업해 준 조 대표 입장만 우스운 꼴이 되고 있다. 
 
현재 조 대표는 계약파기의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직원 셋을 해고하기보다 다른 매출처를 찾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성수사업소에 있는 차량 20대를 주차공간도 찾아야 하고, 보유하고 있는 르노삼성차 80대도 처분하려면 하루해가 짧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 땀을 훔치며 뛰어다니는 조기배 대표 등 뒤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을’의 그림자가 모질도록 짙고 어둡다. 
 
 
<manchoic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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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