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차기 대권주자 함수관계 해부

'도백=대권 지름길'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6·4지방선거를 통해 단숨에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광역단체장들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 대권주자들을 위협할 수준으로 급성장한 이들에게 지역을 넘어 전국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시장의 경우에는 여야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1위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갔다. 광역단체장과 차기 대권주자와의 함수관계를 집중 해부했다.  

광역단체장의 정치적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민선 6기까지 출범하는 동안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리며 시·도지사들이 '지방의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과 인지도가 커진 것이다. 6·4지방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 10명과 장관 1명이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광역단체장에 도전한 것은 높아진 광역단체장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일부 광역단체장들은 단숨에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며 '시·도지사는 미래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시·도지사 위상↑
미래권력 지름길?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은 정치력과 행정력이다. 마찬가지로 차기 대권을 준비하는 잠룡들에게도 정치력·행정력은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요소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자리는 사실상 광역단체장이 유일하다.

장·차관 등 행정관료 출신들은 정치력이 부족하고, 국회의원 등 정치인 출신들은 행정력이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지만 한 지역을 이끌어가는 광역단체장은 지역의 인사권과 행정권을 한 손에 쥐고 지역에서 대통령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민선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이후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의 광역단체장은 자천타천으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성장했다. 대표적 예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이 되기 이전에는 구설수가 많았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재선의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대권주자로 발돋움했고, 마침내 국가 최고권력인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6·4지방선거 이후에는 한층 높아진 광역단체장의 위상에 힘입어 수도권뿐 아니라 타 지역의 광역단체장들도 각 당의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특히 이번에 뽑힌 광역단체장들은 오는 2017년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하더라도 이듬해 6월에 재보선이 치러지는 까닭에 해당 지자체별로 별도의 재보선을 치르지 않아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한 중도 사퇴 부담도 덜하다.

이와 관련,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대권잠룡으로 급부상한 한 광역단체장은 "다음 지방선거는 차기 대선 후 6개월 뒤인 2018년 6월에 열려 중도 사퇴로 인한 보궐선거 개최 부담 없이 대선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권력 잠룡들, 대권주자 급부상
정몽준, 유력주자서 단숨에 밀려나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한 이들은 누가 있을까. 가장 대표적 인물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민심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수도 서울에서 1000만 시민들의 선택을 두 번이나 받으며 불과 3년만에 유명 시민운동가에서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특히 지난 2011년 10·26재보선 당선에는 당시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아름다운 양보'가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자력'으로 여유 있게 재선에 성공하며 명실상부한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박 시장은 각종 언론인터뷰를 통해 "재선 임기 중 치러지는 2017년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의 차기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번에 당선된 광역단체장 가운데 박 시장이 얻은 정치적 열매가 가장 크다"며 "본인은 주어진 임기를 충실히 다 마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대선이 치러지는 2017년 정치상황에 따라 당과 시민들의 강력한 대선 출마 요구가 있을 경우 출마를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 차기 대권주자
박원순·안희정 부상

마찬가지로 재선에 성공한 새정치연합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도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을 확실히 올렸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재선에 성공할 경우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계획을 공공연하게 밝힌 안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라는 상징성과 도지사 재선의 행정경험, 그리고 '충청권 대망론' 등을 내세워 차기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 지사는 재선 성공 이후 당선 소감에서도 “민선 6기 지방정부 운영을 통해 경험을 쌓아 확고한 대안을 준비할 수 있다면 대권에 도전해보겠다”며 “민선 6기에서 더 확실히 해서 확신이 든다면 도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안 지사가 차기 대권 도전에 나설 경우에는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또 다른 유력주자인 문재인 의원과 '선의의 경쟁'을 통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안철수·문재인 양강 체제 차기 대권주자 경쟁이 박원순·안희정 양강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최문순 강원지사도 가세할 조짐이다. 최 지사는 4년 전까지만 해도 통합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한 차례 지낸 정치신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4·27재보선에 깜짝 등판해 강원지사에 당선된 데 이어 재선에도 성공하며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최 지사는 최근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도정을 운영하며 그만큼 건강을 많이 해쳤는데 대권까지 바라보긴 버겁다"면서도 "그 부분(차기 대권 도전)은 언론인들이 쓰고 싶은 대로 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들의 부상에 따라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던 새정치연합 안철수 공동대표의 입지는 급격히 위축됐다. 특히 안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당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측근인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를 전략공천으로 밀어붙여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7·30재보선 공천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론도 안 대표에게 집중되는 모양새여서 안 대표의 입지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안 대표의 새정치연합 합류는 결국 악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안 대표가 진정 차기 대권을 꿈꿨다면 당초의 계획대로 신당 창당을 통한 제3세력화를 끝까지 밀고 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도 최근 잇단 공천 잡음의 주역으로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며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이 급락하자 "김한길 대표에게 속았다"는 말을 측근들에게 할 정도로 새정치연합 합류를 후회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문재인 의원은 안 대표가 '공천 파동' 직격탄을 받으며 추락하고 있는 사이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며 '본전치기'는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권의 잠정 대권주자인 손학규 상임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7·30재보선에서 여권세가 강한 경기 수원병(팔달), 김포에 각각 출마하는 만큼 당락 여부에 따라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가 갈릴 전망이다.

여권 차기 대권주자
'홍·남·원' 3인방 부상


여권에서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며 차기 대권주자로 몸값을 올렸다. 지난해 초 진주의료업 폐업 강행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는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기는 하지만 '보수의 아이콘'이라는 전리품을 챙겼다.

홍 지사는 지난 9일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정치를 하거나 지방행정을 맡아서 하는 분들이 행정을 하고 정치를 하다보면 국가를 운영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지금 당장 (차기 대권 도전을) 논할 문제는 아니고, 2~3년 후 지방행정을 잘 하다보면 '국가를 맡아도 되지 않겠나'라는 시대적 소명이 있을 때 나설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 놨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도 단숨에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한 단계 도약했다. 새누리당 내에서 '쇄신파'라는 꼬리표에 갇혀 있던 이들은 도정 수행에 성공할 경우 중량감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은 보수정당 소속이기는 하지만 개혁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만큼 중도층으로의 확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안희정·홍준표·남경필·원희룡
'지방 소통령', 차기 대권경쟁 우위?

다만 이들 중 원 지사는 지난 3월 제주지사 출마 선언식에서 "한계에 도전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제주지사가 대한민국 대통령도 될 수 있다"면서도 "2017년 대권에는 도전하지 않고 도지사 4년 임기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해 차차기에 뜻이 있음을 밝혔다.

이들의 부상에 따라 여권의 기존 대권주자 구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방선거 이전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한 여권 차기 대권주자였던 정몽준 전 의원은 서울시장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패하며 되돌리기 힘든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 전 의원의 추락으로 반사이익을 얻어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여권 차기 대권주자 중 1위로 부상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도지사 임기 종료 후 당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서울 동작을 재보선 출마를 통한 여의도 정치권 복귀를 거부했다. 대신 국민 속에서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차기 대선을 준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멀어진 그가 현역 광역단체장 3인방의 거센 도전을 뿌리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원순 서울시장
차기 대권주자 1위

한편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6월30일~7월4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야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16.2%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문재인 의원(15.5%), 3위는 정몽준 전 의원(12.3%)이 차지했다. 안철수 대표는 11.0%로 4위에 그쳤다.

이어 김문수 전 지사(9.1%), 김무성 의원(7.8%), 남경필 경기지사(5.4%), 손학규 고문(3.3%), 안희정 지사(2.9%) 순으로 나타났다(조사대상 : 전국 유권자 2500명, 조사방식 : 유·무선 병행 RDD 전화면접 및 자동응답전화,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 ± 2.0%포인트).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잠룡급' 시·도지사 당내 계파 분석

새정치연합의 계파는 크게 '친노(친노무현)' '비노(비노무현)' '친안(친안철수)'으로 구분된다. 친노 진영의 수장은 문재인 의원, 비노 진영의 수장은 김한길 공동대표, 친안 진영의 수장은 안철수 공동대표다.

이들 중 문 의원과 안 대표는 새정치연합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된다. 그러나 6·4지방선거를 통해 계파색이 옅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친노 진영의 안희정 충남시장이 가세하며 야권의 차기 대권구도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됐다.

당장 박 시장은 문 의원, 안 대표와 함께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 '빅3'를 형성했다. 특히 안 대표가 새정치연합 창당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과 지방선거→재보선 공천 잡음으로 당내 견제 세력이 많은 상황에서 박 시장은 안 대표를 제치고 비노·친안진영을 대표하는 주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친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안 지사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하며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의 지분을 문 의원과 나눠 가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친노진영 내부에서 이합집산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편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홍준표 경남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은 모두 친박(친박근혜)과는 거리가 먼 비주류로 분류된다. 비주류 중에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무성 의원 등도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고 있어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권 내부에서는 비주류 차기 대권주자 간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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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