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조직을 중용해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간 정치권에서 암암리에 떠돌던 박 대통령 비선조직에 대한 소문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야권은 '만만회' '만회상환' 등의 신조어를 거론하며 박 대통령의 '인사 참사' 반복이 비선조직 작품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비선조직의 핵심인물로 거론되는 인사는 "소설"이라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수면 위로 떠오른 청와대 비선조직의 실체를 추적했다.
조선시대 대표적 성군인 세종대왕은 인사권과 병권만 직접 챙기고, 국정운영 권한의 상당부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재상에게 이양했다. 권력의 핵심이 인사권과 병권에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현대에도 통용되는 권력의 법칙이다.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 권력의 핵심도 7000여개 이상의 공직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가졌다는 점과 군 최고통수권자라는 점이다.
국정의 잣대 인사
특히 다원화,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도 하는 만큼 인사의 성공과 실패는 곧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청와대 비서실, 정부부처, 여당 지도부 등 공식조직의 도움을 얻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공식적 라인을 제쳐둔 채 대통령과의 사적인 친분으로 맺어진 비선라인이 인사에 관여할 경우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비선라인을 통해 인사가 이뤄지면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추천이 돼도 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여져 사전검증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즉, 비선라인의 존재와 가동이 공식조직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에 비선조직이 있으며, 그들이 장막 뒤에서 인사 등 국정운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부터 암암리에 정치권에서 떠돌던 비선조직에 대한 소문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사실 집권 1년4개월여 만에 10여명이 넘는 장·차관 후보자가 낙마하고, 3명의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가지도 못하고 언론검증 단계에서 낙마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은 공적 인사시스템이 마비됐거나, 이를 무력화할 만큼 강력한 비선조직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때문에 그간 정치권에서는 '7인회'(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안병훈 기파랑 대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김용갑 전 의원, 강창희 전 국회의장),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등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수면 아래서 소문으로만 돌던 청와대 비선조직 의혹은 최근 총리후보자 2명(안대희·문창극)이 잇따라 낙마하자 마침내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초의 공개적 언급은 여권에서 나왔다.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지난달 2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의 원로자문그룹 '7인회'가 막후에서 박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부인하며 "7인회는 언론이 만든 용어로, 사실 아무 역할도 안 한다"며 "내부적으로 박 대통령이 가깝게 의논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비선라인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박 전 의장은 "구체적으로 말하긴 좀 그렇다"며 비선조직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피했지만 "공식 채널이 아닌 소규모 비선라인을 통해 상당히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비선조직의 존재를 재차 강조했다.
청와대 비선 의혹 수면 위로 떠올라
'만만회' 등…정윤회 "소설 같은 이야기"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살을 붙여 의혹을 부풀렸다. 박 의원은 이날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박 전 의장이 인터뷰를 통해 단정적으로 밝혔듯이 비선라인이 인사를 하고 있다"며 "'만만회'라는 것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만회 멤버는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할 당시부터 그를 보좌해온 이재만 총무비서관,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 최태민씨의 사위이자 박 대통령 보좌관을 지낸 정윤회씨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7일 "대통령 눈과 귀를 막는 사람이 '만만회'에서 더 발전해 '만회상환'이라는 이야기가 돌아 다닌다"며 새로운 비선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만회상환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윤회씨,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후보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 강동원 의원은 한 술 더 떠 "이 비서관이 퇴근 시에 서류뭉치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청와대 밖으로 나간 것이 목격됐다고 한다. 그 서류뭉치는 인사청문 검증서류이고, 이 서류를 최태민씨 사위인 정씨에게 가져가서 총리후보자를 낙점받았다는 설이 무성하다"며 "정씨는 박 대통령의 숨겨진 실세, 그리고 '밤의 비서실장'으로 불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비서관은 일부 언론을 통해 "정씨를 최근에 만난 적은 없다"며 "2003년인가 2004년인가 만났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정씨도 최근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과 만나 "2007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7년간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며 "지난 대선 때도 활동하지 않았다. 대선 이후 박 대통령과 접촉한 건 당선 후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한 번 한 게 전부다"라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또 "문고리 권력 3인방과는 접촉이 없다"며 "만만회는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씨의 "2007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래 야인으로 지냈다"는 주장은 박 대통령 측의 과거 해명과 맞지 않는다. 정씨는 지난 200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총재로 취임했을 때 총재비서실장을 맡았지만,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복당해 2004년 당대표에 오르자 "공조직이 대표를 모셔야 한다"며 보좌관직에서 물러난 뒤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후 2007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가 이명박 후보와 맞붙었을 때 정가에서는 정씨가 속칭 '삼성동팀'을 만들어 막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설이 파다했지만, 박 후보 캠프 측은 "2004년 이후 정씨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즉, 정씨의 <중앙일보>를 통한 해명은 당시 정가의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의미하는 한편, 박 대통령의 비선라인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도 떨어뜨린다. 또 박 대통령이 대선 이후 먼저 정씨에게 전화를 했다는 주장은 두 사람의 관계가 정씨의 해명 그대로 7년 전 완전히 단절됐다고 보기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석연찮은 해명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비선라인에 대한 얘기는 오래 전부터 돌았다"며 "비선라인은 대개 정권의 힘이 빠진 집권 후반기 정권 내부의 암투를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는데, 벌써부터 공공연하게 비선조직의 존재가 거론되는 것은 조기 레임덕이 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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