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재계 총수들 진짜 피서법

아무때나 가면 되지…피크 시즌엔 ‘방콕’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이맘때면 궁금해지는 게 '돈 많은' 재벌총수들의 휴가 계획이다. 재벌그룹의 대답은 한결같다. "휴가가 뭐냐?"는 것.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 공백, 건강 악화, 유동성 위기, 실적 부진 등 각종 악재로 뒤숭숭한 재계의 휴가 풍경을 들여다봤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 "하반기 경영구상에 몰두한다"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총수들의 여름휴가를 묻는 질문에 각 그룹 홍보실들은 비슷비슷한 공식 답변을 내놨다. "휴가가 뭐냐?"고 반문하는 기업도 있었다.

재벌 총수들의 잇단 구속으로 인한 경영공백, 건강 악화, 경쟁력 약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 유례없는 글로벌 업황 악화로 인한 실적 부진 등 각종 악재가 덮친 대기업의 총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별다른 휴가 계획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차이는 존재한다. 자진해서 '안 가는' 회장님이 있는 반면, 어쩔 수 없이 '못 가는' 회장님도 있다.

할일 태산인데
휴가는 무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여름휴가 기간 자택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그간 현대·기아차 공장이 휴무에 돌입하는 때에 맞춰 공식적인 휴가 일정을 잡아왔다. 현대·기아차는 오는 8월4일부터 5일 동안 울산 등 전국의 공장·연구소 등 모든 사업장이 휴무한다. 정 회장은 이 기간 동안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볼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과는 다르게 유럽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자료를 보면 현대차는 지난 5월 유럽연합(EU)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국가에서 3만5636대를 판매, 전년 동기보다 3.1%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정 회장이 지난해 10월과 지난 3월 유럽 현지를 찾는 등 유럽 시장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이는 것과 대립되는 구도다.


현대차는 유럽에서 2분기 신형 제네시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하반기 신형 i20 출시로 실적 부진을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의 하반기 사업목표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점검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휴가 기간을 잡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하반기 경영구상을 한다는 계획이다. 외부 일정은 지양한다.
 

LG그룹은 하반기 큰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다. 그룹 연구개발(R&D)센터로 '마곡 LG 사이언스 파크'가 착공에 들어간다. 이를 기반으로 LG그룹은 올 하반기 본격적인 성과 창출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방침이다. 먼저 LG전자는 스마트TV, UHD(초고해상도) TV,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등 전략 제품을 앞세워 세계 TV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스마트폰사업에서는 G3 출시를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LG디스플레이는 TV와 스마트폰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역량 강화에 집중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휴가와 회사 일정을 맞물리게 잡았다.

허 회장은 7월23∼26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리는 전경련 '최고경영자(CEO) 하계포럼'에 참석한 뒤 짧은 휴식을 취하며 하반기 경영 구상을 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7월23일부터 3박4일간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참석했다가 남은 기간은 자택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별다른 일정 없다"는 대외용 홍보성 멘트
개인별장·출장 핑계로 해외서 '유유자적'


이재성 회장을 포함한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아직 일정과 장소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도 마찬가지로 중동과 유럽 등 해외 공사현장과 현지법인을 방문해 현장 경영활동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경영진은 매년 해외를 찾아 현지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체해 왔다. 매년 명절 연휴에도 해외 사업장을 방문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직원들을 격려해왔다.

"휴가를 논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기업도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대표적이다. 박 회장은 올해 휴가를 반납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 수습에 전념하느라 휴가 갈 엄두를 못 냈다. 

올해 여름휴가 기간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로 휴가기간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올해 초 금호건설 전략경영세미나에 참석해 "기필코 올해 워크아웃을 졸업하자"고 강조한 뒤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은 2010년부터 5년째 워크아웃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금호산업 구조 조정안을 놓고 진통을 겪기도 했다.

박 회장은 지주사인 금호산업의 대표이사를 직접 맡아 경영 정상화를 지휘해 왔다. 주말을 반납하고 그룹 임직원들과 산행을 하고 세미나 등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현장경영을 이어 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특별한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여름철 성수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순항 길에 접어든 한진해운 정상화도 현안이다. 휴가철에도 평상시처럼 정상 출근해 업무를 챙길 예정이다.

방에 콕 박혀
하반기 경영구상

조 회장은 지난 4월 한진해운을 품에 안으며 '부활'을 자신했다.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경영을 꿈꾸던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해운업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한진해운의 핵심 사업을 시아주버니인 조 회장에게 완전히 넘겨줬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 일부 사업만 떼어내 독립했고, 핵심 사업은 한진그룹으로 편입됐다.

지난 5월 한진해운 대표로 선임된 조 회장은 흑자 전환까지는 월급도 받지 않겠다며 한진해운 정상화를 목전 과제로 내건 상황이다.
 

수감된 최태원 SK회장을 대신해 SK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아예 휴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SK그룹은 매월 한차례씩 계열사 CEO들이 모이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집단 경영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이 지난 2월 말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으며 경영 일선에서 떠났고 그룹 경영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의 비중이 커진 상태다. 지난달 27∼28일에는 경기 용인의 'SK아카데미'에서 비공개 워크숍을 열고 '끝장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CEO들이 대거 참여해 이틀간 합숙토론 행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 전체를 휩쓸고 있는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지금 상황에 그룹 CEO의 휴가 거론은 어불성설이다.


뒤숭숭한 재계
"휴가가 뭐냐?"

2008년 이후 휴가 없는 여름을 보내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올해 역시 별다른 휴가 계획이 없다. 현 회장은 해마다 8월4일 고 정몽헌 회장 기일 때마다 강원도 금강산에서 열리는 추모식을 휴가를 겸해 다녀왔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어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여름휴가를 떠나지 않았다.

구자열 LS그룹 회장도 2012년 11월 취임한 이후 한 번도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올해도 구 회장은 여름휴가를 미뤘다. 지난해 원전 케이블 품질 문제로 바닥을 치는 회사 이미지를 살리기 위한 경영에 몰입하고 있다. 사실상 휴가 계획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올해 초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 풍파를 겪고 있는 이웅렬 코오롱 그룹 회장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통상 2∼3일 정도 휴가를 보냈지만 올해는 휴가를 안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회사 사정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못 가는' 총수들도 있다. 와병 중인 총수들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 여름 자택에 머물며 치료에 전념할 계획이다. 2012년 8월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 회장은 지난 2월 파기환송심을 통해 징역 3년에 집행유례 5년, 벌금 51억원,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으면서 족쇄가 풀렸다. 하지만 구속기간 동안 건강은 악화됐다. 김 회장은 만성 폐질환으로 인한 호흡공란, 당뇨, 우울증, 섬망 등의 증세가 겹쳐 서울대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김 회장은 지난 3월과 5월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향하기도 했다.


회사 어려워 못가고
몸이 아파서 못가고
구속 처지라 못가고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부문 사장 등 오너 일가 모두는 이건희 회장이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상황이라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 5월10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 자택 인근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돼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중환자실로 옮겨진 이 회장은 혈관 확장술인 ‘스텐트 삽입 시술’을 받고 같은 달 13일부터 뇌와 간 등 장기의 손상을 막기 위해 진정치료를 받았다. 입원 9일 만인 5월19일에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최근에는 8∼9시간 정도 눈을 뜨고 손발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상대와 눈을 맞추는 등 외부자극에 대해 점차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2011년 간암 3기 판정을 받은 이 전 회장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다.

'쇠고랑'을 차고 있는 총수들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의정부교도소에서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 최 회장은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형을 확정 판결 받고 1년6개월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독방을 쓰며 하루 1시간 정도 바깥 운동을 하며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면회 온 임원을 통해 '옥중메모'를 전달하고 "위기를 잘 극복해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SK그룹 연례 워크숍에서 공개된 최 회장의 옥중메모에는 "경영 환경이 매우 어려운 가운데 열심히 뛰어 준 경영진과 구성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SK의 역사가 위기 극복을 통해 성장해온 만큼 이번 위기도 잘 극복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수펙스추구협의회와 김창근 의장을 중심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현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이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6500억대 분식회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효성은 박근혜 정부의 타깃이었다. 새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에서 효성그룹에 대해 대규모 특별세무조사를 벌였고 검찰은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전개했다. 검찰은 98년 외환위기 직후 종합상사의 부실을 10여년 이상 분식회계 했다면서 조 회장에 대해 배임·횡령·탈세혐의로 기소했다. 현재 세 번째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657억원의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에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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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