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대부분의 우화 속에는 작가가 장치해 놓은 상징이 있다. 천진난만한 이야기 끝에는 역설적이게도 어떤 교훈이 도사린다. 독자들은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숨겨진 내막을 파악하고 종국에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한다. 조각가 강은영 작가의 작품은 '어른들을 위한 우화'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큐레이터 윤채원씨는 강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진의를 파악하는 재미'라는 표현을 썼다. 이번 편은 윤씨가 쓴 소개글을 기초로 강 작가의 작품세계를 전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갤러리도스에서 지난 4일부터 강은영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오는 10일로 마무리되는 이번 전시 제목은 'HUMAN NOTE'. 인간과 동물의 기묘한 공존이 특징인 조각들은 모두가 강 작가의 솜씨다. 도예를 전공한 강 작가는 인물 전신을 표현한 세라믹 작업에서 강점을 드러낸다. 앞서 강 작가는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그룹전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첫 번째 개인전
화이트 계열의 세라믹 작품들은 형식면에서 그로테스크하다. 구성으로 따지면 일면 긴장감도 엿보인다. 혼합재료를 쓴 2009년 작품인 'between you and I and barn'은 두 쌍둥이 소녀가 평온한 모습으로 그네에 앉아 있지만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불안하다.
마찬가지로 2009년작인 'dinner time'을 보면 두 쌍둥이 여성은 식탁을 경계로 마주보고 앉아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어떠한 감정의 증폭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분열된(혹은 불안한)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개를 식탁에 떨어뜨린 모습이나 팔을 축 늘어뜨린 모습으로 봤을 때는 죽음이란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큐레이터 윤채원씨는 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 "특정한 내러티브가 엿보인다"고 했다. 사람, 동물, 사물 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강 작가는 조형 각각의 배치나 구도를 미장센처럼 연출해 포인트를 줬다. 흡사 연극의 한 장면처럼 강 작가는 전달코자하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등장인물(혹은 사물)들을 한 무대 위로 올렸다. 그리고 무대 위로 올라온 인물과 인물, 혹은 인물과 공간 간의 극적 긴장감은 독립된 대상들이 요즘 말로 '케미'를 형성하면서 극대화된다.
인간 주제로 한 조각들 선보여
화이트 계열 세라믹 작품 주목
강 작가는 이번 'HUMAN NOTE'전에서 인간의 특성과 관련한 두 가지의 고찰을 표현했다고 했다. 하나는 모순이고, 또 하나는 본성이다. 모순부터 말하면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우리가 예측하기 힘든 여러 감정들은 매우 복합적인 형태로 우리 일상을 흔든다. 그런데 강 작가가 보기에 이런 극적인 순간들은 동일한 시·공간 안에 혼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마치 인력처럼 서로를 잡아당긴다.
예를 들면 탄생과 죽음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은 현실세계에서 서로 밀접히 맞닿아 있는 일종의 '평행' 상태를 이루고 있다. 강 작가는 이런 평행을 빗대어 은유법을 구사했는데 흑백으로 대비되는 동물을 한 공간 안에 대칭적으로 배치하는 것 등이다.
또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서는 인물 등 뒤에 씌운 곰이나 미어캣을 부각함으로써 자연 그대로의 인간, 나아가 본성에 지배받는 인간을 그렸다. 이성을 상징하는 눈이 없는 아이들이 인상적이다.
눈이 없는 아이들
강 작가는 자신의 작업 노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은 전혀 다른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공포와 행복, 사랑과 비극처럼 양 극단을 오가는 상반된 개념은 한 화면에서 모순을 만들고, 그 모순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작품을 통해) 나를 매료시킨 모순을 표현하고자 했다."
동물인 동시에 사람이기도 한 인간. 삶이란 무대 위에 있는 나는 지금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가. 현대판 야누스에 주목하는 강 작가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강은영 작가는?>
▲홍익대학교 도예과 졸업 및 동대학원 도예과 졸업
▲한국공예문화진흥원, 하기우라가미뮤지엄(일본), 잉거세라믹뮤지엄(대만) 등 단체전 다수
▲1회 개인전 HUMAN NOTE(2014, 갤러리 도스)
▲이천도자국제공모전(2011) 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