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죄송하지만 이 상품은 저희도 많이 못 팔아봐서요. 일단 저도 알아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런데 솔직히 그다지 권해드릴 만한 상품이 아니라서 다른 상품을 추천해드려도 될까요?”
하나은행의 월세대출 상품 ‘월세론’이 까다로운 대출 조건으로 인해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은행에서조차 월세 대출 상품을 권하지 않고 있다. 월세 대출 상품을 활성화해 월세 주거취약계층의 자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금융권의 취지가 어긋나고 있는 모습이다.
월세는 이미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전세매물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월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은행들은 월세 세입자를 위한 대출 상품을 출시해 서민을 위한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특히 하나은행은 보증금조차 낼 수 없는 사람도 대출이 가능한 ‘하나 월세론’을 지난해 출시해 세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월세가 급한 대부분의 저신용자들은 대출 조건의 높은 벽에 부딪혀 월세론에 가입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순수월세의 모순
지난해 10월 하나은행은 늘어나고 있는 월세 고객을 위해 ‘하나 월세론’을 출시했다. 월세자금이 필요한 세입자는 월세론을 통해 은행이 매달 집주인에게 월세를 자동 지급하고, 이후 여유자금이 생기면 자유롭게 상환할 수 있다.
하나 월세론은 부분월세와 순수월세로 나뉜다. 두 가지 대출 모두 월세를 대출해 주는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 방식으로 대출되고 한도는 최대 5000만원이다.
순수 월세 대출은 신용 대출 방식이고, 보증부 월세 대출은 세입자가 서울보증보험을 통해 보증서를 발급받으면 은행이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다. 임차보증금이 있는 고객의 경우 서울보증보험에 가입해 임차보증금의 80%에서 잔여 월세를 차감한 범위 내 최고 3억원까지 대출 받을 수 있다.
순수월세는 임차보증금이 없는 사람도 대출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월세론은 출시 당시만 해도 보증금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월세입자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보증금조차 없는 월세입자들은 신용등급이 낮아서 월세론 대출을 받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실상 대출 자격요건은 최소 8등급 이상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월세 보증금도 못 낼 정도의 형편에 있는 사람들의 신용등급은 대개 9∼10등급에 불과하다. 월세 대출이 급한 세입자에게 월세론은 ‘그림의 떡’에 불과한 셈이다.
또 월세론 역시 신용도에 따라 대출한도가 차등 적용된다. 대출금리는 최저 연 4.53%부터이지만, 신용등급에 따라 금리가 늘어난다.
따라서 8등급 이상의 월세입자가 간신히 대출한다 해도 실제 적용되는 대출 금리는 10%이상 치솟을 수 있다. 결국 월세론의 주된 고객층인 주거취약계층에 큰 혜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까다로운 대출 조건 “당초 취지 어긋나”
월세 급한 저신용자 외면 집주인 거부시 불가능
특히 월세론을 통해 대출을 받으려면 자신이 월세로 살고 있는 임대인인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집주인이 거부하면 대출이 불가능하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대출금을 못 갚으면 본인이 갚아야 하기 때문에 월세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까다로운 대출 조건 때문에 월세론은 세입자에게도 집주인에게도 꺼려지는 상품이다. 실적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의 지난 1년간 대출금액은 1건으로 1000만원에 그쳤다. 대출건수도 한 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하나은행 뿐 아니라 우리은행도 6건 7100만원, 신한은행 6건 7100만원, 외환은행 1건 1300만원, 하나은행 1건 1000만원, 기업은행 0건, 국민은행 0건 등으로 나타났다. 다 합쳐도 건수로는 14건, 금액으로는 1억6500만원에 불과하다.
아울러 월세론은 마이너스 통장 방식이다. 언제든지 상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마이너스 통장 특유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예컨대 매달 20일 이자 납부일에 1일 100만원을 쓰고, 10일에 대출금액을 갚았다고 해도 나머지 10일에 대한 이자가 빠져나간다. 즉 하루를 사용해도 이자가 나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원금을 다 갚고 신경을 안 쓰고 있으면 이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원금상환이 끝나면 해지하는 것이 좋다.
하나은행은 월세론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담당부서에 물어봐도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했다”며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실적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은행도 두손 들어
은행에서도 월세대출 자체가 잘못된 상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대출담당자는 “월세대출상품의 고객층은 월세도 못 낼 정도로 어려운 사람들이라 대부분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보증금조차 없는 사람들은 신용등급이 워낙 낮아서 솔직히 대출도 어렵고,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도 금리가 높다보니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월세 대출할 때 세입자가 보증서를 발급받게 돼 있는데 보증서 발급 관련 내용을 집주인에게 통지하는 과정에서 집주인이 거부 의사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따져보면 솔직히 다른 대출상품들과 다를 게 없다보니 은행들도 홍보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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