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세월호 참사' 여파가 6·4지방선거 정국을 뒤덮으며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선거의 '선'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에 선거운동을 사실상 '개점휴업'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야 지도부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섣부른 선거운동으로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해 후보자들에게 '자중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선거운동 없는 선거'가 치러질 조짐에 후보자들은 '좌불안석',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양새다.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기는 후보자들이 가장 활발하게 지역을 누비며 자기홍보에 나서는 시기다. 그러나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이후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가 조성되며 6·4지방선거운동은 '올스톱'됐다. 아직 당내 경선을 마치지 못한 여야는 선거일정상 8일 만에 경선 재개 방침을 밝혔지만, 예비후보의 선거운동은 제한적으로 진행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등 조용한 선거를 예고하고 있다.
조용한 선거
실제로 지방선거에 나서는 예비후보들은 선거운동 자체를 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하고 있다. 수도권 기초단체장에 도전하는 새누리당의 한 후보는 "세월호 침몰 이후 선거운동을 전혀 못하고 있다"며 "(당색이 들어간) 옷도 못 입고, 명함도 못 주고 있다. 당분간 아는 사람들과만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도의원으로 나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의 한 후보는 "분위기상 선거의 '선'자도 꺼내기 힘든 상황"이라며 "지방선거 출마가 처음인데, 저를 알릴 기회조차 없어 답답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급한 마음에 무리한 선거운동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은 사례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지난 22일 충남 논산시장 선거에 나선 새누리당 송영철 예비후보는 300여명의 주민이 참석한 대한노인회 행사장에 참석해 명함을 돌리고 악수를 하는 등 선거운동을 펼친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샀다.
새누리당 유정복 인천시장 예비후보도 지난 23일 지역 기초선거 출마자와 당원들을 대상으로 지지를 호소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일으켰다. 한 인터넷 매체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유 예비후보는 이날 인천 부평 기초의원 출마예정자 사무실에서 출마예정자들과 당원들을 만나 "구청장, 구의원, 시의원은 시장과 같이 가는 것"이라며 "누가 경쟁력 있는 후보냐, 설령 저에 대한 호불호가 있든 없든 다 떠나서 경쟁력 있는 후보와 같이 가야 한다, 정말 아주 제대로 후보를 선정해야 한다"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지방선거 정국 냉각
말실수 한 번에 훅 갈라…언행 조심조심
일부 후보들의 돌발적인 선거운동이 문제가 되자 새누리당과 새민련은 당 차원에서 조급해진 후보자들이 섣부르게 선거운동을 시작할 경우 국민정서와 맞지 않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선거운동 자제와 관련한 세부적인 지침까지 내리면서 자제를 당부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4일 취재진과 만나 "경선 일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해 경선을 재개한다"며 "(국민 정서상) 현실적으로 선거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선 투표 전 이틀 동안만 명함배포나 문자메시지 발송, 후보자 본인의 지지 전화 등만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새누리당이 조심스럽게 지방선거 운동 재개에 나서는 이유는 세월호 침몰 이후 정부의 부실대응 등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핵심관계자는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는 소속 후보의 아주 작은 실수도 당에 대한 십자포화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며 "언행 하나하나에 조심해 줄 것을 공문과 안내문 등을 통해 신신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민련도 아직 공천룰도 정하지 못한 지역이 있을 정도로 선거준비가 급하지만 섣부르게 움직이다 '국민정서를 외면한 채 선거운동에만 혈안이다'라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조용히 경선 등 선거준비를 재개하고 있다.
선거운동 없는 선거?
정치권의 이 같은 분위기에 여야 예비후보들은 '선거운동도 없이 선거를 치르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 처음으로 나서는 정치신인들은 존재감을 드러낼 방법이 없어 출마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리해진 현역 지자체장들도 최대한 몸을 낮춘 채 맡은 바 업무에 열중하는 분위기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사고가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개한 선거운동에 시민들의 거부감,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이 우려된다"며 "일부 후보들이 자꾸 자살골을 넣고 있어 국민적 분노가 더 커지고 있는데 당분간 후보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한 선거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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