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진도 출신으로 국전에 입·특선한 작가만 350명에 달합니다. 이러한 점을 키워 진도를 문화예술 특구로 지정하고 이에 일조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동양화가 길산 김길록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진도 지킴이'다. 서울 유명 갤러리의 무수한 스카웃 요청을 뿌리치고 진도를 지키고 있다. 전시회를 열 때 빼고는 진도를 떠나본 적이 없다.
전남 진도는 남도 문화예술의 보고로 일컬어진다. 진도는 운림산방의 소치일가며 6대 화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 동양의 서성 소전 손재형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서화가와 국악계의 명인 명창 인간문화재의 보고다.
유별난 고향 사랑
땅끝 해남을 지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불과 13척의 병선으로 133척의 일본 병선을 물리친 명량해협 울둘목을 건너면 예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진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 진도를 지키고 사랑하면서 문화예술의 도시로의 발전에 일조하고 있는 동양화가 길산 김길록 화백이 산다.
김 화백의 작업 공간이자 삶의 터전은 진도다. 전시회를 열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진도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는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갈 때도 그는 진도에 남았다. 스승은 따로 없다. 월성 이달재 선생을 어깨 너머로 사사했다. 스승을 추천받기도 했지만 마흔살이 될 때까지 혼자 버텼다.
197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75·76년 전라남도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한 그는 89년 국전에서 첫 입선을 했다. 이후 5차례 입·특선을 한 그였다.
그의 그림이 인기를 끌면서 서울로 올라오라는 스카웃 제의와 유혹도 수차례 받았다. 유학에 동양화 조교 자리까지 제안했지만 그는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점 때문에 진도를 떠나지 못했다. 이는 자연스레 생활고로 이어졌다.
"변화가 필요했어요. 단순히 화풍을 따라가기보다는 저만의 작품을 만드는 데 몰두했습니다."
김 화백은 한지에 유화를 접목했다. 정통 산수화에 근대적 풍경화를 입혔다. 단순히 자연경관을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진도의 소리를 함께 담아냈다. 그의 작품에는 전원에 앉아 소리를 하는 아낙네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고향 문화예술특구 지정 위해 앞장
정통 산수화에 근대적 풍경화 입혀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인간이 먼저 돼야 합니다. 몇몇 화가들은 제자를 수 백명 거느리고 있는 데 그렇게 해서 무슨 교육이 되겠습니까? 화가보다 인간이 먼저입니다."
김 화백의 제자는 지금까지 단 2명에 불과하다. 그 2명마저도 그림보다는 인간성을 먼저 함양시키려고 노력한다.
"무궁화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내 작품의 뿌리입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궁화는 숙명 같은 나의 삶 그 자체입니다."
김 화백은 우리나라 무궁화 심기 운동의 선구자다. 80년대 초 김 화백은 국방부 장관을 찾아가 나라꽃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제안했고 이후 무궁화 심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 전개됐다. 그로 인해 김영삼 정권 때 진도에 무궁화동산이 두 군데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20만평 규모의 공원이 만들어질 계획이다.
김 화백의 무궁화 작품은 청와대, 내무부 장관실, 교육부 장관실, 경찰대학교, 육군본부, 미국·영국 한국 대사관, 북한 김정일 전시관 등 여러 곳에 소장돼 있다. 그는 눈부신 작품활동으로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표창(예술부문), 내무장관 표창(예술부문), 국방장관 표창(예술부문), 육군참모총장 감사패(예술부문), 대한민국 경찰청장 표창(예술부문), 대한민국 경찰대학장 감사패(예술부문)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개인전은 진도와 세종문화회관, 인사동에서 10회, 단체전 10회와 초대전 3회를 열었다. 2005년에는 전라남도 미술대전 심사, 2011년 광주시 미술대전 심사, 2012년 전국 남동 미술대전 심사를 맡았다.
무궁화심기 선구자
김 화백의 꿈은 고향 진도의 문화예술특구 지정이다. 화가라는 본업 외에도 진도군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도를 문화특구로 지정하고 더 많은 갤러리 건립, 국립한국화미술관 진도 건립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진도 땅 어느 한 곳 그의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고 그의 눈길 어느 한 곳 머물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진도는 고려시대부터 나라와 뜻이 다른 선비들을 유배하는 귀양지로 사용됐습니다. 귀양 온 이들은 시름을 씻어내기 위해 시와 글을 지었고 그것이 그림이 됐고 소리가 됐습니다. 앞으로도 진도를 지키며 진도의 발전을 위해 일조하고 싶습니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김길록 화백은?]
▲전남 진도 출생
▲전남 미술대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특선 다수
▲인천 서해호텔 갤러리, 부산 쉴 미술관, 경남 화전 미술관 등 초대전 다수
▲전남 미술대전 심사, 광주 미술대전 심사, 남동 미술대전 심사
▲진도군청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