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 ‘날로 먹는’ 토익 대리시험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1: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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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 원하는 점수 산다

[일요시사=사회팀] 하반기 채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9월. 취업준비생들은 서류전형을 통과할 스펙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특히 토익은 스펙의 ‘필수요소’로 꼽힌다. 그런데 이 토익점수를 날로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돈으로 원하는 점수를 산다.




채용의 계절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제시하는 토익 점수는 700∼800점 이상이다. 기업의 채용 기준이 유연해지고 있다지만 토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다. 토익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2012년 토익 정기시험 응시인원은 약 208만명이고, 시험 응시목적으로는 50%의 수험자가 취업이라고 밝혔다.

950점=600만원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 토익점수가 900점 이상은 돼야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취업 준비생들은 취업난으로 치열해진 스펙 경쟁 탓에 토익 점수에 열을 올린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수험생들의 간절한 심리를 악용한 토익 대리시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리시험 관계자에 따르면 대리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전문 브로커를 만나야 한다. 브로커는 기본적으로 대리시험 의뢰자에게 나이와 기존 토익점수 등을 간단히 물어보고 업체가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체 개발한 고막 진동기를 사용한다. 스마트폰 전송 작업은 전파탐지기에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고막 진동기는 귀에 살짝 붙이기 때문에 절대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장비보다 더 중요한 게 고사장이다. 대리시험 브로커 A씨는 “서울이 아닌, 대구, 부산 등 지정 고사장에서 시험을 봐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이 서울보다 관리 감독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완벽한 대리시험을 위해서 시험 전날 합숙을 통해 충분한 예행연습을 한다”고 덧붙였다.


대리시험 의뢰로 알선된 토익 고수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이다. 이들은 토익 독해평가(R/C)를 20분 만에 다 풀고 답을 미리 전송한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950점 이상을 원한다면 600만원이라며 조금 비싸지만 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고. 의뢰인과의 통화는 대포폰을 이용하기 때문에 의뢰인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막 진동기 대리시험 외에도 의뢰자와 닮은 대리시험자가 직접 토익을 치르는 수법도 있다.

전문브로커 활개…전날 합숙하면서 예행연습
고막 진동기 사용하거나 신분증 위조해 대타

문제는 토익시험뿐만이 아니라 국가기술자격증 및 민간자격증도 대리시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리자와 계약 후 신분증만 새로 만들면 된다.

한국토익위원회 관계자는 “수험자의 휴대전화를 반드시 거둬가고 있다”며 “수험자가 시험 도중 화장실을 갈 땐 금속 탐지기로 점검해 휴대전화 사용을 막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 대책의 맹점은 휴대전화 부정시험에만 유효하다는 것. 기타 장비를 이용한 신종범죄는 막을 수 없다.

경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작년 토익 대리 시험 사건이 터지고 난 후 6개월 정도 인터넷 모니터링을 했지만 지금은 바빠서 계속하고 있지는 않다”며 “인터넷에서 워낙 광범위하게 토익 대리시험 광고가 있어서 다 찾아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 이모(25)씨는 “방학 동안 토익 공부에 모든 시간을 올인했다”며 “학원에서 밤낮으로 토익 공부를 했는데 대리 토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고 토로했다.

최근 대리시험을 봐준다고 속여 2억원을 가로챈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11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토익, 토플, HSK 등 각종 외국어 시험 및 국가고시 자격시험을 대신 봐준다고 광고해 지난 2011년 4월부터 최근까지 88명으로부터 2억300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K씨(41)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K씨를 도와 미국 캘리포니아 서버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든 C씨(25)도 사기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K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해외 서버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허위광고, 스팸메일을 통해 대리시험 및 성적표 위조 의뢰자를 모은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어 시험, 컴퓨터 관련 자격증, 공인중개사, 국가고시 자격시험, 대학 입학·편입시험 등 각종 다양한 시험을 대신 봐준다는 K씨의 사기 행각에 넘어간 피해자들은 “선금 200만원, 성적확인 후 200만원 입금”이라는 조건을 믿고 대리시험을 의뢰했다.

그러나 K씨는 선금만 받아 챙기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렸고, 챙긴 돈은 중국에서 업자를 통해 세탁한 후 추적을 피해온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또 K씨는 선금을 받은 뒤에는 해당 피해자의 IP 접속을 차단하고 도메인 주소도 주기적으로 변경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관리감독 부실한 지방 고사장서 기승
건당 200만∼300만원…점수마다 달라

시험 의뢰인들의 직업은 직장인, 대학생, 대학원생, 취업준비생, 자영업자 등으로 다양했다. 피해 금액은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000여만원에 달했다. 경기도에 사는 A씨는 의사 국가시험을 의뢰했다가 강씨에게 1000만원을 떼였다. 충북 지역의 직장인 B(36)씨는 전기기사 자격증 시험을 의뢰했다가 선수금 명목의 250만원을 날렸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대기업 직원 C(40)씨는 토익 성적표를 위조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80만원을 보냈으나 조악한 수준의 성적표가 배달되자 항의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실제 대리시험을 쳐 주겠다”라는 제안에 다시 넘어가 200만원을 더 뜯겼다.

피해자의 직업군을 살펴보면 직장인이 51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학원생 17명, 취업준비생 10명, 자영업자 3명으로 나타났다. 의뢰인이 가장 많이 의뢰한 시험은 토익이 44건, 텝스 7건, 토플 7건 등이었다.

하지만 K씨는 실제로 시험을 대리할 의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관련 자격증, 공인중개사, 국가기술자격, 대학 입학·편입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신청을 받았다. 실제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시험 대리를 상담한 사례도 있었다.

공부하면 바보?

경찰 관계자는 “의뢰인도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형법 제134조 제1항)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 만큼, 잘못된 선택을 해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심각한 취업난과 직장 내 치열해진 ‘스펙’ 경쟁 속에서 절박한 상황의 수험생들을 노린 대리시험 관련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만일 의뢰한 대리시험이 실제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의뢰자 또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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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