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천리' CJ 수사 사전기획설 막전막후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1: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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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짜인 각본대로 이재현 몰이?

[일요시사=경제1팀]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코너에 몰아세운 검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의기양양'자신만만한 모습. 실형이 확실하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수사 과정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검찰이 미리 짜인 각본대로 움직였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사전기획설 등 음모론이 그래서 나온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구속된 것은 7월18일. 2078억원의 탈세·횡령·배임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 963억원을 조성하고 회사에 569억원의 손실을 입혔다. 국내외 비자금을 차명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세금 546억원을 포탈한 혐의도 포함됐다.

대기업 수사치고
상당히 짧은 기간

검찰은 CJ 수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자평했다. 성과가 상당했다는 것. 검찰 내부에선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역외탈세 범죄가 그 실체를 규명하는 데 매우 어려운 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충분한 사전 내사와 철저한 압수수색, 사법공조 등의 방법을 동원해 최초로 재벌 총수의 역외탈세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검찰은 "CJ그룹은 회장실 산하에 총수 재산을 관리하는 전담팀을 두고 조직적·지속적으로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며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재벌총수의 대규모 역외탈세 범죄를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도 "아무리 (의혹을 검증할 단서를) 찾아도 100%는 불가능하고 보통 70∼80%를 밝히면 최상이라고 보는데 이번 CJ 수사가 그런 경우"란 말이 흘러나온다.

검찰은 이 회장뿐만 아니라 '대어'들도 낚았다. 검찰은 지난달 13일 CJ그룹의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을 구속했다. 앞서 송광조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CJ 측으로부터 골프접대 등을 받은 의혹이 제기돼 지난달 1일 사표를 내기도 했다.

CJ 수뇌부도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6월27일 비자금 관리 업무를 총괄한 CJ홍콩법인장 신동기 부사장이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범행에 가담한 성모 재무담당 부사장, 배모 전 CJ일본법인장, 하모 전 CJ㈜ 대표도 불구속 기소됐다. 중국에 체류 중인 김모 중국총괄 부사장은 지명수배 후 기소중지됐다.


재판부는 이르면 올 연말께 선고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이 회장은 최소 5년 이상 최대 15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재판을 앞두고 자신만만한 모습. 실형이 확실하다는 표정이다.

1심 재판 앞두고 음모론 등 각종 의혹 무성
2개월만에 후딱…속전속결 수사배경 의문

그러나 재계엔 CJ 수사를 두고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전기획설 등 음모론이 그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게 CJ 비자금 수사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5월21일 CJ그룹 본사 압수수색과 함께 수사에 본격 착수한 지 35일 만인 6월25일 이 회장이 검찰에 소환됐다. 이어 23일 후 이 회장이 기소됐다. 수사가 2개월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SK(9개월), 한화(5개월), 태광(3개월) 등 다른 대기업 수사에 비해 상당히 짧은 기간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1년 4월 '선물투자 수천억원대 손실'사실이 공개됐다. 그해 12월 검찰에 소환됐고, 이듬해 1월 불구속 기소된 데 이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0년 9월 장교동 본사 압수수색 동시에 검찰의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12월 소환조사를 받았고, 이듬해 1월 불구속 기소됐다. 8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2010년 10월 장충동 태광산업 본사 압수수색이 수사 신호탄이었던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이듬해 1월 소환조사에 이어 구속됐다.

USB 하나에
무너진 CJ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짧은데도 검찰이 큰 성과를 낸 것은 철저한 사전기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검찰은 CJ그룹의 남산본사, 제일제당, 인재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할 당시 내부 사람이나 알 수 있는 각 층별 부서 위치를 완벽히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재무팀 금고 위치와 관련업무 부서 핵심 인력까지 미리 속속들이 파악하고 들이닥쳤다고 한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가 관련된 대형 사건을 두달 만에 수사를 종료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며 "(CJ 수사는) 오래전부터 충분한 단서를 가지고 수사에 임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CJ 수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CJ 전 재무팀장 이모씨다. 단초는 그의 USB. 이씨가 갖고 있던 USB 안에는 일본 빌딩 구입과 이 회장 횡령액, 국내 차명재산 관리 내용 등 CJ그룹의 비자금 기록이 담겨 있었다.

이씨가 작성한 금전출납 기록엔 '국세청 3억원'이라고 구체적인 금액까지 명시돼 있었다. 세간의 화제가 됐던 이 회장에게 보낸 편지도 USB에 내장돼 있었다. 10장 가량의 이 편지는 2007년 이씨가 이 회장의 비자금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 퇴직 당한 뒤 복직을 요구하며 쓴 사실상 협박용이었다. 편지엔 "CJ 재무팀이 관리하던 차명주식을 매각해 대금을 세탁하고 해외 미술품을 구매했다. 문제되지 않게 잘 처리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적극적인 협조도 주효했다. 일례로 국세청 로비의 경우 검찰은 CJ 측이 꼼짝없이 백기를 들게 한 증거를 들이댄 것으로 알려졌다. 허병익 전 차장이 돈을 요구한 정황, 4인 회동(이 회장-전군표-허병익-신동기) 등에 대해 이씨가 구체적으로 진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알고도…'검찰 5년전 확인
'이제와서 왜?' 의혹투성이

검찰은 이씨의 진술로 이 회장 측을 압박했다. 이 회장과 신 부사장이 부인하려 해도 이씨의 진술과 메모, 심지어 4인 회동 당일 호텔 면세점에서 프랭크 뮬러 시계를 샀던 세금계산서까지 검찰이 확보해 보여주는 데 버티기 어려웠을 거란 후문이다.

결국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마련된 셈이다. 검찰 조사를 받았던 CJ그룹 관계자는 "검찰이 각종 자료와 진술 등 워낙 많은 것을 확보해놓아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실 이씨는 2007∼2008년 이미 수사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때 왜 밝히지 못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역시 기획수사설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묻혔던 사건을 왜 갑자기 꺼냈냐는 것이다. 정보와 증거를 입수하고도 몇년 뒤에야 수사에 착수한 것을 두고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CJ 비자금 의혹은 5년 전 이씨가 사업추진 과정에서 살인청부 의혹에 휘말리면서 처음 드러났다. 이 회장의 '금고지기'였던 이씨는 사채업자에 비자금을 빌려줬다가 회수하지 못하자 살인청부를 시도했다는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경찰이 이씨가 살인을 교사했다는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USB가 발견됐다. 경찰은 이씨로부터 파손된 USB를 압수했지만 제대로 복구하지 못했고, 보다 못한 검찰이 넘겨받아 직접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분석 작업 끝에 USB를 복원했고, 여기에서 CJ 비자금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국세청 로비 전 재무팀장 USB 통해 확인"
이재현-신동기-전군표-허병익 회동도 진술

당시 검찰은 비자금 조성 사실을 알고도 조세포탈에 대해서만 국세청에 통보하고 수사를 일단락지었다. 국세청도 CJ에 대해 세무조사나 고발을 하지 않았다. CJ로부터 1700억원의 세금을 분할 납부 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검찰은 2010년 금융정보분석원(FIU)이 CJ가 해외에서 조성한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 정보까지 넘겨줬지만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고작 2008년 12월 이씨를 구속기소하는 데 그쳤다. 이씨는 1심 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은 입증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고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 것은 현 정권 들어서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검찰 안팎에서 대기업 사정설이 돌았고, 그중 한 곳이 바로 CJ그룹이었다.

특히 5월5일∼10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당시 CJ그룹이 경제사절단에서 제외되자 말들이 많았다. 검찰의 CJ그룹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청와대가 이를 인지하고 이 회장을 방미 경제사절단에서 제외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열흘 뒤인 5월21일 CJ그룹 본사 압수수색과 함께 수사가 시작됐고, 7월18일 이 회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구속기소된 첫 대기업 총수가 됐다.

재계 관계자는 "CJ 수사를 둘러싸고 소문과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미리 짜인 각본대로 움직였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이미 5년 전에 마무리됐던 사건을 검찰이 다시 수사에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정권 들어
사정설 돌아

검찰은 CJ 수사를 둘러싸고 시중에 돌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검찰 관계자는 CJ 수사 음모론에 대해 "이번 수사는 충분한 내사로 단서가 확보돼 착수한 것이다. 시중 각종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사면초가에 놓인 CJ그룹. 이 회장의 건강도 좋지 않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도 이런 상황에서 가져갈 수 있는 전략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변호인단도 횡령한 금액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실이 없고 대부분 회사 임직원들에게 격려금으로 사용했다는 점 등을 강조해 정상참작 부분을 인정받는 데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CJ 사건'유사 사례

작은 단초가 대형 사건으로

USB 하나가 대기업 수장을 삼킨 CJ 사건처럼 작은 단초가 대형 사건으로 확대된 사례는 더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1972년 6월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프랭크 윌즈는 건물 최하부 계단의 후미진 곳과 주차장 사이 문을 이상한 테이프로 감아 놓은 것을 발견했다. 의심이 든 경비원은 워싱턴 시경에 신고했고, 경찰은 같은 호텔에 있던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본부 사무소에 설치한 도청기를 손보기 위해 불법 침입한 5명의 남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그런데 범인 중 한 명의 수첩에서 백악관 전화번호가 발견됐다. 미 대통령이 최초로 중도 사임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처럼 작은 단초에서 시작됐다.

'방통대군'으로 불리던 MB정부의 실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비슷한 경우다.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은 다른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찰이 브로커 이동율씨의 수첩에서 최 전 위원장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우연히 드러나게 됐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이씨의 운전기사였던 최모씨가 이씨의 승용차 트렁크에 돈 상자를 옮겨 실은 뒤 찍은 사진이 드러났고, 결국 최 전 위원장은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면치 못했다.

2008년 삼성특검 땐 협박편지가 등장했다. 삼성증권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 퇴사한 박모씨는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 폭로 이후 회사 간부들에게 "내가 차명계좌를 만들어 관리했다. 5억원을 주지 않으면 외부에 비자금 자료를 넘기겠다"는 내용의 글을 보냈다. 100여개 차명계좌 리스트도 첨부했다. 협박편지는 특검이 삼성을 압수수색할 때 발견됐고, 이후 특검이 차명재산을 파고드는 단초가 됐다. 특검팀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전 직원의 협박 메일을 단서로 차명재산 자료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재현 병실은 지금…

VIP 환자로 만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입원한 서울대병원 VIP 병실은 만실이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12층 VIP 병실은 모두 4곳.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막는 이곳은 하루 입원비가 40만∼100만원에 달한다. 이곳엔 현재 이 회장을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입원 중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29일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신장 기증자는 이 회장의 부인. 지난달 20일 구속집행이 정지된 이 회장은 11월28일까지 입원할 예정이다. 상황에 따라 입원 기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회장의 주거지는 장충동 자택과 치료를 받는 서울대병원으로 제한된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폐렴으로 입원해 지금까지 병실에서 지내고 있다. 입원 당시 상태가 악화돼 폐렴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지금은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퇴원 일정은 미정이다. 김 회장은 우울증과 호흡곤란 증세로 구속집행정지를 받아 지난 1월부터 병원에 머물고 있다. 구속집행정지 기한은 11월7일까지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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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