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자금 추적 '200억 건물' 미스터리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6.26 13: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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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만 빌딩' 털면 '검은 돈' 나온다

[일요시사=경제1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과 금감원도 힘을 보탠다. 국회에선 '전두환 추징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비웃듯 그의 가족들 재산은 2400억원이나 된다. 모두 은닉처로 의심된다. 그중 가장 구린내 나는 한곳을 털어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이 흘러간 것으로 의심되는 곳은 이른바 '전재만 빌딩'이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있다.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 소유의 '신원프라자'가 바로 그곳이다. 890㎡(약 270평) 대지면적에 지하 4층~지상 8층짜리 건물인 신원프라자의 공시지가는 80억원. 실거래가는 이를 훨씬 웃도는 100억∼200억원을 호가할 것이란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 회수 문제가 만료 시효(10월)를 앞두고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도심 한복판에 있는 신원프라자가 은닉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빌딩을 둘러싼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1]
건축자금 출처는?

우선 재만씨의 건물 취득 과정이 의문이다. 신원프라자의 부동산 등기부등본 상엔 1997년 1월 이후 상황만 기재돼 있다. 때문에 2002년 5월 재만씨의 매입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언론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내용도 이 시점부터다.

그러나 재만씨는 빌딩의 건축주였다. 건축물대장 확인 결과 재만씨가 직접 신원프라자를 지은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1994년 6월. 재만씨의 명의로다. 1995년 7월 공사를 시작한 건물은 1996년 11월 완공됐다.

재만씨는 올해 42세(1971년생). 이를 감안하면 건축허가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란 계산이다. 재만씨는 1990년 경복고를 졸업하고 1992년 재수 끝에 연세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그가 신원프라자를 짓겠다고 나선 게 대학교 2학년 때인 셈이다.


건물 취득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대 초반 무슨 돈으로 건물을 지었냐는 것이다. 어린 나이로 어떻게 '큰돈'을 마련했는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당시 신원프라자 부지의 공시지가(㎡당)는 161만원. 현재는 858만원으로 올랐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토지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보다 수배∼수십배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재만씨는 부지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돈방석'에 앉았다.

3남 소유 한남동 신원프라자 의문투성이 
'구린내가 풀풀…'은닉재산 의혹 급부상

한 중개업자는 "신원프라자는 대한민국 부촌인 한남동, 그중에서도 노른자라 할 수 있는 고급주택가에 위치해 있다"며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이 같은 위치를 감안하면 빌딩값은 얼추 100억∼200억원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2003년 5월 한 언론을 통해 재만씨가 신원프라자를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자 "한남동 건물은 전 전 대통령과 전혀 상관이 없다. 재만씨의 장인이 재산분배 차원에서 미리 상속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전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킨다. 재만씨가 건축허가를 받은 것은 결혼 1년 전이다. 그는 1995년 4월 동아원그룹 이희상 회장의 장녀 윤혜씨와 결혼했다. 재만씨는 25세 때인 연세대 3학년 재학 중이었고, 윤혜씨는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한 해였다.

재만씨의 한 측근은 "재만씨와 윤혜씨는 결혼 2년 전인 1993년 친지 소개로 처음 만나 1994년 가을 약혼식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처갓집의 상속이 있었다면 시기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이 역시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의 약혼자에게 건물을 통째로 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한남동 신원프라자 빌딩은 지금까지 재만씨가 30대에 매입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다"며 "만약 재만씨가 20대 초반에 건물을 지은 것이 사실이라면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을 의심할 만하다"고 말했다.

[미스터리2]
재매입 이유는?

신원프라자를 둘러싼 수상한 거래도 포착됐다. 재만씨의 수중으로 들어간 정황이 석연치 않다. 건축 자금의 출처가 '전두환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문은 이 과정에서 더욱 커진다.

1996년 11월 신원프라자를 완공한 재만씨는 1998년 1월 김모씨에게 매각했다. 이후 2002년 5월 재만씨가 다시 건물을 매입했다. 자신이 지은 건물을 1년 만에 팔았다가 4년 뒤 다시 산 것이다. 수상한 거래가 아닐 수 없다.



토지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거래가 이뤄졌다. 당초 신원프라자 부지의 소유주는 또 다른 김모씨였다. 건축허가 두달 뒤인 1994년 8월 이모씨에게 넘어갔다가 건물이 다 지어진 직후인 1997년 1월 대지권(대지사용권)으로 전환됐다.

대지권은 건물의 각층 또는 각호 소유자가 건물 부지를 나눠 갖는 권리다. 신원프라자의 경우 중소기업 등이 입주해 있는 집합건물로 지하 4개층과 지상 8개층 등 11개층이 각각 부동산으로 나눠져 모두 재만씨 소유로 등기돼 있다. 결국 건물뿐만 아니라 땅 주인도 재만씨란 얘기다.

그렇다면 재만씨는 왜 건물을 매각했다가 재매입한 것일까. 의문의 열쇠는 그의 부친 전 전 대통령에 꽂힌다.

1988년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전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과 5공 비리로 책임 추궁을 당하다가 1988년 11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군사반란 혐의 등으로 1995년 12월 구속,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 사이 비밀리에 신원프라자가 지어졌다.

23세때 뭔 돈으로…건축비용 어디서?
검찰 나서자 '팔고' 사면 이후 '재매입'
차명보유…명의신탁?

문제는 그 이후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 직후부터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회수하기 위해 비자금을 찾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재만씨가 건물을 조용히 처리한 시점(1998년 1월)과 맞물린다. 당시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은 물론 친인척 등 차명 재산을 뒤졌으나 신원프라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추징금은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4년5개월 뒤인 2002년 5월 재만씨는 신원프라자를 다시 사들였다.

부동산 전문가는 "자신의 건물을 팔았다가 다시 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돈이 오간 거래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일부의 경우 일시적으로 재산을 숨기기 위해 제3자의 명의를 빌려 차명으로 보유하다 되돌려 받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명의를 실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놓는 부동산 명의신탁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실제 재만씨와 거래한 김씨의 배경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김씨가 빌딩을 매입할 당시 등기부등본에 기재돼 있는 그의 주소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아파트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청담동이지만, 김씨가 지금까지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파트는 전용면적 84㎡(약 25평)로 소형에 속하는 편이다. 게다가 ○○아파트 명의도 다른 사람이다.

한남동 8층짜리 건물을 매입한 재력가가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김씨가 재만씨에게 건물을 판 뒤에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지 않고 이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는 점도 재만씨와 김씨의 관계를 의심케 한다.


재만씨가 재매입한 시점에 대해선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왜 하필 2002년 5월이냐는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그해 5월14일.

우연일까. 당시는 한·일 월드컵(2002년 5월31일∼6월30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렸다. 정치·사회적 이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 함성 속에 묻혔다. 오로지 '축구'뿐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도 '4강 신화'로 한동안 붉은 물결이 계속됐다. 2002년 말엔 대선까지 치러 정신없는 한 해였다.

[미스터리3]
장인 개입했나?

전 전 대통령 비자금과 그의 가족들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재만씨도 여기저기서 제기하는 비자금 은닉 시나리오에 자주 등장한다. 재만씨에겐 뒤를 받쳐주는 재력가 집안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의 장인인 이 회장은 한국제분, 동아원 등 20개 계열사(해외법인 제외)를 거느린 동아원그룹 오너. 이 회장은 검찰의 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조사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딸과 결혼한 재만씨에게 축하금으로 건넨 160억원 상당의 채권이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이 돈을 비자금으로 보고 압류했지만,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았다"는 이 회장의 주장에 다시 돌려줬다. 국세청이 이 회장에게 증여세 54억원을 과세하는데 그쳤다.

당시 재만씨의 한남동 빌딩도 도마에 올랐다. 검찰은 '전두환→이희상→전재만'으로 비자금이 흘러가 빌딩에 묻힌 것으로 확신했지만, "상속해준 것"이라고 반박한 이 회장은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한남동 빌딩과 이 회장이 무관치 않아 보이는 정황도 드러났다.


등기부등본을 잘 살펴보면 수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재만씨와 돈거래를 한 이모씨다. 이씨는 2006년 12월 재만씨를 채무자로 신원프라자에 3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재만씨가 빌딩을 담보로 이씨에게 30억원을 빌린 것이다. 근저당은 2011년 9월 해지됐다.

문제는 이씨의 실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씨는 현재 동아원 플랜트사업본부 전무로 재직 중이다. 이씨는 '이희상 가신'으로 추정된다. 특히 근저당 시기와 이씨의 행보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장인 회사 임원과 돈거래 
환수 위기 처하자 대비용?

한국제분 전무이사를 맡고 있던 이씨는 30억원 근저당을 설정한 직후 '점령군'자격으로 동아원에 입성했다. 동아원그룹은 2007년 1월 동아원(당시 에스씨에프)을 인수했고, 3월 이씨를 감사로 선임했다. 이 회장이 2008년 3월 동아원 대표이사로 취임하자 이씨는 2009년 3월 등기임원에 올랐다. 관리총괄, 감사위원장, 생산본부장 등을 지낸 이씨는 2011년 3월 임기가 만료됐고, 3개월 뒤 근저당이 해지됐다. 동아원 상무(해외법인)로 재직 중인 재만씨도 이 기간 줄곧 임원으로 재직해 이씨와 모를 리 없다.

지난해 전무로 복귀한 이씨 또한 김씨와 마찬가지로 3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을 만한 여력이 의심된다. 이씨는 재만씨에게 돈을 빌려줄 당시 노원구 중계동 ○○○아파트에 거주했었다.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115㎡(약 35평)로, 현 시세는 5억∼6억원이다.

이씨는 30억원을 돌려받은 지금도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이씨가 그만한 재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더구나 이씨는 은행에서 2400만원을 대출받는가 하면 구청에 세금이 밀려 집을 압류당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의 상황을 보면 재만씨에게 밀려준 30억원의 출처와 돌려받은 30억원이 어디로 갔는지 용처가 확실하지 않다"며 "한남동 건물이 비자금으로 지목돼 환수될 위기에 처하자 재만씨와 이 회장이 짜고 회사 임원을 내세워 돈 거래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전 대통령은 29만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추징금 2205억원 중 1672억원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이를 회수하기 위해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과 금감원도 힘을 보탠다. 국회에선 '전두환 추징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를 비웃듯 그의 가족들 재산은 2400억원. 재만씨의 재산만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대에 이른다. 모두 은닉처로 의심되는 만큼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주문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전재만 처가' 동아원그룹은?>

화려한 혼맥 '대통령 사돈기업'

동아원그룹은 고 이용구 창업주가 1952년 군산에 설립한 한국산업이 모태로 현재 제분(한국제분·동아원)과 사료(대산물산·카페), 식품(동아푸드·해가온), 와인(나라셀라·단하지앤비·단하유통·PDP와인), 수입차(FMK), 수입의류(모다리슨)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창립 56년 만에 이 창업주의 호를 딴 운산그룹에서 사명을 바꾼 동아원그룹의 2011년 계열사 전체 매출은 8137억원. 2015년까지 1조원이 목표다.

동아원그룹은 '대통령 사돈회사'로 유명하다. 1993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직후 경영일선에 뛰어든 이희상 회장은 세 딸이 있는데, 3명의 전·현직 대통령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사돈관계다. 장녀 윤혜씨의 남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

차녀 유경씨는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의 동생 신영수씨의 아들 기철씨와 혼인했다. 신 회장 사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였다. 신 회장의 장녀 정화씨와 재헌씨는 지난해 이혼했다.

3녀 미경씨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과 결혼했다. 효성가는 조 회장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동아원 일가도 이 대통령과 한다리 건너 사돈인 셈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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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