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④김석원의 쌍용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14 13: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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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후 어찌 사나 봤더니…지금도 '떵떵'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쌍용그룹은 늦었다고 생각을 못 해 무너졌다. 총수 한 사람의 오판과 실수가 재계를 호령했던 우량그룹의 해체를 불러온 것이다.

쌍용그룹은 김성곤 창업주가 1939년 대구에서 설립한 소규모 비누공장 삼공유지를 모태로 출발했다. 48년 금성방직을 설립하면서 기반을 확립한 쌍용그룹은 62년 쌍용양회, 67년 쌍용제지, 67년 쌍용해운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자산 15조
왜 무너졌나?

73년 쌍용정공, 76년 쌍용중공업과 쌍용정유, 77년 쌍용건설, 78년 쌍용엔지니어링을 설립한 쌍용그룹은 80년대 들어서서는 84년 쌍용투자증권, 85년 쌍용경제연구소, 88년 쌍용투자자문 등을 설립하면서 건설업, 중화학공업, 금융업 등 사업다각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75년 김 창업주의 갑작스런 작고로 31세의 나이로 그룹을 이어받은 장남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은 쌍용그룹의 '제2성장'을 이끌었다. 73년부터 시작된 쌍용양회 동해공장을 연간 560만 톤 규모로 증설하는 프로젝트를 7년 만에 이뤄냈고 76년에는 이란의 국영석유공사(NICO)와 합작하여 쌍용정유를 설립하고 80년에 지분을 전량 인수, 쌍용정유를 국내 3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같은 해 김 회장은 쌍용중공업 사장직에 올라 사업 안정화를 이끌었고 83년에는 효성증권(쌍용증권)을 인수해 국내 굴지의 증권사로 성장시켰다. 김 회장이 그룹을 이끈 지 20년이 되던 95년에는 74년 대비 192배(15조524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였다.


재계 7위 총수 결정적 실책 '자동차·정계행'
결국 그룹 공중분해…매각 계열사 명맥만 유지

성장가도를 달리던 쌍용그룹이 '몰락'이라는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자동차 산업을 만나면서부터다. 이미 60년대 말 쌍용그룹은 하동환자동차(쌍용자동차)라는 이름의 회사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바 있다.

80년대 들어 쌍용자동차는 코란도와 무쏘라는 지프형 자동차를 선보이면서 급격히 부상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부터 현대, 대우, 기아자동차의 공세로 쌍용자동차는 사세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안팎으로 자동차를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포기가 답이었다. 김 회장은 포기 대신 투자를 선택했다. 쌍용그룹은 추가적인 투자와 신모델 개발을 위해 용평리조트 등을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렸다. 90년대 중반 쌍용그룹 대부분의 자산은 은행 담보로 잡혔다. 그룹 내부에서 자동차사업 중단을 요구하던 인사들은 줄줄이 잘려나갔고 그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됐다.

이러한 김 회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벽을 넘지 못했다. 92년 쌍용자동차의 내수 점유율은 1.6%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계속 추락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95년부터 4년간 3조원을 쌍용자동차에 투입했다.

현대·기아차 벽
넘지 못한 쌍용차

김 회장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은 때였다. 결국 그는 자동차사업을 접기로 하고 쌍용자동차 매각에 나섰다. 김 회장은 한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당시 자동차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던 삼성그룹과 대우그룹에 동시 매각 협상을 벌였다. 오판이었다. 이중 매각 협상을 삼성에서 알아차렸고 삼성은 쌍용자동차 인수에서 발을 뺐다. 대우그룹도 삼성이 인수를 포기하자 대폭 내린 인수가격을 제시하고 나섰다. '나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까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김 회장은 결단을 못 내리고 한동안 우왕좌왕했다.


그러는 동안 쌍용그룹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조원의 돈을 빌려준 은행들과 채권단은 김 회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고민하던 김 회장은 쌍용차 처리를 채권단에 넘겼고 채권단은 대우에 매각협상을 재개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쌍용자동차 채권단에 인수 조건으로 막대한 추가지원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였고 쌍용자동차는 대우그룹 품에 안겼다. 김 회장은 단돈 1원도 못 건졌다. 98년 1월, 대우그룹에 쌍용자동차를 넘겼을 때 쌍용그룹 계열사들이 떠안은 쌍용자동차의 부채는 공식적으로 1조7665억원이나 됐다. 쌍용자동차에 투자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급보증을 섰던 계열사들은 줄줄이 매각의 길을 걷게 됐다.

그룹의 고속성장을 이끌 만큼 뛰어난 경영성과를 보이던 김 회장이 포기할 때를 잡지 못한 이유는 뭘까. 물론 자동차 사업에 대한 김 회장의 욕심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잠시 한눈을 팔았던 것도 무시 못 할 이유 중 하나다.

그룹 분해되도
돈 걱정 없다

김 회장은 정계 진출이라는 특별한 외도를 했다. 쌍용자동차의 부실로 그룹이 위태로웠던 96년 김 회장은 15대 국회의원(민자당 소속)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97년 쌍용자동차 부실 문제가 본격화되고 외환위기까지 겪으면서 98년 2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그룹 회장으로 복귀했지만 약 2년간의 외도는 김 회장의 판단력을 흐려놓기에 충분했다. 정치와 자동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던 김 회장은 두 마리 모두 놓치는 패착을 겪었다.

계열사 매각에 나선 쌍용그룹은 쌍용자동차를 대우그룹에 넘긴 98년 쌍용투자증권을 미국의 H&Q AP에 매각하고 99년 쌍용정유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사 펀드에 매각했다. 2000년에는 쌍용중공업(현 STX)을 한누리투자증권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2002년 쌍용화재를 중앙제지에 매각했다. 2003년에는 용평리조트를 세계일보에 매각했으며 쌍용캐피탈, 남광토건을 계열분리 했다.

주력회사인 쌍용양회는 일본 태평양시멘트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대우그룹 해체로 다시 매물로 나온 쌍용자동차는 중국에 넘어갔다가 다시 인도에 팔려나갔다. 쌍용건설은 한국 자산관리공사가 주인이 됐고 ㈜쌍용은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쌍용그룹은 '쌍용'이라는 이름만 남기고 사실상 공중분해된 셈이다.

그룹의 모태인 쌍용양회가 2000년 12월 경영권이 넘어가자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김석원 전 회장은 2004년 말 쌍용그룹 재산 310억원을 개인 명의의 재산으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이밖에도 김 전 회장은 ▲계열사인 쌍용양회가 소유한 42억원짜리 임야를 차명으로 헐값에 사들인 혐의 ▲그룹 계열사가 운영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영업권을 비서 명의로 만든 회사를 통해 싼값에 사들인 혐의 ▲폭락한 자신의 계열사 주식을 쌍용양회에 비싼 값에 팔아 54억원의 이익을 남긴 혐의 등을 받았다.

2007년 2월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 특별사면을 받은 김 전 회장은 친인척, 과거 참모들과 미래 사업에 대한 구상을 하면서 재기를 노리다가 이른바 '신정아 게이트'에 연루된 사실이 포착되면서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위장 계열사 4곳에 1271억원을 부당지원한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 전 회장은 즉각 항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2011년 12월에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과 사회봉사 200시간을 최종 선고 받았다.

쌍용그룹 해체 당시 김 전 회장은 명목상으로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현재 김 전 회장은 전직 국회의원 자격으로 헌정회로부터 매달 12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 게 전부다.


부인은 미술관장으로, 아들들은 대주주로
태아산업 자식들이 장악 "사실상 가족회사"

하지만 김 전 회장의 가족들은 '120만원'에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먼저 김 전 회장의 부인 박문순씨는 성곡미술관장을 맡고 있다. 2007년 11월 신정아 게이트의 여파로 잠시 관장직을 떠난 적이 있지만 지난 2011년 3월 관장으로 복귀했다. 박씨가 관장직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에는 김 전 회장의 누나인 김인숙 전 국민대 교수가 미술관을 운영했다.

김 전 회장의 장남 지용씨는 용평리조트에서 전무로 근무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녀 유희씨의 남편이기도 하다. 특히 지용씨는 올림픽 개발효과를 누리고 있는 평창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용씨는 현재 횡계리 소재(613-39외 3필지) 논밭 7000여m²을 보유하고 있다. 

지용씨는 2004년 김 전 회장이 구속될 당시 받았던 혐의 중 하나인 편법 매각의 대상, 고속도로휴게소 운영권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태아산업의 최대주주다.

98년 8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세워진 태아산업은 현재 충북 음성에 두 곳, 경기도 여주에 한 곳 등 총 세 곳의 휴게소를 운영하면서 2011년 440억여원의 매출액과 14억여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회사의 주주 구성을 보면 지용씨가 34.0%,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문규씨가 16.2%, 지용씨의 동생인 지명·지태씨가 각각 24.9%를 갖고 있다. 박씨는 김 전 회장의 처남이다. 


쌍용그룹 해체 전까지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차남 지강씨는 그룹 해체 후 국내로 들어와 2002년 친인척 등과 함께 자본금 1억원으로 기획이벤트와 쇼핑몰 등을 하던 동아시아회사를 창업했다. 지강씨는 동아시아회사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2003년 8월 IT업체 진두네트워크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수 중도금을 납입하지 못해 주식양수도 계약이 깨졌다. 동아시아회사를 나온 지강씨는 특별한 직업 없이 투자활동을 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지강씨는 2011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지강씨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 화장실에서 문고리에 목을 매 숨진 채 여자친구에게 발견됐다.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날 오전 2시30분께 여자친구에게 자살을 암시한 뒤 연락이 끊긴 것으로 전해졌다.

스스로 목숨 끊은
비운의 황태자

쌍용그룹 해체 후 쌍용건설 사장직 내놓고 물러났던 김 창업주의 차남 석준씨는 그의 경영 능력을 필요로 한 직원들의 요청으로 다시 쌍용건설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후 회사 정상화를 이뤄냈지만 최근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이에 따라 해임안까지 통보되는 등 위기를 맡고 있다.

김 창업주의 3남 김석동 전 쌍용증권 회장은 1986년 한상태 세계보건기구 명예사무처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했다. 그는 그룹 붕괴 이후 잇츠티비, 영화직물 등의 개인사업을 통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의 쓴맛을 봤다. 최근 또 다른 사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1남2녀(지호-지원-지영)를 두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쌍용그룹은?>

▲1939년 삼공유지 설립
▲1948년 금성방직 설립
▲1960년대 쌍용양회, 쌍용제지, 쌍용해운 설립, 하동환자동차(쌍용자동차) 인수
▲1970년대 쌍용정공, 쌍용중공업, 쌍용정유, 쌍용건설, 쌍용엔지니어링 설립(1975년 김석원 회장 취임)
▲1980년대 쌍용투자증권, 쌍용경제연구소, 쌍용투자자문 설립
▲1998년 쌍용자동차 매각, 부채 약2조원, 계열사 매각 시작
▲2002년 쌍용양회 워크아웃 돌입, 쌍용그룹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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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