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테마1>돈 권력 그리고 사람들

정권의 2인자들의 권불십년가



‘권력자 오른팔’ 2인자, 정권교체마다 수난사 되풀이
‘그림자, 황태자, 복심’서 각종 게이트 배후로 철창행

세상에 영원히 푸르른 것은 없다. 권력은 특히 그렇다. 권세는 십년을 가기 힘들다는 ‘권불십년’이라는 말은 오랜 시간 증명돼 왔다. 특히 정권의 중심에 섰던 이들은 정권교체와 함께 누구보다도 빠르게 추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전 안기부장,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전 의원,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씨,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 의원, 노무현 정부의 이광재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등 ‘2인자’로 불렸던 이들의 부상과 몰락은 판에 박힌 듯한 모습이다. 한때 최고 권력자의 곁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날이 바뀌며 차가운 검찰의 칼날 앞에 놓였다. 정치권을 향한 야망도 좌절되기 십상이다. 이들 중 몇몇은 정계 복귀에 성공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안고 쓸쓸히 돌아선 이들도 적지 않다. 잠깐의 권세 뒤 긴 고난을 견뎌야 했던 각 정권 ‘비운의 2인자’들을 따라가 봤다.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되면서 정권 핵심인물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 구속되고 있다. 이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이었던 ‘좌희정’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과 ‘우광재’ 민주당 이광재 의원 등 전 정권 실세들이 포함돼 있다.

권력 그림자 뒤로
열흘 붉은 꽃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며 지난 정권 ‘권력의 푸르름’을 누렸던 그들이지만 정권교체 후 사정 1순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최고위원뿐 아니라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의원,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씨, 김대중 정권의 박지원 의원 등 역대 정권의 2인자들은 전 정권의 2인자가 걸었던 길을 되밟았다.

‘살아있는 권력’ 시절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황태자’로 군림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권력무상을 깨닫기도 전에 사법처리 대상이 된 것.


2인자의 시작은 박정희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2인자는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5·16 당시 육군 대위로 쿠데타에 참여, 박정희 소장의 경호 장교를 맡으면서부터 그들의 인연은 시작됐다.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된 그는 단순히 대통령의 신변을 돌보는 차원을 넘어 대통령의 권력을 경호하는 ‘정권의 파수꾼’ 역할을 자 대통령의 안전을 국정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모든 가치 기준을 여기에 맞춘 것. 때문에 당시 경호실은 ‘대한민국 최강의 군대’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의 말로는 좋지 못했다. 79년 10월26일에 궁정동 안가 연회장에서 박 전 대통령과 같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저격당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군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이래 그의 ‘그림자’로 불린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자타가 공인한 정권의 2인자였다.

전 전 대통령의 12·12쿠데타에 동참,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 된 이후 장 전 안기부장은 전 전 대통령이 집권한 7년 중 5년 동안 군부정권의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맡아 대통령의 최측근에 서있었다.

그가 경호실장 시절 생긴 ‘심기경호’라는 말은 전 전 대통령의 안전뿐 아니라 기분까지 챙긴다는 ‘절대적인 충성’을 나타낸다. 이 같은 충성의 대가로 당시 장 전 안기부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권의 실세가 될 수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의 밀사로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급기야 전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까지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퇴임 직후부터 구치소에 드나들기 시작해 89년 5공 비리사건으로 구속됐다. 권력을 손에 틀어쥔 지 6년 만의 일이다. 이어 93년 용팔이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95년 5·18 광주민주항쟁 재수사 등으로 3차례 구속과 수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는 용팔이 사건 등에서 “나 이외에 더 이상의 배후는 없다”고 강조, 전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했다. 현재 5공 인사들의 맏형 노릇을 하며 전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있다.

노태우 정권에서는 박철언 전 민자당 의원이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인 박 전 의원은 대통령 비서관, 안기부장 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면서 정권의 핵심에서 움직였으며 대북밀사로 비밀리에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제13대 국회의원이 된 그는 ‘6공의 황태자’로 불리면서 정무 제1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을 지냈다. ‘노태우’라는 바람을 타고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떠오르는 정권의 풍운아였다.

권불십년 → 권불오년
10년도 못 가서 병난다

하지만 용팔이 사건,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부산기관장 회식 사건 등 각종 사건에 배후자로 지목당하는 등 시련이 적지 않았다.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슬롯머신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6개월간 복역했다. 그가 구속된 93년 5월22일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박철언 전 의원은 “새벽이 왔다고 소리치면서, 왜 닭의 목을 비트는가”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한편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의원은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김영삼 정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권의 2인자는 ‘소통령’으로 불린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다. 각종 공직인사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권세를 누리던 현철씨는 국정개입 및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97년 5월 구속됐다.

한보그룹 특혜비리 수사 때 두양그룹 등 기업체로부터 이권 청탁과 함께 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66억원을 받고 증여세 14억원을 포탈한 혐의가 드러나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것. 그는 1992년 대선 때 쓰고 남은 비자금 186억원을 관리하기도 했다.

현철씨와 검찰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솔그룹 조동만 전 부회장으로부터 2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두 번째 구속된 것. 정치에 대한 뜻을 버리지 못한 현철씨는 지난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며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다.

YS의 정치적 아들이자 ‘역사상 가장 센 여당 사무총장’으로 불렸던 강삼재 전 의원도 정권교체 후 ‘2인자들의 전철’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안풍(安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2001년 국고손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긴 했지만 국가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연이은 구속으로
빛 못본 비운의 2인자들

김대중 정권에서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복심’이었다. 성공한 재미동포 사업가였던 박지원 의원은 DJ가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 만나 현재까지 그를 따르고 있다.


86년 DJ의 정치활동이 재개되자 사업을 정리하고 DJ의 비서역할을 하기 시작한 그는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청와대에 들어가 공보수석을 맡았으며 문화관광부장관, 정책수석, 비서실장 등으로 정권이 끝날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DJ를 보좌했다.

특히 박 의원은 DJ의 대북특사로 북측과 접촉,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상회담의 대가로 대북송금 의혹이 일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서울구치소로 향해야 했다.

때문에 박 의원은 노무현 정권 5년에 대해 “교도소와 병원을 들락날락한 기간이었고 한이 맺혀 잠 못 이룬 밤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게서 받았다는 150억원과 관련, 무죄를 선고 받고 18대 총선을 통해 정계로 복귀했다.

파란만장한 박지원 의원의 사정도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동교동계의 맏형 격인 권 전 고문은 한보·현대그룹으로부터 각각 불법정치자금과 비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김대중 정권 전후로 세 차례에 걸쳐 구속됐다.

반복된 2인자의 행보
징크스 계속 이어질까?

그는 DJ가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참모역할로 그의 곁에 있기 시작해 40여 년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으나 거듭된 구속으로 정권의 햇살을 누려보지 못한 ‘비운의 2인자’로 꼽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특별한 ‘2인자’가 없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참여정부에 2인자는 없다. 2인자 문화는 제왕적 대통령 시대의 문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들은 있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는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최고위원이다.

이 의원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이 과정에서 의원직 사퇴의 뜻을 밝혔다. “새 인생을 위해 정치를 떠날 것이고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는 게 사퇴의 변이었다. 안희정 최고위원도 강금원 창신섬유 대표와 관련해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정권의 2인자치고 ‘좋은 날’ 가고 검찰에 불려가지 않은 사람 없다는 ‘징크스’가 깨지지 않았다”며 권세는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권불십년’에 대한 경고를 되새겼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