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LA가 찍은 메이저리거 류현진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19 12: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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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평정했다, 이제 미국이다!

[일요시사=사회팀] '대한민국 에이스' 류현진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LA다저스가 제시한 포스팅 금액은 메이저리그 사상 역대 네 번째로 알려져 세간의 기대도 한껏 받고 있다. 이제 관심사는 연봉이 얼마냐다. 미국 땅을 밟은 류현진은 "두 자릿수 승리, 2점대 평균자책점"라는 데뷔 첫해 목표를 밝혔다. 자존심과 패기가 묻어나는 포부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다저스 스타디움 마운드에서 미국 강타자를 요리할 류현진의 모습이 기대된다.

대한민국 에이스 '류뚱' 류현진(25)이 메이저리그에 진출을 확정했다.

지난 10일 한화구단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류현진을 영입하겠다고 써낸 최고 응찰액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80억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대 구단은 메이저리그 명문구단 LA다저스로 확인됐다. 이로써 다저스는 류현진에 대한 독점 계약권을 가지게 됐다. 280억원이라는 응찰액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이는 역대 포스팅시스템에 참가한 한국선수 중 최고액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선수 중에서도 역대 네 번째에 해당한다.

기회의 땅
미국으로!

지난 14일 '기회의 땅'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 인천공항에서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짤막한 소감을 전했던 류현진은 현지에 도착해서도 "날씨가 따뜻해서 좋다. 앞으로의 계획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겠다"며 신중한 모습을 유지했다. 당시 류현진은 취재진을 피해 다른 게이트로 출국하려 했다. 그러나 취재진의 악착같은 요구에 잠시 얼굴을 비추고 포토타임을 가졌다. 질문은 일절 받지 않았다. 평소 활발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던 류현진이 갑자기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이다. 이 같은 류현진의 태도 변화는 말 한마디가 향후 다저스와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에이전트의 충고 때문으로 알려졌다.

류현진은 15일 오전(한국시간) LA 국제공항에 도착해 한국 특파원을 비롯한 취재진과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연봉 협상을 이끌어줄 스콧 보라스 코퍼레이션으로 향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은 다음 날 오전 현지 취재진을 상대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류현진은 "다저스는 명문구단이다. 그런 팀이 나를 원하고 있으니 명성에 걸맞게 합당한 대우를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연봉 희망 금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명문 구단임을 내세우며 다저스를 압박한 것. 기는 LA에 머무는 동안 보라스 사무실 근처에 묵으면서 개인훈련과 함께 실시간으로 보라스에게 협상 진행 상황을 전달받을 예정이다.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 ESPN은 12월3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윈터미팅이 연봉협상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SPN은 "다저스에게는 운 좋게도 윈터미팅이 6일까지 열린다. 다저스는 류현진과 마지막 협상에 나서기 전에 다른 좋은 투수들을 둘러볼 기회를 잡게 됐다. 보라스 역시 데드라인 직전에 협상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윈터미팅은 매년 겨울 메이저리그 30개 팀 구단주와 단장 등이 모여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로 이적과 FA(자유계약)가 논의되고 성사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에이스 '류뚱' 다저스행 확정
아시아선수 중 역대 네 번째 높은 몸값

앞서 스탠 카스텐 LA다저스 사장은 미국 일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윈터미팅이 끝날 때까지 류현진과 계약하지 않겠다는 것이 구단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보라스가 "류현진은 2년 뒤에 FA 자격을 얻어 돌아올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협상의 귀재'로 통하는 보라스는 다저스의 이러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류현진의 몸값 불리기 작업에 들어갔다. 보라스는 연봉협상에서 천문학적인 계약을 다수 성사시키며 메이저리거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지난 2002년에는 박찬호가 텍사스로 이적할 당시 거금을 안겨주기도 했다. 반면 구단주 측은 그의 말을 '악마의 농간'이라고 표현한다.

보라스는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팀이 최우선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팀 환경 및 선수와 팀의 조화는 2순위다. 보라스는 협상에 돌입하기 전 자신의 고객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을 수집해 단점은 숨기고 장점을 부각시킨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자료 수집능력은 여타 에이전트들과 비교를 불허한다는 평이다. 보라스는 거액을 지불할 수 있거나 해당 선수가 반드시 필요한 복수의 구단들에 제안서를 내민다. 루머를 흘리거나 특유의 배짱을 부려 몸값을 최대한 부풀려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류현진 몸값
잭팟 터질까?


그래서일까. 보라스는 "빅리그 3선발급 대형투수"라고 언급하는가 하면 "당장 3∼4선발로 뛸 수 있고 일본에서 뛰었다면 더 많은 포스팅금액을 받았을 것" "이번에 다저스 구단이 연봉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면 내년에는 더 많은 포스팅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라는 말을 툭툭 던지며 다저스를 압박하고 있다.
최종 협상이 타개될 때까지 보라스 에이전트와 다저스 구단 간 힘겨루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 마감 시한은 내달 12일이다. 이에 다저스와 류현진의 계약이 내달 7일에서 12일 사이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점쳐지고 있다.

다저스 구단 스카우트 총 책임자는 류현진을 메이저리그 239승에 빛나는 '왼손의 전설' 데이비드 웰스와 견주었다. 다저스의 국제담당 스카우트 업무를 총괄하는 밥 잉글도 ESPN과의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체구가 크고 둥글둥글하다"며 "웰스의 기량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 구단에 합류해 공헌할 수 있는 선수임에는 분명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웰스는 1987년부터 2007년을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무려 21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왼손 투수로 191㎝에 100㎏ 가까이 나가는 거구였다. 뱃살이 두둑하게 나왔고, 몸 전체가 둥글둥글했다. 류현진과 비슷한 체격인 셈. 또 웰스는 유연한 투구 동작을 바탕으로 다양한 구질을 구사했다.

그는 토론토, 디트로이트, 뉴욕 양키스, 보스턴, LA 다저스 등 주요 구단들을 두루 거쳤고 토론토에 몸담았던 2000년에는 20승으로 다승왕에 오르기도 했다. 웰스는 통산 239승158패 평균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다저스 측이 류현진을 웰스에 비견될만하다고 평가한 것을 보면 다저스의 류현진에 대한 기대 수준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저스 콜레티 단장은 "류현진이 다저스의 2∼3선발을 맡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어 스탠 캐스틴 사장은 "우리가 한마디라도 류현진에 대해 평가하면 보라스는 그 말을 계속 이용할 것"이라며 경계했다.

데뷔 첫해 '괴물'등극
신인왕·MVP 휩쓸어

역대 메이저리그 입성 선수 중 가장 높은 포스팅 금액을 기록한 선수는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다. 그는 지난해 5170만3411달러(약 562억원)를 받고 텍사스에 입성했다. 그 뒤로 일본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가 2006년 5111만1111달러11센트(약 556억원)를 받고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역대 3위는 2006년 뉴욕 양키스가 이가와 게이에게 제시한 2600만194달러(약 283억원). 그 뒤를 류현진이 잇고 있는 셈이다.

포스팅에서 거액을 받고 미국에 건너간 좌완 일본 투수를 분석해보면 류현진의 몸값을 대략 예측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다르빗슈 유(텍사스)는 각각 6년간 5200만달러(약 565억원), 6년간 6000만달러(652억원)라는 유례가 없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 중 마쓰자카는 보라스의 고객이었다. 마쓰자카는 첫해인 2007년 연봉 600만달러(약 65억원)에서 시작해 2008∼2010년 동안 800만달러(약 87억원), 2011∼2012년 동안 1000만달러(약 108억원)로 높아졌다.

올해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한 대만 투수 천웨이인(27)의 전례도 류현진의 몸값을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된다. 그는 볼티모어와 3년간 1138만8000달러(약 123억원)에 계약했다. 그는 첫해인 올해 연봉은 307만달러(약 33억원), 내년과 내후년에는 각각 357만달러(약 39억원)와 407만달러(약 44억원)를 받을 예정이다. 류현진이 천웨이인보다 다양한 구종을 던지고 국제 경험도 풍부해 한 수 위라는 평가가 있는 만큼 계약 총액에서 그를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러 조건을 종합할 때 류현진이 첫해 연봉 600만달러(약 65억원)에서 시작하는 다년 계약을 추진한다면 연봉 총액은 1500만∼2000만달러(약 215억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 일각에선 연간 1000만달러(약 108억원)의 연봉계약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보라스의 협상력을 등에 업은 류현진은 '잭팟'을 터뜨릴 수 있을까.

류현진은 인천 출신으로 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순위(전체 2순위)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류현진의 가장 큰 강점은 무서우리만큼 빠른 적응력과 두둑한 배짱이다. 류현진은 2006년 프로 데뷔 첫 시즌부터 믿기지 않는 성적으로 한국 야구 역사를 새로 썼다.


트리플크라운(18승·평균자책점 2.23·탈삼진 204개)을 달성하며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를 독식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뛰어난 활약으로 '괴물투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지난 5시즌 동안 23차례 완투(8번 완봉)하며 78승(방어율 2.76)을 올렸다. 시즌 평균 15승씩 쓸어 담은 셈이다. 지난해에는 최하위인 팀을 이끌며 자신의 한시즌 최다 완봉승(3경기)을 포함해 16승4패, 방어율 1.82를 기록하며 국가대표 에이스로서 무르익은 기량을 뽐냈다.

'왼손의 전설'에 비견되는 특급 투
280억 괴물 몸값, 박찬호 신화 잇나?

류현진은 국제 대회에서도 세계적인 강타자들을 상대로 당찬 투구를 펼쳤다.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 쿠바와 결승전에서는 9회 1아웃까지 2점만 주는 특급 피칭을 뽐냈다. 누구와 맞붙더라도 위축되지 않는 강심장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캐나다 전 완봉승을 포함, 17 1/3 이닝 동안 10피안타 13탈삼진 2실점 (평균 자책 1.04)의 뛰어난 성적으로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병역도 해결했다.

류현진은 2010년 아시안 게임 당시 국가대표로 출전하였으며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철벽 마운드를 구축,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CJ 마구마구 일구상 최고투수상,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투수상,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최고 투수상, 제16회 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최다탈삼진상,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방어율 1위 투수상,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상 등을 수상했고 방어율 1.82 전적 16승 4패 탈삼진 187개 등을 기록했다.최고의 왼손투수에게 아낌없이 투자한 것은 류현진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때문으로 보인다. 류현진의 좌우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활용하는 150㎞대 후반의 명품 강속구와 거의 같은 동작에서 뿌려지는 서클체인지업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 변화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올 시즌 프로 6년차에 접어들면서 낙차 큰 커브와 빠른 슬라이더를 실전 승부구로 다듬었다. 또한 188㎝·105㎏의 당당한 체구가 말해주듯 '마당쇠 체력'도 류현진의 자랑거리다. 류현진은 2006년 입단 후 올해까지 7년 동안 1269이닝을 던졌다. 1년에 180이닝 이상 소화해 온 셈이다.

메이저리그 입성을 눈앞에 둔 류현진은 "두 자릿수 승리, 2점대 평균자책점"라는 데뷔 첫해 목표를 밝혔다.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중 역대 네 번째로 높은 포스팅 금액을 받은 만큼 한국 최고 투수의 자존심과 패기가 묻어난 발언을 한 것. 메이저리그 입성 첫 시즌부터 당당히 선발진의 한 축을 맡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과연 '대한민국 에이스'다운 포부다.


과거 다저스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39)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은 적은 없었다. 18승10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한 2000년이 그에겐 최고의 시즌이었다. 무려 17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지키며 '아시아 최다승 투수'라는 업적을 달성한 박찬호에게도 2점대 평균자책점은 넘어설 수 없었던 버거운 기록이었던 셈이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류현진은 박찬호를 넘어 아시아 최고 투수를 향해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잘 안착해 본연의 실력을 발휘하고, 타선의 화끈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한시즌 20승도 꿈이 아니다. 왕첸밍, 박찬호, 그리고 노모 히데오까지 모두 한 시즌 20승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말이다.

한국인 첫 월드시리즈 선발 등판 및 승리도 류현진이 욕심 낼만한 기록들이다. 박찬호는 2009년(필라델피아) 월드시리즈에서 4차례 구원 등판했으나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고, 김병현은 2001년(애리조나)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했으나 역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두 자리 승수
2점 방어율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를 진출해 2010년까지 총 17시즌 동안 124승을 쌓아 아시아인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알면서도 류현진은 "선배를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의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박찬호의 최다승 기록을 넘어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나이 만 26세, 쉽지 않겠지만 지금까지의 류현진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갈 류현진, 그의 활약 소식이 벌써 바다를 건너 들려오는 듯하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류현진은?>

생년월일 : 1987년 3월25일
신체조건 : 188㎝ 105㎏-좌투우타
출신학교 : 창영초등학교-동산중학교-동산고등학교-대전대

<주요경력>
2006년 한화 이글스 입단
2006년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2009년 WBC 국가대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수상경력>
2006년 신인왕, 정규시즌 MVP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주요기록>
2006년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3관왕
2009∼2010년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통산성적>
190경기 1269이닝 98승(8완봉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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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