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중·일 관계는 오래된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미·중 기술 전쟁 속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은 방위비 증액과 자위대의 군사화로 노선을 바꾸고 있다. 한국은 미·일 안보 체제에 편입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놓지 못하는 줄타기를 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세 나라가 따로 흘러온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시계 위에서 함께 움직여온 궤적이다. 우리는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를 분리해 배우지만 실제로 이 셋은 한 번도 따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중국이 중심을 잡고 일본이 주변에서 팽창하며 한반도가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구조는 수천년 동안 반복돼 왔다.
지금 우리가 보는 미·중 충돌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한국의 외교적 모호성도 이 오래된 시계가 다시 한 바퀴를 도는 장면일 뿐이다.
중국이 안정돼있을 때 동아시아는 비교적 조용했다. 한나라와 당나라, 명나라 시절에는 국제 질서가 단단했고 주변국들은 그 틀 안에서 자율성을 누렸다. 중심이 단단하면 주변은 흔들리지 않고, 패권이 분명하면 충돌도 줄어든다. 그래서 이 시기 동아시아는 교역과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 중국의 안정은 곧 동아시아 전체의 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무너질 때마다 동아시아는 즉각 요동쳤다. 907년 당나라가 붕괴하자 중앙 질서가 사라졌고, 그 공백 속에서 고려와 일본은 전례 없는 독립성을 얻었다. 해상 교역이 폭증하고 각국은 독자적 정치와 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의 붕괴는 주변국의 해방이자 재편의 신호였다. 이 패턴은 이후에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1911년 청나라가 무너졌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백년간 동아시아를 지탱해 온 중화 질서가 붕괴하자 일본과 서구 세력이 동시에 밀려 들어왔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은 메이지 일본이었다. 일본은 더 이상 중국의 문화적 후손이 아니라 서구 제국과 경쟁하는 제국이 되기로 결단했다. 그 결과가 조선 병합과 만주 침략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강해질 때마다 전쟁은 필연처럼 따라왔다. 1592년 임진왜란은 일본이 처음으로 한반도를 넘어 대륙으로 진출하려 한 시도였다. 일본에게 조선은 목적이 아니라 통로였고, 진짜 목표는 중국이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도 일본은 조선을 둘러싼 중·일 질서를 무너뜨리며 대륙 진출의 길을 열었다. 1937년 중일전쟁 역시 같은 궤적 위에 있었다.
이 모든 충돌의 중심에는 항상 한반도가 있었다. 중국 질서와 일본 야망이 맞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이 땅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강하면 한반도는 그 질서 속에 묶였고, 중국이 약해지면 일본의 침투를 가장 먼저 받았다. 그래서 한반도는 한 번도 평화로운 완충지대였던 적이 없었다. 늘 전쟁의 통로였고, 압박의 교차로였다.
지금의 동아시아도 이 구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중국은 성장 둔화와 금융 불안, 인구 감소로 내부 균열이 커지고 있다. 과거의 청나라와는 규모가 다르지만, 패권이 흔들린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런 순간에 주변 국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역사는 이 공식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일본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화헌법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방위비를 급증시키며 장거리 타격 능력까지 확보하려 한다. 일본은 자신을 더 이상 전후의 평화 국가가 아니라 전략적 군사 국가로 재정의하고 있다. 중국이 흔들릴 때 일본이 영향권을 넓히려 하는 것은 오래된 본능이다. 지금의 일본 재무장은 그 본능의 귀환이다.
미국은 이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읽고 있다. 그래서 일본을 동아시아 군사 질서의 핵심으로 세우고 한국을 그 축에 묶으려 한다. 한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전초기지이자 미·일 동맹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이것은 외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 구조의 문제다. 한반도는 다시 한번 패권 충돌의 중앙에 서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 구조를 얼마나 정확히 인식하고 있느냐다. 많은 정치인과 관료들은 이를 단기 협상이나 일시적 위기로 본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907년은 중국 붕괴로 주변 질서가 풀린 순간이었고, 1911년은 중화 질서 붕괴와 제국 경쟁의 시작이었다. 1592년은 일본의 대륙 진출 선언이었고, 1895년은 그 야망이 패권으로 바뀐 전환점이었다.
중국이 흔들리고 일본이 움직이는 순간, 한반도는 언제나 시험대에 오른다.
지금 동아시아의 시계는 또 한 번 그 초침을 한국 쪽으로 돌리고 있다. 우리는 다시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에 서 있다. 필요한 것은 특정 국가와의 거래가 아니라 이 구조를 읽고 버틸 수 있는 전략이다. 역사를 읽지 못하면 역사는 다시 우리를 지배한다. 동아시아의 시계는 지금도 째깍거리며 한국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이 구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살아남는 법을 설계하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 일본 중 하나를 택해 줄을 서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동아시아의 균열이 커질수록 줄서기는 곧 종속이 된다. 한국은 동맹을 유지하되, 어느 한쪽의 전초기지로 고정되지 않는 전략적 완충국가로 자신을 재정의해야 한다.
이것이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방식이다.
경제 역시 같은 원리로 재편돼야 한다. 중국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동시에 미국 기술과 금융에 매달리는 구조는 충돌이 커질수록 위험해진다. 한국은 미·중 어느 쪽에도 완전히 묶이지 않는 공급망과 기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AI 같은 전략 산업에서 한국이 빠지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해지는 나라가 될 때 비로소 선택권이 생긴다.
외교와 안보에서도 한국은 더 이상 수동적 위치에 머물 수 없다. 일본의 재무장과 중국의 불안정,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 시대에 한국은 스스로를 ‘경계 국가’이자 ‘중재 국가’로 설계해야 한다. 전쟁의 통로가 아니라 협상의 교차로가 되는 것이 생존 전략이다. 동아시아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지금, 한국이 역사의 피해자가 될지 설계자가 될지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정부 역시 이런 구조를 의식한 움직임을 보였다.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을 축으로 비정치 분야 협력을 이어가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중·일 갈등의 정면을 피해 제도의 뒤편으로 물러서는 선택에 가깝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 초 추진됐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끝내 무산된 뒤,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과 방일을 통해 관계를 각각 관리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자 틀에서 돌파구를 찾기보다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양자 관리로 내려온 셈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는 지금, 한국이 흔들리는 톱니가 아니라 시간을 조율하는 기어가 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