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면, 그 선거를 통해 탄생한 권력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지 감시하는 최후의 보루는 인사청문회다. 최근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인사청문회 불발 사태는 우리 정치권이 협치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얼마나 위험한 독주와 정쟁의 늪에 빠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결코 시혜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부여한 준엄한 명령이며, 고위 공직자가 갖춰야 할 도덕성과 직무 수행 능력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 불발은 여야의 대립 끝에 검증 실종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이는 단순히 한 명의 인사를 임명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 헌법 정신과 의회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태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혜훈 후보자가 국회에서 요구한 검증 자료를 일부만 제출하는 등 충분하지 않다며 진짜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청문회를 반대하고 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검증 자료를 일부만 제출한 것에 대한 지적은 가능하지만 검증을 위한 청문회는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이 후보자가 청문회 자리에서 국민에게 직접 소명할 기회는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혜훈이라는 인물은 그간 한국 정치사에서 경제 전문가이자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그가 맡게 될 직책의 무게감과 그간의 행보를 고려할 때, 국민 앞에 서서 자신의 철학을 증명할 기회는 반드시 필요하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후보자를 난도질하는 자리가 아니다. 후보자가 가진 전문성이 국정 운영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과거의 논란들이 공무 수행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지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이다. 이혜훈 후보자가 가진 경제적 식견이 현 정부의 기조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혹은 비판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청문회라는 공식적 무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쟁에 매몰된 국회는 이 귀중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찰 기세다.
책임 전가와 정쟁 도구가 된 인사 검증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비판점은 여야 모두 국민을 방패 삼아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겠다는 데 있다. 여당은 야당의 무리한 공세를 이유로 청문회 일정을 확정 짓지 못했고, 야당은 검증을 명분으로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다 결국 청문회 무산이라는 파국을 초래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은 흔히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지만 인사청문회는 정무적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법적 의무의 영역에 가깝다.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청문회 없이 임명을 강행하거나, 아예 검증의 판 자체를 깨버리는 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특히 이혜훈 후보자와 같이 논쟁적인 인물일수록 더욱 투명한 검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셈법에 의해 국민의 시야를 가려버린 것은 비겁한 처사다.
‘검증 패싱’과 국정 운영의 불확실성
청문회 없이 임명된 공직자는 태생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의 취약성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사는 야당의 끊임없는 공세에 시달릴 것이며, 이는 곧 국정 동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특히 경제와 정무를 아우르는 핵심 요직에 이혜훈 후보자가 앉게 된다면, 그가 내놓는 정책과 결정들은 사사건건 ‘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인사’라는 꼬리표에 발목을 잡힐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후보자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이며, 정부 전체의 신뢰도를 깎아먹는 자충수가 된다. 검증을 피하는 것이 당장은 편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더 큰 정치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사실을 위정자들은 간과하고 있다.
‘청문회 불발’ 제도적 보완 필요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인사청문회법의 한계를 명확히 보았다.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언제든 무산될 수 있는 현재의 구조는, 정쟁이 격화될 때마다 ‘검증 공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청문회 불발 시에도 반드시 국민적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적 검증 절차를 제도화하거나, 청문회 일정 합의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또 인사청문회를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비공개)과 정책 역량 검증(공개)으로 이원화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혜훈 청문회 불발은 우리에게 ‘제도의 무력함’을 경고하고 있다.
국민 눈높이서 다시 시작해야
정치는 현실이지만, 그 현실은 언제나 국민의 상식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고위 공직자의 임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야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가 이뤄지느냐다.
‘이혜훈 청문회’ 불발을 비판하는 것은 단지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검증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이제라도 여야는 이번 사태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임명 강행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하기보다, 국민 앞에 진솔하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만약 청문회 없이 임명이 진행된다면, 그 이후의 모든 국정 혼란과 책임은 오롯이 임명권자와 국회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검증의 문을 닫아버린 정치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기대할 자격이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검증 자료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불발되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바라는 국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시한은 21일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