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담> 윤여준이 보는 혼란 속 희망

“지금 고통은 민주주의 성장통”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두 번의 탄핵과 한 번의 계엄을 겪었다. 일어서고 좌절하기를 반복하면서 경제는 휘청였고 정치 양극화는 고점을 찍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시작으로 정치사의 명과 암을 모두 지켜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그럼에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 전 장관이 본 희망은 이 모든 걸 겪고도 다시 일어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회복력이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정치 인생은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부, 국회, 선거 등 크고 작은 나랏일을 함께하며 30년 넘게 국정 운영에 관여했다.

1994년 김영삼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 겸 공보수석을 지낸 그는 1997년 제4대 환경부 장관에 임명됐으며 1998년 이회창 전 국무총리의 ‘제갈공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0년 한나라당의 제16대 총선을 시작으로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캠프 공동선대위원장, 2012년 문재인 후보 캠프 국민통합추진위원장, 2014년 안철수 의원이 이끈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차례로 지냈다.

지난 4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총괄선대위원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온 윤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30일 기자회견을 본 뒤 “이 대통령 밑에서 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국정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왔던 윤 전 장관은 ‘보수 책사’로 통한다. 그러나 막상 그는 이 같은 별명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 했다. <일요시사>와 인터뷰 도중 “보수 책사이시다”라는 취재진의 말에 그는 양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책사가 아니라고 10년째 말하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러네. 책사라는 단어를 빼달라고 매번 말해도 늘 기사에 넣더라고. 지금은 국민을 설득하는 시대지, 속이는 시대가 아니에요. 책사는 꾀를 내거나 어두운 지혜를 쓰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지. 어떻게 주권자를 속일 수가 있나.”


다사다난한 한 해의 끝에서 <일요시사>와 만난 윤 전 장관은 책사가 아닌 국민의 잠재력을 일깨워 줄 ‘통치자’이자 ‘전략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전 장관의 일문일답.

-2025년은 격변의 해였다. 지난 1년을 돌아본다면?

▲숙명인지 모르겠으나 근래에 항상 격랑하고 격변하는 세월을 보냈다. 국민도 상당이 이골이 난 것 같다. 지난 1년간 한국에 일어난 일은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엄청난 사건의 연속이다.

예전부터 우리 백성이 평온한 삶을 살았던 적이 별로 없다. 나라 자체가 분단국가이지 않은가? 그래도 긍정적으로 본다면 우리 국민은 웬만한 위기에는 까닥하지 않는다. 이미 탄핵을 겪은 만큼 올해 사건들을 보통 예사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마음이 아프다.

-도서 <대통령의 자격>을 집필하셨다.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통치 역량)’를 강조했는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국가를 통치하는 기본 역량은 공공성이다. 이는 공동체 구성원의 연대 의식을 일으키는 핵심 가치다. 기본 역량은 변하지 않지만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겠다. 태어날 때부터 이를 습득할 수는 없겠지만, 과정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 역사가 긴 나라에서는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탄생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 과정이 생략됐다. 그러다 보니 윤석열 전 대통령 같은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윤석열정부와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국민이 많은 걸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어느 시대에도 인재는 있다”고 하셨는데….

▲이 세상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필요해서 나온 사람들이다. 본인의 역할이 있고 잘난 놈들만 역할이 있는 게 아니다.

-윤 전 대통령도 국민이 뽑은 권력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대통령은 당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후보들은 당선되는 데에만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되고자 하는 사람은 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된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자신이 그런 실력을 갖췄는지, 이론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가 이뤄지면 국정이 망가지고 스스로가 망가진다.

대한민국은 규모에 비해 굉장히 다스리기 어려운 나라다. 사회가 다원화돼있고 국민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하고 “감히 내가 누구인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그런 생각으로 나라를 통치한 사람들의 말로를 지켜봤다.

-6·3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캠프의 상임총괄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셨다. 선거 기간 동안 바라본 이 후보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재명 대통령과 처음 만난 건 그가 성남시장을 할 때였다.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십니까?”라고 물어보니 점심을 같이하자는 연락이었다. 가게 구석에 둘이 앉아서 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그는 나에게 국정에 대한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고, 꽤 재밌게 대화한 기억이 난다.

대통령 기본 역량은 윤리와 공공성
이, 도덕성 신경 쓰면 훌륭한 지도자

짧은 시간 내에 사람을 평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대통령은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다. 지적과 수정을 받아들이는 그릇을 갖췄다. 지도자는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이재명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윤석열정부 이후 등장한 만큼 이 대통령의 책임이 무거워 보인다. 도덕성과 효율성, 두가지의 가치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장동 등 이 대통령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대통령은 근래 등장한 사람 중 가장 행정력이 뛰어나다.

윤 전 대통령이 파탄 낸 국정을 빠르게 정상궤도로 올렸다. 그렇기에 효율성과 도덕성 두 가지를 놓고 극단적으로 선택하라고 했을 때 나는 효율성을 택할 것이다.


-도덕성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 정서 특성상 효율성만 강조해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지 않을까?

▲ 도덕군자란 무엇인가? 나만 잘살고 나라를 망가지게 두면 그것을 어떻게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에게 굉장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이번 정부를 통해 망가진 대한민국 국정을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대통령이 도덕성을 신경 쓰면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본다. 이후에 등장할 대통령에 대한 기준치도 높인 셈이다. 국민의 눈높이가 올라갔으니, 후임자 역시 그에 걸맞은 사람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물리적인 규모는 큰 나라가 아닐지 몰라도 잠재 능력은 몹시 크다. 워낙 국민적 역량이 뛰어나고 다양성을 갖춘 나라인데, 일부 정치인은 대통령이 돼 권력만 잡으면 일이 쉽게 풀린다고 생각한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여전히 이 대통령의 ‘비호감’ 프레임이 짙다.

▲국민이 원하는데 대통령이 봤을 때 옳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지도자는 자기의 반대편에 선 다수의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탁월한 리더십과 신뢰를 갖춰야 한다. 정도를 걸으면서 이 모든 걸 갖추는 게 쉽지는 않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대한민국을 비극으로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은 크게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인데, 제왕적이지 않은 대통령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꼭 제왕적이라야만 대통령 되는 건 아니다. 권력의 속성은 ‘집중’과 ‘연장’이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를 절제하고 욕망을 누르면서 국가를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국민 다수의 의사가 효과적으로 반영되면 우리는 통상 민주적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가치가 자연스럽게 내면화돼야 한다. 평생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이들도 권력을 잡으면 제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물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정치 운영 방식에 따른 차이인데 민주주의를 하나의 굳어진 제도와 체제로 받아들이면서 생긴 오류라고 생각한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는 매 순간 권력의 유혹을 마주할 것 같다.

▲실제로 많이 느낄 것이다. 권력을 잡는다는 건 사람을 마취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 마취 효과를 이겨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국민 의식 수준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리를 쉽게 봐서는 안 된다.

-국민의 의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들로부터 형성된 여론이 정치권에 잘 반영되고 있다고 보는지?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처럼 포장되는 경향이 있다는 해석도 나오는데….

▲그렇게 치부하는 것이 권력자의 입장에서 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역량이 조직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어떤 권력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고 비로소 민주주의가 제도적, 문화적으로 정착하는 때가 올 것이다.

좌절 반복…그래도 희망적인 이유?
“다시 일어난 국민, 버텨낸 기업”

-민주당 등 범여권은 ‘내란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내란 청산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민의 여론은 내란 세력을 청산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척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척결은 하나의 과정이고, 이후 어떤 국가를 건설할 건지 계획하는 과정에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지도자는 국민의 동의를 얻은 목표를 직접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행정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힘의 상황이 좋지 않다. 여론을 쇄신하는 방법이 있을까? 보수 진영에 오래 몸담았던 만큼 고민도 많을 것 같은데….

▲당연히 고민한다. 문제는 우리가 고민하는 것만큼 국민의힘도 고민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길로 향하고 있고, 지금의 우리는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걸 거쳐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은 성숙한 사회로 향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필수적인 길목으로, 절대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단국가인 데다 경제적 어려움마저 겪어 ‘가능한 한 빨리 혼란을 극복하자’는 염원이 있는 것이지 단숨에 평화로운 사회로 거듭나는 법은 없다.

-윤 어게인(Yoon Again)이 국민의힘을 휘두르는 지금 보수를 일으킬 새 인물이 등장할 수 있을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야 하고, 빠를수록 좋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쪽 세력이 올바르게 서야 다른 한쪽도 따라 서게 된다. 정권을 놓고 경쟁하는 세력이니 당연한 말이다.

-2026년은 병오년, 붉은 말의 해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해로 정치권에도 역시 많은 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해를 맞아 국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23대 총선이 한참 남지 않았나. 현역인 국회의원 한 명 한 명 붙잡고 바뀌라고 애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의석 그대로 다음 총선까지 가야 한다. 그래도 비관적으로 보지 말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성숙한 사회로 향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뼈를 깎는 대가를 줄이려 노력은 하겠지만 지금의 고통 역시 필요한 시간이다.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말자고 하셨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품을 일이 있는지?

▲나는 앞날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이든 희망을 놓지 않고 산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그런 시스템을 제도로 갖추면 나라가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 대한민국은 비슷한 어려움을 수없이 겪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국가를 만들었다. 보통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지금 경제체제가 유지되고 있지 않나. 민생은 경제고, 경제는 국력의 바탕이다. 경제가 망가지면 국가가 무슨 소용인가? 반복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기업은 굉장히 잘 해줬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부도가 나기는커녕 성장한 곳도 있다. 새삼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우리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2026년 새해를 맞아 국민에게 덕담 한마디 부탁드린다.

▲희망을 품자고 말했지만 국민도 지친 것 같다. ‘이번 국면만 지나면 좀 낫겠지’ 했더니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한때 정치권에 몸을 담았던 고위 관료로서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주 크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워낙 총명하다. 혼란의 시기도 언젠가는 지난다. 그날이 오면 국가가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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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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