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생명 판촉 리베이트 의혹

중앙회장에 10억 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서진 기자 =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국정감사에서 자신을 둘러싼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1억원의 불법 선거자금 수수, 20억원대 핸드크림 리베이트 의혹까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금융감독원이 감사에 나선 뒤 임원진 절반을 교체하는 쇄신안을 내놓자 ‘꼬리 자르기식’ 대처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NH농협생명은 지역 농·축협의 보험 판매 실적을 높이기 위해 판촉용으로 핸드크림 3종 세트를 세트당 2만원(생산 단가 1만1000원)의 가격으로 모두 10만개(20억원 상당)를 수의계약으로 지난해 12월 발주했다.

97년생 대표
직원은 1명

하지만 납품 기한 내 실제 보급량은 절반인 5만개에 불과했고, 실질 납품업체는 현재 대기발령된 농협생명 3급 고위 직원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전남 완도 소재 피부숍으로 밝혀졌다. 단가는 세트당 2만원으로 총액은 20억원에 달했다. 계약 규모가 큰 만큼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이었던 박병희 현 대표까지 결재 라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실제 농협생명에 납품된 핸드크림은 10억원어치(5만개)에 불과해 나머지 10억원을 횡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농협금융지주가 특별감사에 나선 후에야 뒤늦게 나머지 5만개가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생명 측은 계절적 요인 등을 고려해 분할해 납품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21일부터 감사에 착수했다. 문제가 된 핸드크림은 경기 용인시 소재의 한 회사가 제조하고, 판매(화장품 책임 판매업자)는 코스메디엠이 담당한 것으로 기재돼있다. 코스메디엠은 자본금 1000만원에 불과한 1997년생 대표 1명이 직원의 전부인 회사로 2024년 11월14일에서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화장품 책임 판매업 허가를 받았다. 

매체에 따르면, 농협생명과 수의계약을 맺은 하나로유통삼송센터는 에이오(AO)와 라인플러스라는 회사에 핸드크림 구매·유통 하청을 줬다. 두 업체는 다시 지현살롱이라는 업체에 재하청을 맡겼다. 지현살롱은 농협생명 직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로 드러나면서 의혹을 키웠다.

코스메디엠→지현살롱→에이오·라인플러스→삼송센터→농협생명 순서로 핸드크림이 유통되는 구조인 셈이다.

핸드크림은 납품 기한인 지난 2월28일까지 계약과 다르게 5만개만 보급됐다. 이 같은 내용의 제보가 농협중앙회에 접수됐고, 농협금융지주가 이를 전달받아 지난 8월28일부터 9월11일까지 현장 감사를 진행했다. 나머지 5만개 핸드크림은 농협금융의 감사가 시작된 직후 납품된 것으로 확인됐다.

2배 뻥튀기…20억원 핸드크림 허위 결제
금감원 감사 들어가자 나머지 5만개 납품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NH농협생명의 판촉물 리베이트 거래 의혹에 대해 “비리 혐의가 짙다”며 검사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말하고 보험업계 사은품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 원장은 “NH농협생명이 고객 사은품으로 핸드크림 10만개를 수의계약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성 현금 리베이트 거래를 했다”는 허 의원의 지적에 “관련 비리 혐의가 짙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 중으로, 현장 검사는 이미 했다”고 답했다. 


핸드크림 계약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으로 재직하다 지난 1월 사장으로 승진한 인사가 내부 감사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도 의심을 키웠다.

허 의원은 “유령업체와 거래하면서 최대 9억원의 비자금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현금이 중앙회장, 농협생명 대표에게 현금으로 전달됐다는 것이고 횡령 뇌물을 수수한 것인데 농협금융지주는 당사자에 대한 내부 감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이어 “올해 1월 사장으로 승진하고 계약할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이 내부 감사 과정에서 ‘나는 챙긴 게 없고 11층에 갖다줬다’고 진술했다”며 “11층은 농협생명 중앙회인데 이게 뇌물 및 불법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사은품을 취급하는 보험업계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 원장은 “검사할 때 참고해서 반영토록 하겠다”고 답했다.

납품가격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판촉물로 구매한 핸드크림 3종 세트는 1세트당 단가가 2만원으로 책정됐다. 인터넷 판매가격이 3만7000원인데, 대량 구매를 고려해 2만원까지 낮췄다는 것이다.

의심 키운
진술 내용

하지만 네이버 등 주요 포털 및 쿠팡 등 전자상거래 구매 상위권에 오른 상품 중 비슷한 성분과 용량의 핸드크림 세트의 가격은 1만원 안팎으로 형성돼있다. 해당 제품은 판매사조차 불분명한 데다 현재 공식 판매 사이트는 운영이 중지된 상태다.

화장품 업계 한 임원은 “특별한 브랜딩이나 기능성 성분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핸드크림 30㎖ 제품의 판매가는 3000원 정도”라며 “세트당 1만원 안팎이 대부분”라고 귀띔했다.

농협금융 내부에선 이 석연치 않은 계약이 리베이트를 위한 시도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농협 관계자는 “단순 직원 개인의 일탈로 보이지 않는다”며 “중간에 빼돌리려 했던 돈이 농협 내부에 만연해 있는 리베이트 자금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병희 농협생명 대표는 매체와 통화에서 “농협금융이 감사 중인 사안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서도 즉답을 피했다. 앞서 농협생명 측은 “결제 금액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부사장도 결재선에 들어간다”고 했다.

금감원 검사의 핵심은 10억원의 자금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될 전망이다. 박 대표가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주요 쟁점이다. 앞서 경찰은 이 건과 별개로 1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강호동 중앙회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뇌물수수 의혹을 받게 된 농협중앙회 측은 “우리 소관이 아니니 농협생명 담당자에게 물어보시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연락 끊고
잠수 탔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금융감독원이 농협중앙회를 감사한 이후 농협생명도 현재 감사 중인 상황이라 세부적인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핸드크림이 기한 내 납품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타 매체와 인터뷰에서 “당시 구매한 핸드크림은 해당 기업 제품이 맞다”며 “시기의 문제”라고 했다.

기한은 지났지만, 최종적으로는 핸드크림이 전부 납품됐다는 것이다. 코스메디엠 대표와 지현살롱 측은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한편, 강 회장은 2024년 1월 농협중앙회장 선거 과정에서 농협 계열사와 거래 관계에 있던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약 1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달 15일, 강 회장의 집무실 등 농협중앙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의 구체적인 금품수수 시점을 지적하는 의원의 질의도 나왔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벤츠 안에서 5000만원, 그리고 2023년 12월 서울역 인근에서 5000만원 등 1억원을 수수했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강 회장은 “경찰에 가서 설명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농협 용역업체 이 모 대표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녹취록도 나왔다.

전 의원이 감사장에서 공개한 녹취록엔 “강호동한테 전화해가지고 ‘왜 돈을 받았으면서 고맙단 얘기를 안 하냐’ 그러니까 강호동이가 ‘아차차, 형님 연락할 겁니다’라고 했고 바로 연락이 와서 OO을 만나보라고 하니 만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부사장 “11층에 돈 갖다 줬다” 진술
허영 의원 “11층은 중앙회장실인데?”

전 의원은 강 회장이 용역업체 대표를 플라자호텔에서 만났고 회유를 시도했다는 제보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 측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카더라 녹취”라며 “경찰 수사를 통해 소명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전 의원은 “강호동 회장이 율곡 조합장 시절이었던 2022년에도 2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이 있다”며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어 “강호동 회장이 취임 1주년 기념 인천지역조합장협의회가 회원 동의 없이 회비로 구입한 560만원 상당의 황금열쇠를 받았다가 논란이 되자 7월에 돌려줬다는 의혹도 있다”며 맹공을 이어갔다.

700조원 자산을 관리하는 농협중앙회가 강 회장의 검찰 수사 등으로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추락한 지역농협 신뢰와 부실채권 급증으로 상승한 연체율 등이 회복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임원진 절반을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 쇄신안을 내놓으며 고강도 혁신을 선언했다. 하지만 강 회장 본인이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실질적 개혁이 아닌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농협중앙회는 최근 발표한 ‘조직 쇄신 및 경영 투명성 강화 방안’을 통해 ▲계열사 대표 및 임원 절반 이상 교체 ▲대표이사 문책 강화를 위한 책무 구조도 도입 ▲수의계약 원칙적 금지 ▲향후 5년간 108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금융 지원 계획 등을 제시했다.

이는 조직 내 책임 경영 체계 확립과 윤리 경영 강화가 핵심 골자다.

중앙회가 제시한 이번 인적 쇄신 적용 대상은 중앙회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대표이사와 전무이사 등 상근 임원과 집행 간부들이다. 경영 성과가 부진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임원들을 전격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장 이달부터 시작된 인사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생명에 물어라”
꼬리 자르기

이번 농협 개혁 과제 추진을 위해 출범시킨 ‘범농협 혁신 태스크포스(TF)’ 위원장에 지준섭 중앙회 부회장이 선임된 점도 논란이다. 지 부회장은 현재 농협은행 부당 대출 사건과 관련한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상태임에도 중앙회 부회장직과 혁신 TF 위원장직을 겸직하게 됐다.

검찰 수사를 받는 중앙회장과 부회장이 내부 조직 개선 선봉에 나선 가운데 혁신안에서는 적극적인 외부 인력 보임으로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주장하는 점이 충돌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smk1@ilyosisa.co.kr>
<jen9@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