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약 1년 6개월간의 의정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의료계가 정상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최근 서울 소재 의료기관을 이용한 환자 10명 중 4명이 ‘관외 환자’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지역 의료 공백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간한 ‘2024년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사람은 총 1503만3620명이며, 이 중 41.5%(623만4923명)가 타 지역에서 방문한 관외 환자였다.
반면 서울 거주자의 89.4%는 관내에서 진료를 받았다.
서울행 원정 진료 비율은 지난 2014년 36.3%에서 매년 상승해 2022년 이후부터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면서 상급종합병원 입원과 진료가 크게 제한됐음에도 흐름은 꺾이지 않았다.
환자들의 서울행 원정은 상급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이 서울에 편중됐기 때문이라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지역 병원의 치료 역량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는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열린 ‘공공보건의료 정책 방향과 지방의료원 역할 강화 포럼’에서 보건의료환경 변화에 따른 지방의료원의 대응 방안을 논의해 공식 입장문을 냈고, ▲지방의료원 지원금 증액 ▲필수의료 수행에 따른 구조적 적자 보전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날 김영완 연합회장은 “지방의료원은 지난 2023년 3074억원, 지난해 1601억원에 이어 올해도 150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지만 내년 정부 지원 예산은 올해 수준으로 동결됐다”며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임직원 1만5000명은 앞으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 의료 공백은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일각에선 의정 갈등으로 인해 기존의 공백이 가속화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의대생 집단 휴학으로 인력 공급의 시차가 발생한 데다, 복귀한 전공의 역시 숙련 회복 등에 시간이 걸리면서 공백을 메우기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지방에선 환자를 맡을 의사가 부족해 병원을 여러 곳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4일 국립중앙의료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 ‘수용 곤란(거부) 고지’는 지난해 11만33건으로, 전년(5만8520건) 대비 88% 급증했다. 사유로는 ‘인력 부족’이 4만3658건으로 가장 많았다.
올해도 8월까지 수용거부 사례가 8만3181건에 달하는 등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14일 창원에선 1톤 화물차에 치인 60대 여성이 119 이송 중 경남·부산·울산·대구 권역의 25개 병원에서 의료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수용을 거부당했다. 약 100분 만에 창원 시내 한 병원에 수용됐으나, 환자는 다음 날 저혈량성 쇼크(과다출혈)로 결국 사망했다.
통상 중증 외상 치료의 골든타임(적정 시간)은 사고 후 약 1시간 안팎으로 보지만, 이 환자는 수용 지연으로 그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당시 창원소방본부 관계자는 “야간이었던 데다 의료 인력 부족으로 중증 외상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비인기 과목의 집중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익성 격차에 따른 인기 과목 쏠림에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소아·분만 등 필수의료의 악화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5년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에 따르면, 인턴 및 레지던트 7984명이 선발됐다. 모집인원의 59.1% 수준이다. 이로써 전체 전공의 규모는 기존 수련 중인 인원을 포함해 총 1만305명으로, 지난해 3월 임용대상자(1만3531명) 대비 76.2% 수준까지 회복했다.
올해 상반기까진 2532명(지난해 대비 18.7%)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회복세는 분명하다.
다만 과목별 격차는 크다. 26개 과목의 모집 인원 대비 선발 비율을 보면, 피부과 89.9%, 성형외과는 89.4%로 대부분 충원된 반면, 소아청소년과 13.4%, 심장혈관흉부외과 21.9%, 산부인과는 48.2%로 집계되는 등 필수과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역 의료 공백에 대해 정부도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정부는 필수·지역의료 강화 등 보건의료 과제를 123대 국정 과제에 포함했으며, 최근 국회는 구급대원과 응급실을 직접 연결하는 전용 회선(핫라인) 설치를 의무화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필수의료 인력 보충을 위한 ‘지역의사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이 제도는 의대 정원의 일부를 별도 전형으로 선발해 학비 등을 지원하고, 면허 취득 후 지방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필수과 위주로 최장 10년의 의무복무를 부과한다. 복무조건 위반 시에는 면허취소 등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의료계는 해당 법안이 거주 이전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해 위헌적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법률 자문 결과 위헌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대학 입학 단계부터 의무복무 내용을 충분히 인지해 선택하는 제도인 점을 고려하면 비례의 원칙(과잉금지원칙)에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재 수위와 관련해선 “의무복무 불이행 시 면허를 곧바로 취소하는 방식보다는, 의무 위반의 구체적 비교형량을 통해 단계적으로 제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따라 시정명령, 면허정지 이후 최종적으로 면허취소 처분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수정 의견을 보건복지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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