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구 요양병원 환자 사망 미스터리

팔 부러뜨리고 방치…결국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수년 전 쓰러진 이후 의식을 찾지 못했기에 ‘언젠가’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유족은 고인이 입소해있던 요양병원의 관리 부실을 문제 삼았다. 그날, 요양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구에서 학원 강사 일을 하던 송경희씨가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진 건 2021년 12월8일. 당시 경희씨는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지인과의 카카오톡 대화방에도 ‘약을 먹었는데도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있었다. 당시 38세였던 경희씨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간호사가…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2~3번의 수술을 받은 이후 경희씨는 재활병원에서 2년을 지내다 요양병원에 입소했다. 지주막하출혈로 뇌가 손상돼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사망 전 마지막으로 머물던 대구의 C 요양병원에 입소한 시기는 지난해 4월이다. 경희씨의 어머니가 막내딸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를 원해 집 근처로 정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희씨의 상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의식이 돌아올 기미는 없었지만 죽음이 임박할 정도의 상황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희씨는 지난 6일 오전 4시경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C 요양병원에서 상급병원인 N 병원으로 옮겨지고 10일째 되던 날이었다.

향년 43세,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이었다.


갑작스럽게 딸이자 동생을 잃은 유족은 C 요양병원에서 일어난 일이 경희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경희씨의 팔이 골절됐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유족에게 뒤늦게야 알렸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C 요양병원이 팔이 부러진 경희씨를 방치하는 사이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대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경희씨의 언니 송모씨는 “그 일(골절)이 없었다면 동생은 지금도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진단서와 소견서, 사망진단서 등을 꺼내 보였다. 그와 함께 경희씨가 사망하기 전 상황을 적은 기록도 내밀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동생의 죽음이 미심쩍어 이리저리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송씨가 전원 직후 N 병원에서 뗀 진단서에 따르면 경희씨는 상완골(어깨에서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긴 뼈)이 부러졌다. 폐쇄성 골절로 뼈가 부러졌지만 피부나 점막은 찢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N 병원 의사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함”이라고 진단했다.

경희씨의 팔이 부러진 시기는 지난달 23~24일로 추정된다. C 요양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골절이 확인된 건 지난달 24일이다.

지주막하출혈로 의식 없이 4년
큰 병원 옮기고 열흘 만에 숨져

하지만 C 요양병원 병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골절이 일어난 시기와 원인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않았다. 간호사가 경희씨의 팔에 수액을 놓으려다가 골절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한 원인으로는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유족은 지난달 23일에 경희씨의 팔이 부러졌다고 주장했다. 의료진이 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경희씨의 팔을 세게 잡아당겨 부러뜨렸다는 것이다. 송씨는 “간병인인지, 간호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면회 갔다가 팔에서 ‘뚝’ 소리가 난 뒤에 동생 얼굴이 벌게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유족이 문제 삼은 부분은 또 있었다. 바로 전원 시기다. 경희씨가 N 병원으로 옮겨진 건 지난달 28일로, 팔 골절이 확인된 때(지난달 24일)와 닷새나 차이가 있다. 유족의 주장대로 지난달 23일에 팔이 부러졌다면 6일 만에야 상급병원으로 이송된 셈이다. C 요양병원의 환자 방치 의혹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송씨는 “우리가 화가 나는 건 팔이 부러진 것도 그렇지만 C 요양병원의 후속 조치다. 팔이 부러진 게 확인된 직후 정형외과가 있는 병원이나 큰 병원으로 옮겼으면 분명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희씨가 N 병원에 옮겨져 검사한 결과 염증 수치와 간 수치가 높아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송씨는 “(7월)24일에 동생 팔이 골절됐으니 병원에 와서 (의사와) 면담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25일에 엄마가 찾아갔더니 주치의가 점심 먹으러 갔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돌아왔고, 26일에는 주치의가 쉬는 날이라고 해서 만나지도 못했다. 골절됐다는 사실만 알았지, 동생의 상태가 심각한지 어떤지 정확한 내용을 몰랐다. 그러다 월요일인 28일에야 그것도 사무국장이 (주치의에게) 바꿔준 전화로 동생 상황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고 허탈해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송씨와 사무국장, 주치의 등 3자간 통화는 28일 오후에 이뤄졌다. 주치의는 송씨가 “(동생의 팔 골절이) 실금 정도인지”를 묻자 “폐쇄성 골절”이라면서 “그대로 두면 뼈 끝이 신경도 찌르고 혈관도 찌르고 근육도 찌르기 때문에 일단 응급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또 “수술이 필요한 상황 아니냐”는 송씨의 질문에는 “이런 경우에는 수술해야 하는데 송경희씨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기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고 그다음에 수술하든지, 수술은 위험하다든지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답변했다.

유족이 경희씨의 상태와 의료적 조치의 필요성을 주치의에게서 처음 들은 순간이다.

실제 송씨는 “그 얘기를 왜 오늘에서야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주치의는 “여태까지 보호자를 만나려고 내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보호자가 안 와서 내가 말을 못했지” “저는 만나려고 했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이야기를 못했을 뿐”이라는 등의 말을 했다.

이후 송씨가 경희씨의 전원을 결정하고 사무국장이 병원을 수배하겠다고 했다. 경희씨가 N 병원으로 옮겨진 건 28일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골절 닷새 만에 자세한 설명
관리 부실로 ‘욕창’ 심해져

C 요양병원 병원장은 “병원과 송경희님 보호자 사이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일 처리나 진행이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송경희님의 (팔) 골절이 원내에서 발생한 건 맞다. 우리가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송경희님의 강직 상태가 굉장히 심해서 간병이나 의료적 처치를 하다가 골절될 수도 있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송경희님의 팔이 부러진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건 육안상으로는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운데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있고, 송경희님처럼 거동이 어려운 분들은 골절이 발생해도 수술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그 경우 보호자가 그냥 있겠다고 결정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경희씨의 죽음이 골절과 관계 있다는 유족의 주장에 대해서는 “유족의 마음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골절과 사망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팔이 골절되기 전에도 경희씨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원장은 “우리 병원에 입소한 뒤에도 폐렴과 패혈증으로 한두 번은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컨디션이 계속 안 좋았다”고 설명했다.

유족은 학대 의혹도 제기했다. 송씨는 “동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간병인,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번에 팔이 부러진 것처럼 동생을 함부로 다룬 게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N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로부터 ‘욕창이 너무 심하다’는 말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병원장은 “(송경희님이) 강직이 심하고 컨디션이 안 좋으니 의학적으로 필요한 처치를 하거나 간병할 때 골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태”라고 거듭 말하면서 “(학대는) 절대 아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코로나19 이후 면회가 자유로워지면서 병실에 보호자가 왔다 갔다 하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욕창에 대해서도 “입소할 때부터 욕창이 있었고 강직이 심해 체위 변경도 어려워 좀 더 진행됐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송씨는 “동생이 죽고 병원에 여러 번 연락했는데 답이 없었다. 심지어 장례 첫날 상복을 입고 찾아갔을 때도 병원 관계자를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니 이제야 계속 만나자고 전화가 온다.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찾아와서 병원 과실을 인정하고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말했으면 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소통 오류”


그러면서 “동생이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얼굴이 많이 망가졌다. 강직도 심해서 자세도 뒤틀린 상태였고. 그런데 입관할 때 보니까 장례지도사님이 곱게 화장도 해주고 자세도 바르게 펴주셨다. 쓰러지기 전 얼굴이 보이더라. 동생 얼굴이 편안해 보여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면서 “지금은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 놓아버린 느낌”이라고 허탈하게 웃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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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