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서류도 통과’ 엉터리 파산 심리 허점

빚보다 재산 많은데 털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세로 6년간 살아온 집이, 하루아침에 ‘파산재단 소속’이 됐다. 법원은 채무자가 제출한 허술한 서류에도 ‘지급불능’이라며 파산선고를 내렸다. 쏟아지는 파산 신청에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판을 치는 엉터리 심리에 채권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소형 아파트에 6년째 거주 중인 A씨는 보증금 1억3500만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A씨는 몇 달 전, 법원으로부터 한 통의 문서를 받았다. 집주인이 파산을 신청했고, 이미 법원에서 파산선고가 내려졌다는 내용이었다. 

억울함 호소 

A씨는 그동안 이 아파트를 실거주지로 사용해 왔지만, 1시간 거리의 시골에 거주 중인 고령의 모친을 돌보기 위해 주소지는 모친의 집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법률상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호받기 위해선 ‘대항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라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A씨는 확정일자만 갖고 있었을 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대항력이 없다고 판단됐다.

그는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고 계약 당시부터 줄곧 실거주하고 있었지만, 전입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잃게 생겼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파산선고 후 A씨는 수차례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이미 파산이 선고된 상태에서 채권자는 손쓸 방법이 없으며, 즉시 항고기간(선고 공고일로부터 14일)이 지났다면 사실상 다툴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A씨는 5군데 이상의 법률사무소를 찾아갔지만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법적 다툼이 가능하더라도 실익이 낮고, 승소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점이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을 꺼린 이유다.

A씨는 “일반 임차인은 법원의 결정 이후 통지문을 받아보는데, 그때는 이미 즉시 항고기간이 지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실질적으로는 방어권조차 행사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즉시항고 기간은 법원 게시일로부터 14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진행돼야 하지만, 임차인 등 이해관계자들은 대부분 선고 이후 ‘결정 통지서’를 통해 사실을 인지하게 돼 뒤늦게 대응할 수 밖에 없다.

결국, A씨는 스스로 움직이기로 했다. 하지만 직접 증거를 수집해 대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A씨는 법원의 사건기록을 열람하고,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집주인의 보유 자산 내역을 조사한 뒤, 직접 파산 이의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늦은 파산선고 통보
채권자들 속수무책

A씨가 열람한 자료에 따르면, 파산을 신청한 집주인은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집주인은 전국 각지에 주택 7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전세 임대 형태로 운용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갭투자’ 방식으로,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으로 매입 자금을 충당하고 시세 상승 시 매각하거나 대출을 받는 구조였다.

또, 파산 신청 직전 집주인은 카드론으로 5000만원을, 주택 담보대출로 1억6000만원을 각각 대출받았다. 해당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명확하게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파산 당시 제출된 자산 목록에도 누락이 있었다. 채무자는 지급불능일 약 4개월 전 청주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를 2억8500만원에 매도했지만, 해당 내역은 법원에 제출한 처분재산목록에서 빠져 있었다. 이는 파산재단에 귀속돼야 할 자산을 고의적으로 은닉한 정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

A씨는 이를 근거로 집주인에게 “허위신고 또는 재산 은닉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A씨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집주인의 보유 주택 시세를 평가한 결과 총 12억9600만원 수준이었고, 총 부채는 12억8400만원임을 확인했다. 단순 계산상으로도 자산이 부채를 초과하고 있었다. A씨는 자산이 부채를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파산이 선고됐다며 심리 과정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그는 “파산 요건인 지급불능 상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보유 부동산을 적절히 매각하거나, 대출을 조정하면 채무 상환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인데도 법원은 지급불능 상태로 판단해 파산을 받아들였다”고 강조했다.

또 채무자의 연말정산 자료에 따르면 채무자는 연간 2300만원가량의 소득이 있었고, 같은 기간 카드 사용액 1600만원, 현금영수증 1600만원, 보험료 1100만원, 고급 아파트 월세 1080만원 등 총 5400만원 이상의 지출을 기록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소득의 2배가 넘는 소비였다. 채무자는 파산 신청서에서 시간제 근로자로 월 149만원 수준 소득이 있는 저소득자라고 주장했지만, 그에 비해 지출 규모는 현저히 과다했다.

부실한 심사…문서 위주로 진행
“쏟아지는 신청에 검증 어려워”

게다가 임대주택에서 보증금을 올려 조성한 여유자금 2억6000만원과 담보대출과 카드론으로 대출받은 2억1600만원 등 4억7600만원을 뚜렷한 목적없이 외부로 유출한 정황을 보였다. 그 밖에도 차량 유지비와 식비가 누락된 가계표, 고급 아파트 거주 이력, 그리고 불일치하는 진술 등 모든 정황이 ‘고의적 파산’을 의심케 한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그는 “채무자는 1인 가구임에도 34평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월 105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다”며 “이런 소비는 파산을 신청한 사람의 행태로 보기 어려우며, 실제 지급불능 상태와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파산 심리 과정 자체가 대부분 서류심사만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개인파산 사건에서 관재인(법원이 선임한 변호사)이 채무자 제출 자료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법원은 대부분 관재인의 조사 보고서를 근거로 면책 여부를 결정한다.

채무자들의 면책 신청은 관재인이 일괄 조사해 법원에 보고하고, 판사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면책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하루 수십 건의 파산 신청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 명의 관재인이 많은 파산 조사를 맡게 된다. 이 때문에 관재인이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A씨는 “법원은 채무자가 제출한 서류만 보고 파산원인의 존재 여부, 기각사유 및 제도의 남용 여부에 대한 엄격한 심리 없이, 채무자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파산 선고를 결정했다”며 “실제 거짓신고 여부나 자산 축소의 고의성은 조사되지 않았다. 결국 문제는 제출된 서류의 진위나 고의성, 실제 재산 관계를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고 판단해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하루 수십 건

A씨는 법원에 이의신청서와 함께 채무증대경위에 대한 채무자의 허위 진술 입증 서류, 은닉재산 신고서, 대출자금 사용처 미소명 내역, 부동산 투자금 조성 및 회수현황 등 여러 건의 서류를 제출했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매년 수만 건의 개인파산이 접수되고 있지만, 면책이 불허되거나 기각되는 비율은 낮았다. 실제 한 파산 관재인은 “한 명의 관재인이 하루에도 수십 건의 파산을 맡고 있다 보니, 서류만으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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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