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보다 더한’ 극우 세력 반발, 왜?

탄핵 트라우마가 만든 결집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파면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23일. 123일 동안 나라는 서서히 두 쪽으로 갈라졌다. 2025년 대한민국 위로 2017년의 그 날이 겹쳐진다.

지난 4일 헌법재판관 8인의 일치된 의견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결정됐다. 헌법재판관 전원이 탄핵소추 사유 5개를 파면에 이를 정도로 위법한 사안이라고 본 것이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8년 만에 만장일치로 파면된 대통령이 됐다.

분열의 씨앗

문형배 헌법재판 소장이 주문을 읽자 이를 대형 스크린으로 지켜보던 한 보수 지지자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대한민국은 망했다” “헌재를 부수고 들어가야 한다” 등 고함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법조인들은 헌재의 만장일치 결정을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함으로 봤다. 그럼에도 광장으로 뛰쳐나온 보수 지지층은 쉽사리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탄핵 반대 집회는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부정하며 여전히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탄핵 심판 선고 닷새째인 지난 8일에도 일부 지지자들은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재출마를 촉구했다.


진영 간의 갈등은 탄핵 이후에도 곳곳에 스며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가족, 친구, 동료, 연인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정치색이 달라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다는 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던 때에도 보수 지지층은 분노했지만 지금처럼 탄핵 반대 여론이 높지 않았다. 8년이 지난 지금 유독 갈등이 심화한 이유로는 계엄으로 인해 ‘계몽’된 이들의 ‘박근혜 트라우마’가 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진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궤멸됐다. 그런 트라우마가 크다 보니 이번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라며 “심리적 내전 상태에 이르게 된 건 보수와 보수 진영 유권자의 박근혜 학습 효과, 그리고 이에 따른 반작용 때문”이라고 봤다.

특정 집단을 겨냥한 혐오 표현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탄핵 정국서는 탄핵 찬성 세력과 탄핵 반대 세력이 한자리에 마주하는 경우가 잦았다. 서울 광화문 광장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법재판소 앞 그리고 남태령 시위 현장까지 경찰의 철제 펜스를 사이에 두고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파면 인정 못 하고 “윤카 어게인” 거리로
길어지는 심리적 내전…극으로 향하는 갈등

두 달 넘게 이어진 집회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STOP THE STEAL’ 팻말을 든 남성은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호남 좌빨X”이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탄핵 찬성 측에 선 이들 중 누군가가 태극기 부대를 향해 “보수 틀딱”이라고 맞받아쳤다. 정치적 갈등이 진영을 넘어 성별·지역·세대 갈등으로 번진 것이다.

이처럼 탄핵 집회가 혐오 집회로 둔갑한 데에는 새로 탄생한 ‘아스팔트 극우 전사’가 중심에 있다는 설명이다. 7년 전과 달리 개인 유튜브 등 1인 미디어가 빠르게 발달하면서 자극적인 발언이 곧 돈이 되는 악순환으로 굳어졌다.


지지층의 분노를 이끌어내기 위한 ‘경쟁 심리’가 사회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매주 주말마다 곳곳서 집회가 열렸고 그들의 발언은 여과 없이 실시간 송출됐다.

‘말이 칼이 될 때’ 저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에는 혐오보다 정치적 분노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특정 대상을 희생양 삼고 있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 전가하는 형태의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혐오를 당하는 집단이 사회서 소외당한 계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적으로 힘이 약하거나 만만한 상대를 선택한다”며 “그렇기에 혐오는 쉽게 다른 집단으로 옮겨갈 수 있다, 혐오가 확산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형사 처벌 방식만이 아니라 집단서 규제하는 방식도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정치인이 발언을 격화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혐오를 부추기는 방법을 어떻게 통제할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종국에는 탄핵 반대 세력도 두 갈래로 쪼개졌다. 이른바 여의도파와 광화문파가 갈라지면서 또 다른 혼란을 낳은 형국이다.

새로운 보수 세력으로 주목받은 전한길 강사와 세이브코리아가 주도해 온 여의도파는 헌재 결정 이후 승복 메시지를 내고 집회를 중단했다. 반면 전광훈 목사와 자유통일당이 이끌어 온 광화문파는 “정치적 공세와 편향된 언론들의 여론몰이에 의해 이뤄진 부당한 결정”이라며 불복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설마 빨갱이야?” 성별·지역·세대별로 분열
여의도 VS 광화문 갈라선 까닭…사분오열 국론

여의도파의 승복 메시지에 광화문파는 전씨와 세이브코리아 대표인 손현보 목사를 겨냥했다. 조나단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손현보를 때려잡자” “날강도”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광화문에 모인 보수 지지층 역시 여의도파를 “좌파 프락치”로 부르며 각을 세웠다.

탄핵 반대를 외치던 두 세력이 갈라서게 된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쏠린다.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우후죽순 신흥 보수 세력이 생겨났고, 한정된 보수 지지층 파이를 나눠 먹기 위한 견제가 감정싸움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사회통합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정치인은 물론 경제, 종교 등 각계각층서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 속에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탄핵 정국 못지않게 국론이 갈라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라며 “미래 세대에게 보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모두 함께 절제와 인내의 미덕을 발휘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경제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논평을 내고 “엄중한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국정이 조속히 정상화되고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을 위한 노력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뭉쳐야 산다?

지난 석 달에 걸쳐 굳어진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워 보인다.

최 평론가는 “상처를 덮기 위해 윤 전 대통령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듯 잘못된 것은 처벌해야 한다”며 “사회통합 메시지가 나오더라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뚜렷한 해법은 없지만 우리 사회에는 마지노선으로 지켜온 헌법 정신과 40년 동안 도도하게 흘러온 민주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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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