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존재’ 원천희 캐는 내막

‘계엄 인지’ 빼박 증거 찾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에 연루됐으나 징계를 면해 온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이 코너에 몰렸다. 계엄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주장과 상반된 증언이 정보사 내부서 쏟아진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원 본부장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비선 실세’ 행위를 사전에 인지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공수처는 정보사 간부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12·3 비상계엄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의 공식 입장이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게 패싱당한 걸 보면 설득력이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수사에 애를 먹은 바 있다. 상황은 뒤집혔다. 공수처는 최근 원 본부장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존재를 인지한 정황을 파악하고 소환조사했다. 

유임 수긍, 왜?

법조계에서는 원 본부장이 조만간 불구속 기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원 본부장과 노 전 사령관은 친분이 깊지 않다. 노 전 사령관이 제7보병사단 제5보병연대장 시절 원 본부장이 제1대대장이었다. 이후 노 전 사령관이 대통령실 군사관리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원 본부장은 같은 사단의 제8보병연대장을 맡았다. 원 본부장과 같이 근무했던 전·현직 군 관계자들은 그와 노 전 사령관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군 관계자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을 멀리한 것처럼 원 본부장도 엮이기 싫어했다. 수십년 전부터 노 전 사령관의 기행을 눈으로 봐와서 그런지 좋게 평가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던 그가 12·3 비상계엄에 연루됐다고 의심받는 까닭은 전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과의 회동 때문이다.

원 본부장은 비상계엄 전날인 지난해 12월2일 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과 만났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11월 말에 정보 관련 예산을 대면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며 “정보사의 예산이 많아 이 부분을 정보사령관이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12월2일 정보사령관이 보고하는 자리에 정보본부장이 배석했던 사실이 있다”면서 “그 자리서 계엄 관련 논의는 없었다는 게 참석했던 사람들의 얘기”라고 강조했다.

원 본부장도 “비상계엄을 미리 알거나 인지한 적이 없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관련 진술을 확보한 공수처는 여전히 이날 ‘계엄 논의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 7사단 연대장 시절 원 직속상관
친분 깊지 않아 “여처럼 엮이기 싫다”

공수처 관계자는 “12월2일 당시 오간 대화와 관련 진술을 분석해 수사 중이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최근 원 본부장을 소환조사했다”고 말했다.

앞서 원 본부장은 지난 1월23일 경찰 국가수사본부의 조사를 받고 공수처로 송치됐다. 공수처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 팀장 이대환 수사3부장검사)는 지난 19일 오전 10시부터 내란 공모 혐의를 받는 원 본부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공수처는 지난달 21일 원 본부장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공수처 조사를 받은 복수의 정보사 관계자들은 원 본부장이 노 전 사령관의 ‘비선 실세’ 행위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정보사 간부들은 원 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과 정보사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문 전 사령관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원 본부장에게 김 전 장관의 불법적 지시를 보고하지 않거나 노 전 사령관의 비선 행위를 보고하지 않았다. 문 전 사령관은 ‘비밀 준수’ 차원이었다고 변명했다. 군 정보계통의 안보성을 고려하더라도 장관→국방정보본부장→정보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지휘체계를 무시한 행위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보사 출신 군 관계자는 “국방정보본부장은 영관급 간부들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다. 직무 배제가 될 계획이었던 사람이 중용된 것에 대해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채지 못했다면 직을 내려놔야 한다”며 “원 전 본부장이 노 전 사령관의 비선 행위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같은 문제다. 사실상 피해를 보기 싫어서 인지했으나 언급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정보사 요원 명단 유출 사태 당시 경질될 위기에 처했던 문 전 사령관을 살렸다. 노 전 사령관이 먼저 김 전 장관에게 문 전 사령관의 유임을 제안한 것이다. 이는 노 전 사령관의 피의자 신문조서에도 담겨있다.

정보사 간부들 “원, 비상식적 인사 그대로 수용”
압색 후 강도 높은 소환조사…노 연결고리 찾았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에서 “김 전 장관이 ‘문 사령관이 죄가 있냐 없냐’를 물어보길래 ‘현 사령관이 무슨 죄가 있냐’고 얘기해 줬다”고 진술했다. 그는 김 전 장관에게 “지금 사령관은 그 죄를 식별한 것밖에 없으니 조사해서 과거에 실제 잘못한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며 “현 사령관을 처벌하면 무너진 조직을 어떻게 수복(재건)하냐, 지금은 무너진 조직을 수복하고 휴민트를 재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사령관도 검찰 조사에서 “경질될 줄 알았지만 당시에 노 전 사령관이 ‘괜찮을 거다. 국방부 인사 발표 이전에 계속 임무 수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안심시켰다”고 진술했다.

유임된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직무 배제 조치됐던 정성욱 정보사 대령을 계엄에 동원했다. 원 본부장은 이때의 상황에 대해 그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 의문도 갖지 않은 채 모든 인사를 수용했다. 자신이 주관한 회의서 문 전 사령관을 경질하기로 결론 낸 과거의 행보와는 상반된다.

군 인사를 총괄하는 오영대 국방부 인사기획관도 검찰 조사에서 문 전 사령관의 유임에 대해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원 본부장에게 노 전 사령관의 비선 행위와 문 전 사령관의 유임 건에 대해 캐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모르쇠 일관

원 본부장은 “문 전 사령관이 날 뛰어넘어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직보하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수처는 최근 원 본부장의 사무실과 주거지 압수수색을 통해 그의 혐의를 다져 왔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원 본부장이 조만간 불구속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군 법무관 출신 한 변호사는 “비상식적 인사에 대해 문제 제기하지 않고 불법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다. 내란에 직접 가담했다기보다는 방관한 책임이 가볍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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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